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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가치가 퇴색하는 세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급격한 자동화로 인간의 노동 그 자체가 종말을 고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마주했던 노동 현실의 민낯을 보며 현장의 관찰자이자 조율자로서 신입 노무사가 보고 겪고 느낀 것들을 독자와 공유합니다. [편집자말]
"100세 시대"라는 표현처럼 평균수명이 상당히 늘어나면서 정년 이후의 삶을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법적 가동연한(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을 것으로 인정되는 법적 한계 연령)이 지난 뒤의 즐거운 사생활을 꿈꿀 수 있게 된 것은 의학과 사회·경제적 발전이 뒷받침된 덕택이다.

그러나 노무사 업무를 하다 마주한 '정년 이후의 삶'이란 위와 같은 장밋빛 꿈과는 괴리가 있다. 절대다수의 고령자들은 정년까지 충분한 경제적 대비를 하지 못하기에, 결국 노구를 이끌고 20대 젊은이들처럼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게 된다. 통계 또한 외환위기 이전인 1994년에는 만 60세 이상 인구 중 28.5%만이 일을 하였으나, 점진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여 지난 2020년에는 그 비율이 35.3%까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e-나라지표).

여기까지만 보면 '단순히 고령자의 건강상태가 예전보다 좋아 일을 오래 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질문할 수도 있지만, 세부적인 부분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1994년 취업한 고령자 중 단순노무종사자의 비율은 21.1%에 불과했지만 2020년에는 무려 48.7%가 단순노무종사자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반면 전문가나 준전문가의 비율은 같은 기간 3.3%에서 2.0%까지 감소했다(e-나라지표). 이는 고령자 일자리의 질이 악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 중심에는 '촉탁직'이라는 명칭으로 관행이 된 정년 이후의 기간제 근로계약이 있다.
  
촉탁직, 배려인가 착취인가

촉탁직은 법률용어는 아니다. 다만 "법 또는 사업장에서 정한 정년이 지난 이후에도 1년 단위로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를 촉탁직이라고 부르고 있다.

촉탁직을 활용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기업은 경영난을 이유로 신규 인력 채용을 부담스러워하지만 거꾸로 갑작스레 인원이 줄어드는 것도 경계한다. 특히 사업장에서 오랜 경력을 가진 고령자들의 경험이라는 암묵지는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이기에 비용 부담만 없다면 이들을 계속 고용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정부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고령자고용법)을 제·개정하여 정년 이후에도 고령자들이 노동 시장에 계속 남아있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렇듯 더 일하고 싶은 노동자, 비용을 줄이려는 사용자, 노인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정부 3박자가 맞춰져 촉탁직이 탄생했다.

그러나 정부의 본래 의도와 다르게 촉탁직은 결과적으로 비전형적이며, 저임금의 노동력을 합법적으로 이용하는 방식으로 변질되고 있다. 기업은 소위 아웃소싱의 대상이 되는 비숙련 일자리 위주로 촉탁직을 고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노인 일자리로 알려진 경비원이나 청소노동자들을 채용할 때, 애초에 정년에 거의 도달한 준고령자들을 채용하고 이들이 정년을 도과한 뒤 '합법적인 리셋'을 거쳐 1년 단위 계약직 근로자로 사용하는 일이 대표적이다.
  
법제화 딜레마

위에서 말한 합법적인 리셋이란 크게 두 가지 법에 기반한다. 첫째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기간제법)이다. 이 법 제4조 제1항에서는 기간제 근로계약의 한도를 최대 2년으로 정하면서 만 55세 이상의 고령 노동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는 예외로 정해 무기한 1년 단위 계약을 허용하고 있다. 이 법률은 고령자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거꾸로 사실상 해고가 어려운 정규직 내지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해야 하는 '위험'을 합법적으로 제거해 주는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둘째는 고령자고용법이다. 이 법 제21조 제2항에서는 촉탁직 고용시 "당사자 간 합의에 의하여" 퇴직금 및 연차유급휴가의 계산을 위한 계속근로기간에서 종전의 근로기간을 제하고 임금수준을 다시 합의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이는 기업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취지로 합당한 점도 있다. 문제는 이에 따라 사실상 같은 업무를 계속하고 있는데도 연령만으로 같은 기간 근무한 다른 노동자들보다 불이익을 받는다는 점이다. 이는 분명 연령을 사유로 한 차별이나 모두가 알면서 쉬쉬하고 있다.
  
