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중순 64년만에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 한파특보가 내렸다. 아직 단풍이 물들지 않은 가을이라서 찬기운을 느끼는 반짝 추위로 예상을 했었다. 다음날 농장에 나갔더니 하얗게 내린 된서리가 작물을 덮고 있었다. 물통에는 얼음이 생겼고 작물의 잎은 뻣뻣하게 얼었다. 생각하지도 못한 상황을 보면서 기후변화로 인한 농사의 어려움이 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음에 한숨만 나왔다.
가을장마에 배추가 사라졌다
금방 겨울이라도 올 것 같았던 날씨는 이후 한낮에는 더위를 느낄만큼 이상고온으로 더웠다. 수확을 앞두고 된서리를 맞은 단호박은 익지 않아서 판매할 수 없었다. 배추는 누렇게 잎이 말라서 볼품은 없었지만 겉잎을 떼어내고 절임배추로 쓸 수는 있었다.
김장배추는 중부이남의 충청지역과 해남에서 주로 재배되고 여름배추는 강원도 고랭지에서 재배된다. 강원지역에 집중적으로 쏟아진 장마비가 그치고 폭염이 시작되면서 배추에 병충해가 발생하여 농민들의 피해가 컸다. 배추는 흙속에 물이 많은 과습이 지속되다가 강하게 햇볕을 받게 되면 속이 물러지면서 썩는다.
지난해(2020년)는 54일간의 기록적인 장마로 농작물의 피해가 컸고, 채소류의 가격도 폭등했었다. 올해는 장마가 짧은 기간에 끝나서 가뭄을 걱정할 정도였다. 그러나 김장 배추를 심는 8월말부터 보름정도 가을장마라고 할 만큼 비가 내렸다.
자주 내리는 가을비에 배추의 뿌리밑둥이 썩어가는 무름병이 전국에서 발생했다. 김치를 만드는 업체에서 배추확보를 위해 밭떼기(수확전에 구매하는 거래방식)를 하러 다닌다는 말을 들었다. 김장을 앞두고 공급물량이 부족하여 절임배추의 가격은 오르지만 배추수급이 안 되어서 주문예약을 받지 못한다고 A생협 관계자는 말했다.
가을에 내리는 비는 농사에 도움이 안되는 쓸데없는 비라고들 한다. 주식인 쌀을 비롯한 콩, 깨 등의 곡류가 여물어가는 때에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북 남원 산내면 실상사농장은 1만평정도의 쌀농사를 짓는다. 자주 내린 비 때문에 잿빛을 보이는 벼 이삭에서 도열병(잎과 이삭에서 발생하는 곰팡이병) 징후가 보여서 긴장을 하기도 했다.
다행히 별 탈 없이 수확을 마쳤지만, 도열병으로 피해를 본 농민도 있어서 벼농사 잘되었다는 말을 조심해야 했다. 쌀농사를 많이 짓는 전북 김제지역에서는 도열병피해가 컸다. 전북 농업기술원에 따르면 지난 9월 13일 기준으로 전체 벼 재배면적 11만 4509㏊ 가운데 43.05%인 4만 9303㏊에서 병해충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했다.
김제에서 논과 밭농사 4700평을 경작하는 라종국(51)씨는 신동진 품종의 쌀을 풍작일 때는 9000kg정도 수확하는데, 올해는 절반수준인 4600kg를 수확하는 데 그쳤다. 밥맛이 좋아서 재배를 많이 하는 신동진 쌀은 벼이삭이 피어나는 출수기에 쏟아진 가을장마로 인해 병충해의 저항력이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농민의 삶
라씨는 최근 4년간 기후변화에 따른 날씨변화로 농사의 어려움을 체감한다면서 농사짓기가 갈수록 힘들다고 했다.
"예측불가능한 기후변화로 노지 농사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고, 천정부지로 하우스 자재비가 오르고 있어서 하우스 농사로의 전환도 어려워졌습니다. 농사에서 희망을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라씨는 농자재 비용과 외부 인건비를 제외하면 농사수익은 미미하다고 밝혔다. 그는 올해도 겨울은 제주도로 건너가서 일당을 받는 농사일을 할 예정이다. 농사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서 다른 일을 함께 하거나 겨울 농한기에는 일당을 받는 노동을 하는 농민들의 수입은 통계청의 2020년 농림어업총조사에도 나와 있다.
농업인구는 231만 4000명으로 전체인구의 4.5%로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농축산물 판매금액이 1000만 원 미만의 농가는 70,3%로 5년 전에 비해서 2.4% 증가했다.
농산물 가격이 대폭 올랐다는 언론보도를 보면 농민들의 수입은 올라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수확량이 줄었기 때문에 시장가격이 올랐더라도 농민의 수입은 줄어든다.
기후위기와 식량의 무기화
기후변화로 인한 농사의 어려움이 점점 가중되고 있음을 해마다 다른 형태로 느끼고 있다. 양상추 수확량이 급감하면서 도시에서 양상추가 없는 햄버거를 먹고, 농산물 가격이 오르는 것도 기후변화가 원인이다.
가을에 장마와 한파를 겪으면서 기후위기는 어떤 형태로든 농사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건 명확한 사실임을 알 수 있다. 농업의 위기는 곧 식량부족으로 인간의 삶에 가장 큰고통을 줄 것이다. 농사는 농민 개인의 삶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들을 먹여 살리는 모두의 농사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갑작스런 화물차 요소수 사태를 보면서, 그것이 식량이라면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 생각해본다. 가격이 싸다는 경제논리에 의존해 식량의 대부분을 수입농산물에 의존하고, 농업을 무시하는 정책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아야 한다. 강대국들의 패권다툼과 기후변화로 농산물 수입이 막히는 식량의 무기화는 현실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