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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어느 늦은 가을, 난 이사 갈 전셋집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작지만 혼자 살기에는 여러모로 좋은 환경이 갖추어져 있어 너무 만족스러웠던 나의 전셋집, 오피스텔의 주인이 갑자기 연락을 했다. 이번 계약이 만료되면 전세를 빼달라는 요지의 말이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서울에서 오피스텔 전세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기 때문이다. 가뭄에 콩 나듯 전세가 나오면 수많은 지원자들 중 나에게 연락을 해줄 공인중개사를 감별해내는 치열한 눈치싸움과 방을 보는 것과 동시에 계약금을 걸어야 하는 속도전은 기본이었다. 3대가 덕을 쌓아야 전세를 구할 수 있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공인중개사는 전세를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던 나에게 작은 아파트를 사는 건 어떠냐고 물어보셨다. 지난 4월 15일 서울 서초구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무소 앞에 전월세 시세표가 붙어있는 모습.
 공인중개사는 전세를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던 나에게 작은 아파트를 사는 건 어떠냐고 물어보셨다. 지난 4월 15일 서울 서초구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무소 앞에 전월세 시세표가 붙어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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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돌리고 발품을 팔며 30여 개의 부동산을 전전하며 돌아다녔지만, 마치 돌림노래처럼 '전세는 없어요. 혹시 들어오면 연락 줄게요.'라는 몹시도 믿음이 안 가는 멘트만 들었다. 그와 함께 전세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 목록 마지막에 나의 연락처가 자리 잡곤 했다.

날짜가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마음은 타들어가고, 이사를 가야하는 날까지 집을 구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숨이 턱턱 막히기를 며칠째, 부동산의 공인중개사께서 발을 동동 구르고 다니는 게 안타까웠는지 그럼 작은 아파트를 사는 건 어떠냐고 물어보셨다.  

살고 있던 오피스텔 주변으로 아파트촌이 형성되어 있었지만, 오피스텔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아파트에서 살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더구나 아파트 구매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터었다. 무심히 오고가던 길 양쪽으로 조금 연식이 된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게 그제서야 눈에 들어온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낡은 아파트를 사라고?'  

한 번도 염두에 둔 적 없는 제안이었지만 워낙 전세를 찾기 힘들었던지라, 평수도 작고 오래된 아파트여서 2억 원 정도만 주면 구입이 가능하다는 공인중개사의 말에 '그래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쳐갔다.

그리고 공인중개사의 말이 이어졌다.

"근데, 젊은이들이 이 아파트만 보러 가면 질색하고 집을 나오더라고요. 깔끔한 아파트만 찾으니까. 리모델링 싹 하고 들어가면 새 집이나 다름없으니까 한번 보기나 해봐요."

얘기만 들어도 아파트의 모습이 눈에 훤히 그려졌다. 지어진 지 20년이 훌쩍 넘은 아파트는 세월의 흔적을 안팎으로 지니고 있었을 테고,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이 그 흔적 위에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거다. 깨끗하고 깔끔한 집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들이 꿈꾸는 집은 아니었을 거란 뜻이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그래볼까 했던 내 마음도 쏙 기어들어가 버렸다.

"아니에요, 전 그냥 오피스텔을 구해볼게요."

깨끗한 환경과 경비원들이 상주하는 안전한 생활권을 가장 중요시했던 나에게 낡고 오래된 아파트는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빨리 집을 구해 당장 이사를 가야할 판인데 한가롭게 리모델링이나 하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속전속결. '빨리 구해서 빨리 이사 가자'를 다시금 마음에 새기며 아파트에 대한 생각은 깨끗하게 접고, 오피스텔 전세 구하기에 다시 박차를 가했다.

다행히 집주인 마음이 변해 1년간 계약이 연장되어 '당장의 집 구하기'는 일단락되었다. 당시 마치 유목민처럼 전세를 구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생활에 환멸을 느껴, 전세 계약이 끝날 무렵 오피스텔을 구입해 이사를 가면서 나의 '전세 유랑민' 생활은 끝이 났다.

이사 온 지 벌써 5년 차. 얼마 전부터 아파트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재택이 많아지면서 작은 오피스텔이 답답하기도 했고, 베란다가 있는 곳에서 한번은 살아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워낙 부동산에 관심이 없던지라 '집값이 천정부지'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얼마가 있어야 아파트를 살 수 있는지 개념조차 잡지 못한 터였다.

그러던 차에 인터넷으로 찾아본 아파트의 매매가는 충격과 공포였다.
  
서울 도심 아파트 단지와 주택들.
 서울 도심 아파트 단지와 주택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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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일 스쳐 지나가던 평범한 아파트가 7억~8억은 기본이고 10억을 훌쩍 넘어있었다. '이런 집 언젠가는 살 수 있겠지.' 턱없는 호기를 부리던 나는 세상물정을 모르는 그저 애송이였다. 그러다 기억의 끝자락에 걸려있던 그 2억짜리 아파트가 생각났다. '올라야 뭐 얼마나 올랐겠어.' 생각하며 검색을 하던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매매가를 확인했다.

'응? 이게 뭐지? 오타인가? 7억!?!'

너무나 놀랍게도 2억짜리 집은 5년 사이 7억으로 다시 태어나있었다. 이 정도면 환생 수준 아닌가. 1993년에 지어진 46제곱미터, 평수로 따지면 13.93평에 불과한 아파트가 포부도 당당하게 7억 딱지를 붙이고 있었다. 몇 년 사이에 3배 이상 집값이 오르는 건, 저 멀리 강남 금싸라기 땅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했던 건 엄청난 오산이었다.

그때 정확히 깨달았다. '이제 내가 서울에서 아파트를 사는 건 불가능한 일이구나. 2016년 늦은 가을, 그때가 내가 집을 살 수 있던 마지막 기회였구나'라는 걸 말이다. 한 치 앞을 보지 못하고 공인중개사의 제안을 묵살했던 당시의 나를 원망해야 하는 건지, 끝도 없이 오르기만 하는 부동산 정책을 책망해야 하는 건지 마음이 어지러웠다. 조용히 인터넷을 끄고 생각했다. 이렇든 저렇든 결론은 하나, 아파트는 못 산다. 지금 사는 곳에서 그냥 살자.

대한민국 서울에서 로또로 불린다는 '1% 가능성'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는 것도, 어깨가 부서지도록 대출을 가득 짊어지고 아파트를 사는 것도 나에게는 불가능의 영역으로 들어가 버렸다. 얼마 전 30년 상환으로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샀다는 직장동료에게 축하를 건네면서도, 30년 동안 빚을 갚는 것도 참 쉬운 일은 아니겠다 싶어 씁쓸함이 밀려온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그냥 산다. 물론, 1%의 가능성을 아직은 쥐고 있는 나의 주택청약통장을 보며 다음에는 청약을 넣어봐야지 결심하지만, 될 리 없는 그 가능성에 목을 매지는 않는다. 아파트는 없어도 99%의 현실에서 행복할 방법이 혹시나 있을지 찾아봐야겠다. 서울에 아파트는 없지만, 나는 오늘도 나의 현재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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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꿈을 꾸는, 철없는 어른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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