정년 퇴직 후 구직을 원하는 한 고령자가 채용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2018.9.19
 정년 퇴직 후 구직을 원하는 한 고령자가 채용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2018.9.19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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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 법은 고령자의 일자리 수를 늘린다는 양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훌륭한 기능을 하고 있지만 질적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헐값에 노동력을 공급받는 합법적 수단이 있다 보니 기업이 촉탁직을 활용하지 않으면 바보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됐다. 이는 장기적으로 노인 빈곤율 증가나 줄어드는 일자리를 두고 고령자들과 나머지 세대가 반목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정부는 뾰족한 대안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이들의 고용형태가 기간제다 보니 기존 기간제 노동자들에게 적용되었던 '갱신 기대권'이나 '정규직 전환 기대권' 등의 판례 법리를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도 문제가 되고 있다. 

대법원(2017. 2. 3. 선고, 2016두50563 판결)은 촉탁직은 일반적인 갱신 기대권 판례 법리 외에도 "직무의 성격에 의하여 요구되는 직무수행 능력과 당해 근로자의 업무수행 적격성, 연령에 따른 작업능률 저하나 위험성 증대의 정도, 해당 사업장에서 정년을 경과한 고령자가 근무하는 실태 및 계약이 갱신되어 온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며 사실상 완화된 기준을 제시하여 '쉬운 해고'가 가능하도록 했다. 물론 그렇다고 위와 같은 연령에 따른 제반 이슈를 무시할 수도 없으니 법원으로서도 참 난감했을 듯하다.
  
고령자와의 공생

모든 문제가 그렇듯, 촉탁직 고령 노동자 문제도 다각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특히 본 연재 제목인 '노동의 종말'이라는 차원에서, 전형적 노동으로부터 퇴장하는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지금 시점에서 풀어내지 못한다면 상처가 곪고 썩어 다시는 고칠 수 없게 될 것 같아 우려스럽다.

먼저 단순히 '양적 증가'에 목매는 현재의 법적·제도적 방향을 전면 개선할 필요가 있다. 살펴보았듯 위 기간제법과 고령자고용법의 취지와 이에 따른 노인 고용률 개선의 측면은 이해하나, 국가가 나서서 저임금 일자리를 양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용률 자체는 점진적으로 늘어나더라도 그 일자리의 질적인 차원을 고려하여 고령자고용법에서 적어도 임금을 삭감할 경우 '정당한 사유' 내지 '합리적인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명시하고 하위규범에서 그 기준을 정해야 한다.

가령, 직무 특성상 육체노동의 경우에는 노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노동력 상실을 고려하여 임금을 삭감할 수 있도록 하지만, 그 외의 경우에는 '객관적인 업무능률 저하'가 입증되지 않는 한 기존의 임금을 보전하는 방향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는 개인의 신체적 특성을 무시하고 단순히 연령만으로 그가 "예전처럼 일을 못 할 것"이라고 가정하여 일괄적인 불이익을 허용하는 현 법제의 차별적 소지를 해결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제도의 변화에 따라갈 수 있는 우리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일자리라는 파이 자체가 줄어드는 형국에서, 청·장년의 인식이 고령자들을 경쟁자로 여기며 배제하려는 쪽으로 형성되고 이를 언론이 부채질하는 듯해 안타깝다. 고령자들의 갑작스러운 노동시장 퇴장은 사회적 비용을 급증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그 세수를 우리가 감당한다고 생각한다면 마냥 '남의 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도 늙고, 언젠가는 은퇴한다. 거꾸로 그들도 언젠가는 청년이었고 우리의 선배였으며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발판을 닦아놓은 사람들이다. 단순히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불이익한 노동 환경을 감수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렇기에 사회 구성원 모두가 촉탁직으로 대표되는 고령자들의 불명예 퇴장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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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조은노무법인 책임노무사, HR 책임컨설턴트 // 前 YTN 보도국 영상취재1부 영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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