MBC 예능 프로그램 <피의 게임>

MBC 예능 프로그램 <피의 게임> ⓒ MBC

 
게임(머니챌린지)은 보너스에 불과하고 본질은 결국 정치질과 뒤통수치기다. 8일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피의 게임>에서 두 번째 탈락자가 발생한 가운데 플레이어(참가자)들간 물고물리는 치열한 심리전이 돋보였다.
 
1회에서 첫 만남부터 대다수 플레이어의 몰표를 받아 탈락하여 최하층 지하실로 떨어진 첫 탈락자가 된 이나영은 부활을 위하여 절치부심했다. 이나영은 '지하실 브레인 챌린지'를 통해 최고 난이드 퀴즈를 풀고 획득한 돈으로 에너지바와 물을 구입했다. 이어 이나영은 돈을 얻기 위하여 전날에 이어 열심히 피자를 담는 종이박스를 접었다. 반면 지상층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이나영의 존재를 모른 채 배달된 피자를 즐기는 모습으로 대조를 이뤘다. 스튜디오에서 지켜보던 MC들은 '잔인하다'며 경악했다.
 
플레이어들은 본격적인 게임을 앞두고, 저마다 탈락투표에서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할 아군들을 포섭하여 '연합'을 구축하기 위하여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특히 최연승은 여성멤버인 박지민과 송서현에게 러브콜을 보내며 가장 분주하게 움직였다. 반면 퀸와사비는 덱스 연합(정근우-박재일-덱스)과 정보를 공유하며 최연승 연합(최연승-이태균-허준영)을 견제했다. 이태균-허준영은 여성들이 덱스 팀과 손을 잡았을 가능성을 경계했지만, 최연승은 박지민에 대한 신뢰를 드러내며 과반수 이상을 확보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날의 머니 챌린지는 분배게임이었다. 7인의 플레이어가 킹&퀸 플레이어를 찾아야 하는 게임으로 승자에는 상금 2000만 원과 탈락 면제권이 주어졌다.
 
킹의 정체는 최연승, 퀸은 박지민이었다. 플레이어들도 대부분 킹&퀸의 정체를 눈치챈 상황. 최연승은 게임플랜으로 일단 5인 연합을 확보하여 면제권과 상관없이 탈락을 방지하고, 일부러 킹&퀸의 정체를 틀려서 얻은 상금 2000만 원으로 히든 메뉴판을 오픈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리더 최연승은 아군들에게 자신이 킹임을 스스로 밝히고 신뢰를 얻으려했다. 최연승팀의 최종 목표는 덱스를 탈락시키는 것. 반면 덱스팀 역시 최연승을 탈락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오답 작전을 계획한 최연승팀과 달리 정답 작전을 선택했다.
 
승부의 판도를 좌우한 것은 여성 연합(박지민, 퀸와사비, 송서현)이었다. 분위기를 주도한 박지민은 분배게임 시작전 덱스에게 자신이 퀸임을 미리 알려주며 신뢰를 얻었다. 하지만 이는 덱스 연합을 속이기 위한 이중트릭이었다. 여성 연합은 계획대로 모두 허준영을 뽑으며 게임은 킹과 퀸의 승리로 돌아갔다. 사전에 정한 분배 순서에 따라 1, 2번 송서현과 이태균이 상금과 탈락면제권을 모두 가져갔다. 최연승 팀이 의도한 대로 이루어진 결과였다.

하지만 박지민은 또 하나의 반전을 계획하고 있었다. 박지민은 처음부터 최연승을 탈락시킬 속셈이었다. 박지민은 "최연승은 너무 엄청난 사람이기 때문에 더 빨리 없애야 한다"고 설명하며 우승후보로서 게임 이해도가 뛰어나고 두뇌가 명석한 최연승을 경계했던 속내를 비로소 드러냈다. 이어 박지민은 "여기는 피의 게임이고, 룰이 배신이고 연합이다. 이걸로 누구를 비난할 수 있나?"며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먹튀하는 것 같다"며 배신을 주저하는 송서현에게 박지민은 "최연승 팀은 이 게임에 제일 심취해있다. 가장 위험하다"며 설득했다. 박지민이 최연승을 탈락시키겠다고 결심한 또다른 이유도 공개됐다. 박지민은 "최연승은 자신이 짠 판대로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으로 말했다. 내가 그대로 따라야 하나? 난 내 플랜이 있고 내가 떨어뜨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며 최연승이 판세를 주도하려는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태균은 획득한 상금을 통하여 게임의 승부를 좌우할 수 있는 히든 룰을 구매했다. 여기에는 추가 투표권, 개인 자금 공개권, 머니 챌린지 힌트권이라는 히든 메뉴가 있었다. 이태균은 히든 메뉴를 구매하지는 않고 최연승, 박지민, 허준영에게 히든 메뉴의 내용을 공개했다. 자신의 연합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여기에 최연승은 덱스를 떨어뜨리기 위하여 추가 투표권까지 구매했다.
 
