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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 초입의 새벽 한기가 오스스 옷깃을 파고든다. 숲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옅은 안개가 숲길을 점령해 발길을 옮길 때마다 온몸을 휘감는다. 미명 속에서 몽환적인 기분으로 조심조심 적요의 산길을 홀로 걷는다. 발밑에서 바스러지는 낙엽들의 울림이 온몸으로 전해져 늦가을을 전율하게 한다. 아침을 깨우는 까마귀, 딱따구리, 직박구리의 여린 울음소리가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간헐적으로 낙엽 밟는 소리에 묻힌다.

이런 호젓한 시간에 홀로 산책을 하는 것이 얼마 만인가. 참으로 값지고 소중한 축복의 시간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그동안 폐쇄됐던 교육원이 올 들어 처음으로 문을 열고 소수의 인원만을 편성해 대면교육을 실시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봄부터 몇 번을 벼르던 교육이었는데 가을의 끝자락에서 운 좋게 시간이 닿았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쫓아온 만큼 원행을 한 수고로움 이상의 보람을 느낀다. 무엇보다도 숲으로 둘러싸인 산림교육원의 만추의 서정이 일상에 지친 마음을 위로해 준다.

발소리에 혹여 산짐승이나 나무들이 놀랄까 봐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워진다. 교육원 본관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줄곧 직진하여 2㎞ 정도를 걸으면 광릉과 국립수목원이 연결되는 간선도로까지 이어진다. 중간중간에는 수목관리가 용이하도록 사방으로 임도가 개설되어 있다. 이 광활한 숲이 광릉숲이다. 1468년부터 왕릉인 광릉의 부속림으로 지정해 관리해 오고 있으며, 그 넓이만도 무려 2,240㏊에 달한다고 하니 상상이 되질 않는다.

숲길 따라 자연림 사이사이로 구획을 나눠 잣나무, 낙엽송, 구상나무 등의 시험림이 조성되어 있다. 조성시기가 오래된 아름드리나무가 열병식을 하듯 줄지어 서서 숲을 지키고 있다. 입구에 세워진 시험림 현황도를 보니 1,109㏊의 산림에 생산기술 시험림, 생물다양성 보전림, 생물유전자원 보전림, 주요 조림수종 전시림, 생활환경 보전림 등을 조성하여 관리하고 있다. 특히 이곳은 생물종이 다양해 식물 938종, 곤충 3,966종, 조류 180종 등 모두 6,100여 종의 생물이 살아가고 있으며, 광릉크낙새, 하늘다람쥐, 장수하늘소 등 20종의 천연기념물이 서식한다고 하니 과히 미래를 위해 보존해야 할 생명의 보고다.

숲길에 쌓인 낙엽은 대부분 모양이 비슷한 졸참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등 참나무류의 잎이다. 타원형 혹은 난형의 잎들은 앞면은 황갈색으로, 뒷면은 옅은 회색으로 변색된 채 바싹 말라 뒤틀린 모양으로 켜켜이 쌓여 있다. 모양만 보고서는 무슨 나무인지 가늠할 수 없는 낙엽들도 많다. 하긴 서 있는 나무를 봐도 무슨 나무인지 모르는데 어찌 땅에 떨어진 나뭇잎으로 수종을 알 수 있겠는가.

 
봄부터 가을까지 소임을 다한 나뭇잎들이 떨어져 대지를 덮고 있다.
▲ 숲길에 소복히 쌓인 낙엽 봄부터 가을까지 소임을 다한 나뭇잎들이 떨어져 대지를 덮고 있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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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나무에 매달려 떠날 때를 기다리는 낙엽활엽수의 잎은 대부분 주걱형 이거나 도란형, 심장형, 원형, 또는 능란형이다. 색깔도 다양하여 은행나무와 생강나무는 그 빛이 국화처럼 노랗다. 단풍나무나 신나무는 잘 익은 홍옥보다도 더 빨갛다. 주황과 갈색, 그리고 노란색이 한 잎에 채색된 칠엽수의 큰 잎 다발은 담채화처럼 곱다. 수종마다 자기체형에 맞춰 진화된 나뭇잎들이 다양한 모양으로 봄부터 가을까지 한살이를 하고 이제 침잠의 시간으로 들어서고 있다.

1시간이 조금 넘는 산책을 마치고 숲길 입구로 돌아왔다. 소슬바람에 졸참나무 잎들이 아침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대지에 나풀나풀 별빛처럼 내린다. 이제 나무들은 체로금풍(體露金風)의 시간을 온몸에 세기며 돌아올 봄을 기다릴 것이다. 그러고 보니 모든 생명이 낮은 곳으로 내려 근원을 찾아 돌아가는 계절이다. 떠날 때를 알고 대지 위로 내려와 흙으로 돌아가는 나뭇잎들의 순회가 자연스러워 숙연하다. 노자의 도덕경에서는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고 했다. 땅과 하늘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도에 이르는 길이리라

사방댐 아래로 야윈 몸피를 추스르며 낮은 목소리로 졸졸졸 흐르는 개울은 '상선약수(上善若水)' 물과 같이 살라 한다. 가을이 깊다. 온몸과 마음에 계절이 사무친다. 물처럼 바람처럼 시(詩)처럼 살고 싶다. 그렇게 살다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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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물처럼 바람처럼 시(詩)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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