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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다리에 선 이주노동자들.
 전태일 다리에 선 이주노동자들.
ⓒ 김호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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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후 11월 치고 꽤 따뜻한 날씨였다. 전태일 다리에 들어서자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보였다. 먼저 온 가족센터에서 일하는 이주여성 통번역사와 이중언어 코치들도 만났다. 오랜 시간을 이동해서 행진에 참여한 이주여성도 있었고 자신의 조카들을 데려오기도 했다. 아이들도 다문화가족의 자녀였다.

이주여성 조합원들에게 전태일 동상 앞에서 그가 누구인지 설명해드렸다. 한국 땅에 서 있는 모든 노동자들은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

오후 2시, 행진에 앞서 '전태일열사 51주기 이주노동자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이날 크게 세 분야의 노동자 그룹이 행진에 참여했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의 제조업,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함께 온 캄보디아 농업 노동자. 이 두 그룹은 대부분 고용허가제라는 제도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노동을 하고 있다. 고용허가제가 이주단체와 노동계에서 문제가 많은 제도로 손꼽히는 만큼 이와 관련된 다양한 피켓도 볼 수 있었다.

마지막 한 그룹은 귀화자나 결혼이민비자(F-6)등으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통번역사나 이중언어코치 등의 업무를 수행하나 선주민들과 달리 차별적임 임금을 받으며 사회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주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코로나 재난 상황 하에서 이주노동자들의 귀국이 늘고 신규 이주노동자 입국이 거의 중단되면서 산업현장 곳곳에서는 이주노동자 부족으로 아우성이라고 한다. 중소영세 제조업체, 농축산업, 어업 등 이주노동자가 주로 일하는 업종을 가리지 않고 생산의 타격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재난 상황이 되어 이주노동자가 부족해지자 비로소 이주노동자가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인력이라면 그만한 대우가 있어야 하는데 기자회견에서 들은 발언들은 코로나 재난 상황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 듯했다. 기본마저 지켜지지 않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기본적 삶'도 누리지 못하는 농업 이주노동자들
 
캄보디아 농업 이주노동자들. 열악한 환경에 대한 이들의 목소리는 피켓 하나하나에 담겨있었다.
 캄보디아 농업 이주노동자들. 열악한 환경에 대한 이들의 목소리는 피켓 하나하나에 담겨있었다.
ⓒ 김호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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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캄보디아 농업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들이 가져온 사진과 피켓 대부분이 주거환경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작년 겨울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헹의 사망 이후 이주노동자의 주거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일었지만 이들이 이런 자료들을 만들어 기자회견에 참여한 것을 보면 그때보다 개선된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최근 농업에 종사하는 캄보디아 여성노동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노동시간과 휴일 등을 들어보니 이곳이 근로기준법이 있는 한국이 맞는지 의아했다.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면 이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① 농장주, ② 관리 감독해야 하는 고용노동부 ③ 한국사회의 약자로 신고할 엄두조차 못 내는 이주노동자들. 셋 중에 둘은 정답이다.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열악한 주거환경이 어우러진 것이 바로 한국의 농업 이주노동자의 현실이었다. 이들은 한국사회에서 사람대접을 받고 있을까? 행진에도 이들의 주요 구호는 '우리는 소가 아니다'였다.

국적이 생겨도 변하지 않는 차별…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노동자
 
한국국적을 얻어도 이주여성들은 차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들에게 한국에서 ILO 사무총장이 나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국국적을 얻어도 이주여성들은 차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들에게 한국에서 ILO 사무총장이 나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 김호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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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족지원센터(현 가족지원센터)에서 일하는 이주여성들은 고용허가제로 한국사회에 오는 이주노동자보다는 훨씬 안정적인 체류자격을 가진다. 결혼이민비자(F-6)또는 귀화를 해서 한국 국적을 얻는 이주여성들도 많다.

이들이 센터에서 수행하는 업무는 통번역 및 다문화가족 자녀들이 이중언어를 배울 수 있는데 도움을 주는 일들이다. 센터에 중요한 업무이지만 처우는 선주민들과 달리 호봉제도 인정되지 않고 경력도 인정이 되지 않는다.

이들은 지난 9월 27일 차별금지법 제정연대와 함께 여성가족부, 청와대까지 행진을 했으나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답조차 돌아오지 않았다. 여성가족부는 대놓고 직무급제는 차별이 아니라며 이주여성들의 마음에 두 번째 차별의 대못을 박았다.

이들이 준비해온 현수막에서 볼 수 있듯이 공공기관에서도 이주여성 노동자들의 임금/인종차별이 버젓이 일어나는 한국에서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이 나온다는 것은 그야말로 헛소리다. 국적을 취득한 이주여성들도 여성가족부 산하 기관에서 차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주여성들은 한국에서 안정된 체류자격을 얻어도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다. 저임금, 불안한 고용형태들은 아마도 한국사회가 이주노동자를 '소비'하는 사고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결혼이주여성인 다문화언어강사들도 고용불안과 차별적 처우에 고통받고 있고 이들은 19일부터 총파업을 앞두고 있다.

쇠사슬,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소품
 
기자회견 마지막 순서인 쇠사슬 상징의식. 이들이 차별과 억압의 쇠사슬을 벗는 것은 언제일까
 기자회견 마지막 순서인 쇠사슬 상징의식. 이들이 차별과 억압의 쇠사슬을 벗는 것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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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조는 1인 시위나 증언대회, 기자회견 등 다양한 활동에서 쇠사슬이라는 소품을 사용한다. 사슬은 억압과 관련한 이미지를 생성한다. 고용허가제로 인해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소품이다. 이날도 사슬이 등장했다. 사슬에는 농축산 어업 노동자 차별, 사업장 변경 제한, 임금체불 등의 내용들이 붙어 있었다. 

억압의 사슬을 끊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사회에서 가장 약한 자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고 착취받으면 우리 모두가 착취받을 수 있다. 저 사슬을 우리가 함께 끊어내지 못하면 우리도 그 사슬을 짊어지게 될 수 있다.

제조, 농업, 사회서비스 업종으로만 본다면 선주민들의 상황이라면 서로 엮일 상황도 많지 않다. 노동조합의 산별 구분으로 봤을 때도 서로 다르다. 하지만 '이주민'이라는 정체성으로 모인 이들은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업종별 요구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외침을 정리하자면 차별을 없애고 노동권과 인권에 대한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었다. 결국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이주노동자들의 열망은 비자의 구분, 업종과 산별을 넘어선 공통의 외침이 될 수 있었다.
       
한국 정부는 이들의 외침에 어떻게 응답할까? 그건 한국 정부와 싸우는, 이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주민들과 그들과 함께 연대하는 선주민들의 목소리와 투쟁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청와대 앞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는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조합원.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이들의 외침은 많은 울림을 주었다.
 청와대 앞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는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조합원.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이들의 외침은 많은 울림을 주었다.
ⓒ 김호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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