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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시티 운동은 느림 속에서 자연과 문화를 보호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199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2007년에 신안 증도, 완도 청산, 담양 창평이 처음으로 슬로시티 인증을 받았다. 지금은 16곳으로 늘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예산 대흥이다. 2009년에 인증받았다.

깊어가는 가을날, 예산 대흥을 찾았다. 그곳에 느린꼬부랑길이 있다. 세 개 코스로 나뉜다. 1코스 옛이야깃길, 2코스 느림길, 3코스 사랑길이다. 모두 슬로시티 방문자센터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안내판에 '느린 걸음으로 소박한 삶과 자연, 역사의 숨결을 담다'라는 글귀가 있다.

봉수산순교성지
 
  대흥형옥원 현판에 ‘내일 정오 천국에서 다시 만나세’라는 문구를 새겼다. 성모상 아래에 있는 돌은 참수대다.
▲ 순교성지  대흥형옥원 현판에 ‘내일 정오 천국에서 다시 만나세’라는 문구를 새겼다. 성모상 아래에 있는 돌은 참수대다.
ⓒ 정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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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꼬부랑길 걷기에 앞서 봉수산순교성지에 들렀다. 대흥은 복음전파와 박해의 길목이었다. 순교자가 7명 나왔다. 그곳에 대흥형옥원(大興刑獄圓)이 있다. 죄인을 가두고 형벌을 주는 옥사다. 순교 성지다. 의좋은형제길에 있다.

신유박해 때 김정득 베드로와 김광옥 안드레아가 공주 무성산에서 붙잡혔다. 감옥에 갇혔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고향에서 목을 베라는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고향으로 가는 중에 대흥과 예산의 갈림길에서 손을 마주 잡았다. '내일 정오 천국에서 다시 만나세'라고 작별 인사를 했다. 다음 날 그들은 '의좋은 순교자'가 되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들을 복자로 시복하였다.

옥사 앞에 십자형 정원이 있다. 검은 돌에 순교자를 고문하는 모습이 새겨졌다. 둘레에 14처 '순교자 십자가의 길'을 만들었다. 오른쪽은 외양간을 고쳐 만든 조립식 성당이고, 가운데 성모상 아래에 있는 돌은 참수대다. 찡한 마음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느린꼬부랑길

느린꼬부랑길을 걸었다. 세 개 코스 가장 바깥 길을 이어서 걸었다. 1코스는 시골길에서 시작한다. 실개천을 따라 봉수산을 바라보면서 걸었다. 개천을 건너는 다리 이름이 재미있다. 사양지심교, 반포지효교, 다정다감교다. 길옆에 멋진 집과 너른 텃밭이 이어진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가끔 지나는 차 소리와 물소리만 들렸다.
 
  나당연합군이 백제 부흥군을 공격할 때 배를 맸다는 느티나무다. 마을 수호신이다.
▲ 배맨나무  나당연합군이 백제 부흥군을 공격할 때 배를 맸다는 느티나무다. 마을 수호신이다.
ⓒ 정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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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수산 자연휴양림 소나무 숲 위에 20m 높이로 세워졌다. 봉수산 주변과 예당호 경치를 즐길 수 있다.
▲ 하늘데크  봉수산 자연휴양림 소나무 숲 위에 20m 높이로 세워졌다. 봉수산 주변과 예당호 경치를 즐길 수 있다.
ⓒ 정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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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 체험장이 나오고, 옆에 배맨나무가 있다. 천년 넘은 느티나무다. 마을 수호신이다. 나당연합군이 백제 부흥군을 공격할 때 배를 맸다는 나무다. 그때는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사과밭을 지난다. 울타리도 없고, 사람도 없다. 먹음직스러운 사과가 주렁주렁 달렸다.

30분쯤 가면 봉수산 자연휴양림이다. 구름다리를 건너 수목원과 곤충생태관을 둘러보고, 하늘데크에 들어섰다. 소나무 숲 위에 20m 높이로 세워졌다. 봉수산 주변과 예당호 경치를 즐길 수 있다. 하늘데크를 지나 소나무 숲을 걸으면 2코스와 만나는 곳에 애기폭포가 있다. 이름처럼 작다. 그래도 물은 조금 흐른다.
 
