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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때문에 국경이 한가해진 탓인지, 캐나다 국경에서 입국 심사를 받는데 심사관이 자꾸만 사적인 질문을 했다.

"여행 잘했어? 로스카보스(Los cabos)는 어땠어?"

입국 심사용 서류들은 잘 확인도 하지 않고 여행에 대해서 질문을 해댔다. 불법으로 여행 다녀온 것도 아닌데 팬데믹 중에 여행을 간 게 부끄러워 심사관 눈을 못 마주쳤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연신 "최고였어요(Great)"을 외쳤다.
 
멕시코 로스카보스 해안가
 멕시코 로스카보스 해안가
ⓒ 신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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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약직 노동자로 캐나다에 거주 중이다. 10월 중순이면 첫눈이 내리고 5월 중순에 마지막 눈이 내리는 캐나다의 작년 겨울은 나에겐 자연 감옥과도 같았다.

팬데믹으로 사교활동은 제한되었고 영하 20~30도의 추운 겨울 날씨때문에 집 밖에 나가 운동을 할 수도 없었다. 자연이 우릴 겨우내 자가격리 시킨 셈이었다. 그래서 캐나다의 길고 우울한 날씨와 함께 집에 갇혀 나는 침몰해갔다. 그래서 지난 겨울, 대부분의 시간을 살아남는 데 썼다.

너무 힘들어서, 재택근무 중이니 한국에 가서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캐나다는 올해 2월 22일부터, 자가격리 제도가 더욱 강화돼 해외 입국자는 14일 자가격리 중 3일간 정부 지정호텔에서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호텔 자가격리 비용은 최대 캐나다 달러로 1500달러였다. 이는 캐나다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자가격리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는 나는 한국을 가지도 못 한 채 캐나다에 감금되었다.

코로나 이후 첫 해외 여행

지난 7월 5일부터 캐나다 정부는 백신 접종자 중 음성 확인서를 지참한 사람들에게 자가격리를 면제했다. 그동안 캐나다 밖으로 나가지 못한 캐나다인과 거주민들에게 여행을 허가한 것이다. 규제 완화 소식을 접하자마자 친구가 코로나 블루 탈출 겸 긴 캐나다의 겨울을 대비할 겸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캐나다인들은 추운 겨울에 따뜻한 휴양지로 여행을 한다. 미국 남부, 멕시코, 하와이가 대표적인데 내가 사는 앨버타(Alberta) 주민들이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어 선호하는 멕시코 서부 휴양지인 로스카보스로 결정했다.
  
여행 당일까지도 여행 가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1여 년 동안 전 세계 국경들이 막혀 어디론가 여행을 간다는 걸 상상할 수 없었으니, 멕시코 국경을 건널 수 있는지 긴가민가했다.

진짜 해외 여행을 갈 수 있는 게 맞나 싶어 친구에게도 여러 차례 물어보았다. 비자와 여권만 챙기면 됐던 예전 여행과 달리, 백신 접종증과 여행일 수에 맞게 마스크를 넉넉히 챙겨야 했다. 캐나다에 들어오기 전 코로나 검사도 해야 해서 멕시코 현지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장소까지 확인했다.

비행기 안부터 여행객들의 흥분이 느껴졌다. 다들 몇 년 만에 떠나는 여행에 여유가 넘쳐나 내가 무언가를 부탁해도 모두가 'Yes! Yes!'를 외치며 너그러웠다. 남에게 피해 끼치는 걸 싫어하는 캐나다인들인데 오랜만의 여행 때문인지 비행기 안은 수다로 시끄러웠다. 그러나 그 누구도 싫어하지 않았다. 그 흥분은 비행기가 멕시코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쉬는 것도 어색해진 이상한 여행
 
리조트에서 바라본 석양
 리조트에서 바라본 석양
ⓒ 신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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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밖을 빠져나오자 여행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했다. 혹여나 멕시코 국경에서 여행 불가 딱지를 맞고 캐나다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아 무서웠다. 여행사가 공항에서 우리를 픽업해 안전히 리조트로 갈 수 있었다.

숙소에 도착했지만, 꽉 차야 할 리조트가 텅텅 비어 있었다. 팬데믹으로 오랫동안 비어 있었던 탓인지 물을 틀자 녹물이 나왔다. 따뜻한 물을 쓰려면 물을 한참 틀어두어야 했다. 와이파이 공유기의 선은 뽑혀 있어 와이파이를 쓰는 데도 애먹었다. 리조트 직원들은 팬데믹 동안 놓친 고객들을 다시 확보하려고 호객 행위도 마다하지 않았다.

팬데믹 동안 제대로 논 적이 없으니 쉬는 것도 까먹어 노는 것도 배워야 했다. 쉬어야 하는데 매일 가방에서 책을 한가득 꺼냈고, 머리를 비워 내야 하는데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팬데믹 기간 동안 쉬지 않고 일했던 것이 습관이 돼, 5일 내내 노는 게 어색했다. 얼른 돌아가 일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의식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매일 해가 뜨면 리조트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점심을 먹고 늦은 오후에 수영장으로 가 햇볕을 맘껏 쬐었다. 수영장에서 술을 마시며 온종일 몽롱하게 취한 채 종일 책을 읽었다.

여행 마지막 날, 테킬라 넉 잔을 마시면 스페인어를 할 수 있게 된다는 웨이터의 말에 연거푸 석 잔을 마셨는데 어설프게 취했다.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 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어설프게 흔들어댔다. 그 여운이 아직도 내 몸에 남아 있어, 그 춤을 지금이라도 출 수 있을 것 같다.

올 겨울은 무사히 지나가기를. 추워서 힘들어지면, 또 따뜻한 남쪽 나라로 여행 가야지. 이제는 '위드 코로나'다. 다시 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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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과거가 궁금한 빙하학자 (Paleoclimatologist/Glaciolog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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