하지만 추가 투표권 정보를 들은 박지민 역시 덱스 연합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결국 최연승팀 3인(추가 투표권+3장)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 6인(추가 투표권+1장)은 모두 최연승을 지목했다. 결국 7대 6, 한 표 차이로 덱스가 살아남고 최연승이 두 번째로 탈락한 플레이어가 됐다. 이상민과 장동민 등 MC들은 결정적인 승부처로 "이태균이 히든메뉴를 최연승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만 안 했어도 최연승이 살아남았을 것"이라며 분석하며 안타까워했다.
 
최연승은 쓴 웃음을 지으며 "서운하다기보다 놀란 사람은 박지민이다. 전혀 의심을 못했는데 그게 패착이었다. 결국 저쪽 편인 사람이었는데 그걸 못 알아보고 퀸으로 선택한 게 오판이었다"고 돌아봤다.
 
박지민의 배신에 대하여 MC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장동민은 "당장 내일부터 박지민이 가장 위험한 사람(탈락후보)이 됐다"고 예상한 반면, 이상민은 오히려 "박지민은 오늘로 덱스 팀의 확실한 신뢰를 얻었고, 여성 멤버들 사이에서는 리더가 됐다"고 진단하며 상반된 분석을 내놓았다. 박지윤은 "박지민은 높은 우월감과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분석하며 박지민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것이 최연승의 가장 큰 패착이라고 평가했다.
 
최연승은 본인이 완전 탈락한 줄 알고 인터뷰까지 마쳤지만 게임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최연승은 지하실로 이동하며 전날 먼저 탈락했던 이나영과 쑥쓰러운 재회를 가졌다. 최연승과 이나영은 탈락의 아픔을 공유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두 사람은 첫날 탈락투표 당시 서로를 지목했던 사실을 뒤늦게 알고 민망한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함께 지하실을 둘러보던 두 사람은 위로 올라갈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하며 앞으로의 복수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피의 게임>은 플레이어들이 최후의 1인이 되기 위해 심리전을 펼치며 돈을 두고 경쟁하는 리얼리티 서바이벌 예능프로그램이다. 최근 유튜브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머니게임>과 비슷한 포맷인데, 실제로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유튜브 크리에이터 진용진이 <피의 게임> 기획에도 참여했다. 예능 <더 지니어스> <소사이어티 게임>, 드라마 <오징어게임> 등 서바이벌 생존게임 장르에 익숙한 시청자들이 좋아할만한 포맷이지만, 자극적인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구성 때문에 공중파에서는 보기 힘든 기획이었다.
 
<피의 게임>은 아예 시작부터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인 게임을 표방한다. 제작진은 플레이어들에게 생존을 위하여 어떠한 행동도 다 용납된다고 부추긴다. 플레이어들은 첫 만남부터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승리를 위해서만 몰두한다. <피의 게임>의 룰을 듣노라면, 마치 시청률과 화제성을 위해서는 공중파의 품격이고 뭐고 물불 가리지 않겠다는 MBC의 자기 고백을 듣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예능과 게임이 도덕 교과서같은 올바름에 지나치게 집착하다보면 재미가 없어진다. 하지만 세상 어떤 분야에도 '룰'이란 게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이나 사회가 원활하게 작동하고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승리를 위하여 상대를 무력으로 제압해야하는 격투기조차도 그 안에는 엄격한 룰과 동업자 정신에 의한 페어플레이를 강조한다.
 
하지만 <피의 게임>의 게임방식에는 페어플레이같은 '긍정적인 가치'들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질, 친목질, 거짓말, 왕따, 편견, 불신, 의심, 배신 등 오로지 부정적인 수단과 가치로만 가득하다. 프로그램 내에서 '악인'이 되기 위한 선택지만이 아니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정작 두뇌게임이나 심리전같은 게임예능 특유의 치밀하고 섬세한 매력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룰의 특성을 간파한 플레이어들에게 애초부터 미션인 머니챌린지는 뒷전이 되고, 생존을 위하여 자기 편을 확보하기 위한 담합과 거짓말, 즉 '정치싸움'만이 사실상 서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하거나 뛰어난 지략을 드러낸 최연승같은 인물은 먼저 돋보일수록 오히려 견제의 표적이 된다.
 
배신과 계략도 그럴 만한 개연성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타락한 진흙탕 싸움 속에 출연자들을 몰아넣고 시작한다. 시청자들도 덩달아 플레이어의 캐릭터나 매력에 공감하게 되기보다는 오래 살아남을수록 점점 비호감에 가까운 이미지를 계속 접하게 될 수밖에 없다. <지니어스>나 <머니게임>보다 치밀한 구성이나 상상력에서 더 진화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공중파에서 굳이 이런 포맷을 내세우는 게 얼마나 공감대를 얻을수 있을지 의문이다.
피의게임 최연승 서바이벌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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