  2코스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명당이다.
▲ 전망 좋은 곳  2코스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명당이다.
ⓒ 정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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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기단풍이 곱게 물들고 있다. 걸으면 저절로 건강해질 것 같은 길이다.
▲ 느림길  애기단풍이 곱게 물들고 있다. 걸으면 저절로 건강해질 것 같은 길이다.
ⓒ 정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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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운데에 느티나무를 품었다. 긴 세월 동안 두 나무가 사이좋게 자란다.
▲ 대흥향교 은행나무  한가운데에 느티나무를 품었다. 긴 세월 동안 두 나무가 사이좋게 자란다.
ⓒ 정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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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코스에 들어서면 큰 길이다. 차가 다닐 정도다. 옆은 산지약용식물특화단지다. 애기단풍이 곱게 물들고 있다. 고요하다. 낙엽 밟는 소리뿐이다. 걸으면 저절로 건강해질 것 같은 길이다. 전망 좋은 곳에 가니 호수가 보였다. 명당이다. 어느 분의 산소가 자리 잡고 있다.

마을 가까이 오니 사과밭이 나온다. 이곳은 백구가 지킨다. 더 내려오니 샛노란 나무가 보인다. 대흥향교 은행나무다. 한가운데에 느티나무를 품었다. 느티나무 씨앗이 은행나무 가운데에서 싹텄다. 은행나무는 600여 년, 느티나무는 200여 년 되었다고 한다. 긴 세월 동안 두 나무가 사이좋게 자랐다. 대흥향교에서 3코스가 연결된다. 원홍장 쉼터로 향했다. 향교에서 1km 떨어졌다.

원홍장
 
  원홍장 쉼터에 세워진 부녀상이다. 예당호가 훤히 보이는 언덕에 있다.
▲ 원량과 원홍장  원홍장 쉼터에 세워진 부녀상이다. 예당호가 훤히 보이는 언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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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을 지났다.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나이 드신 분이 집 앞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유심히 쳐다본다. 마을버스 종점을 끼고 돌아 좁은 길을 오르면 원홍장 쉼터다. 예당호가 훤히 보이는 언덕이다. 최근에 만들었다. 팔각정과 돌탑이 있다. 원량과 원홍장 부녀상을 큼지막하게 세웠다. 정자 앞을 조그마한 돌로 예쁘게 꾸몄다. 둘레에 솟대를 나란히 세웠다.

충청도 대흥현에 앞 못 보는 원량이 살았다. 그에게 효성이 지극한 딸 홍장이 있었다. 어느 날 지나가는 스님이 부처님 계시라며 시주를 간청했다. 홍장은 아버지를 위하여 스님을 따라나섰다. 소랑포에서 쉬다가 진나라 사람들을 만났다. 홍장은 그들이 가져온 재물을 받아 스님에게 모두 드리고, 진나라로 건너가 황후가 되었다. 스님은 불사를 마쳤고, 원량은 눈을 떴다.

조선 영조 5년, 관음사에서 펴낸 '성덕산 관음사 사적기'에 실린 이야기다. 목판본이 순천 송광사 성보박물관에 있다. 심청전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이를 바탕으로 대흥에 심청이 살았다고 널리 알리고 있다. '진나라 황비가 된 백제의 효녀'라는 부제가 달린 책 '대흥 원홍장'을 펴내고, '원홍장 둘레길'을 만들기도 했다.

뒷이야기가 이어진다. 홍장은 관음상을 만들어 고향으로 보냈다. 배가 한 달 만에 낙안포에 닿았다. 성덕이라는 처녀가 배 안에 있는 관음상을 보았다. 그는 관음상을 가지고 고향인 옥과로 갔다. 모실 곳을 찾아 산에 오르다 멈춘 곳에 절을 세웠다. 산은 성덕산이고, 절은 관음사다. 지금 곡성 오산에 있다.

원홍장 쉼터에서 돌아 나오는 길에 교촌2리 마을회관 앞에서 놀고 있는 할머니들을 만났다. 원홍장이 어디서 살았냐고 물어보니 '삼거리 도접교 가까운 곳에서 살았다'고 호수 쪽을 가리킨다.
 
  예산 대흥 곳곳에서 달팽이 모형을 볼 수 있다. 슬로시티 상징이다.
▲ 달팽이  예산 대흥 곳곳에서 달팽이 모형을 볼 수 있다. 슬로시티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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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이 썼다는 찬샘을 지났다. 슬로시티 상징인 달팽이가 나뭇잎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형이 있다. '국제 달팽이 달리기 대회' 장소라고 알리는 푯말도 있다. 줄지어 달리는 달팽이가 담벼락 풀숲에 숨겨졌다.

달팽이처럼 천천히 걸어 큰길로 나왔다. 마을 제사를 지내는 망태할아버지 석상을 지나, 슬로시티 방문자센터로 돌아왔다. 달팽이처럼 느리게 걸어도 괜찮은 길이었다. '느림, 작음, 소박함 속에 인생의 행복이' 있음을 느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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