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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반려인의 세계'는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룹니다. 이번 주제는 '동물병원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요즘 하루에 한 번은 첫째 고양이 반냐와 '대치 상황'을 맞는다. 결전의 시간은 보통 늦은 오후다. 반냐가 늦가을 햇살을 받으며 녹작지근하게 풀어져 있는 때가 최적이다. 녀석이 낮잠에 취해 있을 때 잽싸게 처리해야 한다.
 
작은 질병은 '홈케어'부터 해본다
 작은 질병은 "홈케어"부터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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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냐의 눈치를 보며 따뜻한 물과 수건을 준비한다(이때 서두르다 물그릇을 엎기라도 하면 낭패. 다음 날을 노려야 한다). 그리고는 반냐의 곁에 살그머니 앉아 수건을 따뜻한 물에 적시고 물기를 꾹 짜서 자고 있는 반냐의 턱에 댄다.

이때 물의 온도는 너무 뜨거워도, 너무 차가워도 안 된다. 젖은 수건을 살살 문지르면 까만 피딱지 같은 것들이 물에 불어 떨어진다. 그 검은깨처럼 보이는 것들은 바로 고양이 턱 여드름이다.

반냐는 염증이 잘 생기는 체질이라서 조금만 방심해도 턱 여드름이 생긴다. 초반에 발견하면 '수건 요법' 몇 번으로 해결이 되기도 하지만 염증이 심해지면 턱 부위에 탈모가 오거나 염증 부위가 확산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수건 처치가 길어지면 짜증이 난 고양이의 솜방망이 펀치가 날아오기도 하지만 이쯤이야 얼마든 참을 수 있다. 진짜 무서운 건 염증이 심해져 동물병원에 가야 하는 일이 생길 때다.

그곳에 가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동물병원에 가는 일이 두렵다. 반려인에게 가장 가깝고도 먼 곳이 동물병원 아닐까. 실제로는 걸어서 고작 5분 거리이지만, 심정적으로는 광역버스 타고 마을버스로 환승해서 종점까지 가는 기분이 되는 것이다. 가끔 고양이가 아파서 병원을 가게 되면 나는 높은 확률로 그날 밤잠을 설친다.

우리 집 고양이, 특히 첫째인 반냐가 병원에 가기까지는 긴 과정이 필요하다. 먼저 수의사에게 위험할 수 있기에 발톱을 깎아주어야 하고(반냐는 발톱 깎는 일도 무척 싫어한다), 병원에 가는 걸 눈치채고 잽싸게 도망가는 녀석을 잡아 이동장에 안전하게 넣어야 한다. 이동장은 평소 반냐가 좋아하던 담요로 덮어준 뒤 최대한 민첩하게 움직인다. 이동장 안에서 반냐가 우렁차게 울기 때문이다(아무래도 병원을 고문실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두려운 과정은 따로 있다. 모든 치료와 처치가 끝난 뒤, 동물병원 계산대 앞에서 초조하게 운명을 기다리는 순간이 그것이다. 이번 진료비는 얼마나 될까. 5만 원일까, 50만 원일까. 이번 달 예산이 얼마나 남았지? 머리가 바쁘게 돌아간다. 금액을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으니 더 괴롭다. 부디 이 병원의 진료비가 합리적이기를 바랄 수밖에.

같은 병명, 다른 금액... 이래도 되나요?
 
반려인이 가장 작아지는 장소... 동물병원 계산대 아닐까.
 반려인이 가장 작아지는 장소... 동물병원 계산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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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속물적인(?) 걱정을 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인 반냐는 3살 무렵 동물병원을 전전했는데 방광염이 자꾸 도져서였다. 입양한 첫날부터 화장실을 기가 막히게 가리던 반냐가 갑작스럽게 바닥에 오줌을 찔끔찔끔 누기 시작했다. 색도 이상했다. 피가 섞인 듯한 붉은빛이 돌았다. 반냐는 고통스러운지 오줌을 누면서 자꾸만 울었다.

나는 반냐를 들고 정신없이 집에서 가장 가까운 A 동물병원에 달려갔다. 병명은 특발성 방광염이라고 했다. 진료비로 40만 원을 결제했다. 병원에 매일 오라는데 매일 이렇게 큰돈을 내야 하는 걸까. 솔직히 막막했다. 혹시 모르니 10분 정도 더 먼 곳에 있는 B 동물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내 경험상, 병원을 옮기면 처음부터 진단에 필요한 검사를 다시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동물병원들은 서로 검사 결과를 공유하지는 않았다. 반냐는 B 병원에서도 방광염 진단을 받았다. 다른 게 있다면 진료비였다. 두 번째 병원에서 받아든 영수증에는 8만 원이 찍혀 있었다. 검사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초진이었고 같은 진단으로 두 병원의 진료비가 이렇게 다르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경험을 몇 번 겪고 나니 동물병원을 택하는 일에 몹시 신중해졌다. 나는 반려인이 되고 나서 총 네 번의 이사를 했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동물병원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병원마다 진료비가 제각각이라서였다. 병원비를 공개해두는 병원이 있는가 하면 공개를 하지 않는 게 방침이라는 병원도 있었다. 반려인에게 가장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할 정보가 '깜깜이'라니 답답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니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었다.

나만 이런 걱정을 하는 걸까 궁금해져서 기사를 검색해봤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반려인이 많은 듯했다. 한국소비자연맹 조사 결과 반려인 92%가 동물병원 진료비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고, 특히 진료비 과다 청구에 대한 불만이 가장 많았다("동물병원 진료비 정보, 사전 공개 절실...반려인·수의사 모두 득 보는 상생의 길" 서울신문, 2021.10.11.).

기둥뿌리 안 뽑고도 반려생활 할 수 있었으면

11살, 9살 두 고양이들을 볼 때면 '더 열심히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솟는다. 만에 하나 녀석들이 아플 때 돈이 없어 병원에 데려가지 못하는 일만은 피하고 싶어서다. 지금까지는 반냐가 특발성 방광염을 앓은 것 말고는 병치레 없이 지내왔지만, 사람이든 고양이든 나이가 들면 아픈 곳이 하나 둘 생기기 마련이니까.

앞으로는 고양이들의 병원비 명목으로 적금도 들 생각이다. 혹자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반려인들은 내 마음을 이해할 거라고 믿는다. 실제로 나는 아픈 반려동물을 키우는 반려인 카페에 갔다가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패물을 팔았다는 분, 대출을 받았다는 분의 사연도 접했다. 현실이 그렇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또 고양이들에게 좋은 치료를 받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따로 돈을 모으고 있지만 여전히 동물병원을 생각하면 막막한 기분이 된다. 주변에 "고양이를 키우고 싶지만 병원비가 너무 부담스러워 입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인도 떠오른다.

집안 기둥뿌리 뽑을 각오 없이도 반려인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동물병원이 사람 다니는 병원만큼 가깝게, 부담 없이 느껴졌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진료비와 같은 필수 정보가 반려인에게 투명하게 공개되길 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relaxed)에도 실립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루는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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