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현재 국회에서 논의가 멈춘 '언론 징벌적 손배제 도입'과 관련해 이봉수 전 세명대저널리즘스쿨 교수가 글을 보내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지난 9월 29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연기'되고 11월 5일로 37일이 경과하는 사이 모든 것이 '탄로'났다. 기득권 언론과 현업단체들은 언론중재법 개정 자체에 반대했고,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도 별 의지가 없었다는 속내가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다.

개혁 대통령 당선 후 취임 전이 골든타임?
 
청와대 전경.
 청와대 전경.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먼저, 정부의 개혁의지 부족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의지가 부족한 정부가 개혁실패로 가는 경로는 비슷하다. 한국사회에 올곧은 목소리를 내온 원로학자가 청와대 고위 당국자에게 들은 말을 며칠 전 내게 전해줬다. '개혁 대통령이 당선되면 5월 9일 취임 때까지 두 달이 국회에서 언론중재법을 개정할 골든타임'이라는 것이다. 이는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다. 박병석 국회의장과 함께 법안을 '연기'한 주역인 청와대 고위 당국자의 '정무적 판단'이 겨우 그 수준이었던가? 단기적인 '정무적 판단'이 장기적으로는 '판단미스'가 되기 십상이다.

집권세력이 책임지고 언론과 부동산 제도 등을 개혁했더라면 촛불시민은 물론 중도층도 정치의 효능감을 느꼈을 터이고 대선의 승패까지 불투명한 상황으로 몰리지는 않았을 터이다. 촛불시민은 언론피해구제법안 하나 통과시키지 못한 정권에 실망하고 있다. 절대다수 언론이 몇 달 동안 줄기차게 반대 논조를 폈지만, 국민 여론은 지금도 언론중재법 개정에 찬성이 압도적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의 10월 15~19일 조사에 따르면 '찬성'은 76.4%이다.  

사회적 합의론의 속내

기득권 언론과 현업단체들은 더 기세등등해졌다. 조·중·동은 법안 '연기' 직후인 10월 1일자 사설에서 '언론징벌법 국내외 규탄에 물러선 민주당, 민주 이름을 생각하길' <조선일보>, '언론징벌법 연기 아니라 폐기가 답이다' <중앙일보>, '국격만 훼손하고 일단 멈춰선 언론악법 폭주' <동아일보> 등으로 법안을 매도하고 완전 폐기를 주장했다.

법안 반대를 위해 수많은 가짜뉴스를 동원하던 수법은 이들 사설에서 억지 주장으로 이어졌다. <조선일보>가 주장한 '민주'란 도대체 무엇인가? 여론이 반드시 옳다는 건 아니지만, 언론중재법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 5월 리서치뷰 조사에 따르면 언론개혁 필요성에는 국민 67%가 '공감'하고 '비공감'은 22%였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80%가 '찬성'하고 '반대'는 13%뿐이었다. 보수언론과 언론 현업단체들은 국민적 여망을 배신하면서 자기네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도 '민주'를 참칭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연기가 아니라 폐기가 답'이라는 <중앙일보> 사설에는 감춰진 본심이 드러난다.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말은 반대 진영의 '지연 작전'이었고 진심은 폐기에 있었던 것이다. <동아일보>는 언론중재법 개정 시도가 '국격만 훼손' 했다는데, 언론 신뢰도 세계 꼴찌인 나라 언론이 '이대로가 좋다'는 식이면 국격은 언제 올라가나?

과거 보수언론에 맞서 진보 의제를 밀고 가던 진보신문들도 많이 우경화해 특히 언론개혁에 관해서는 소극적이거나 반대하는 논조를 보였다. 기성언론의 지형은 '기울어진 운동장' 정도가 아니라 '깎아지른 절벽'이 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실 폐쇄 등 언론개혁을 시도했을 때도 진보신문은 보수언론과 공동전선을 형성해 정부에 대항했다. 선진국에서는 개방된 브리핑룸을 둘지언정 폐쇄적인 기자단이 정부청사를 공짜로 사용하고 그들에게만 '취재 특혜'를 주는 데는 없다. 특혜는 유착으로 이어진다. 언론중재법과 관련해 기자단은 사주나 자본으로부터 언론 자유나 국민의 피해구제에는 별 관심이 없고 기성언론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데 단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야 동수 18인특위는 합의 불가능
 
지난 9월 8일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원내수석부대표(앞줄 왼쪽)와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수석부대표(앞줄 오른쪽) 등이 국회 운영위 소회의실에서 열린 언론중재법 여야 8인 협의체 상견례 겸 1차 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원내수석부대표, 송현주 한림대 교수, 김용민, 김종민 의원, 국민의힘 최형두, 전주혜 의원,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추경호 원내수석부대표. 더불어민주당 추천 김필성 변호사와 국민의힘 추천 신희석 법률분석관은 이날 첫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지난 9월 8일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원내수석부대표(앞줄 왼쪽)와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수석부대표(앞줄 오른쪽) 등이 국회 운영위 소회의실에서 열린 언론중재법 여야 8인 협의체 상견례 겸 1차 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원내수석부대표, 송현주 한림대 교수, 김용민, 김종민 의원, 국민의힘 최형두, 전주혜 의원,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추경호 원내수석부대표. 더불어민주당 추천 김필성 변호사와 국민의힘 추천 신희석 법률분석관은 이날 첫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절대다수 국민이 염원한 '가짜뉴스로부터 자유'와 '실질적인 언론 피해구제'는 적어도 문재인 정부가 주도할 수는 없게 됐다. 언론노조와 기자협회 등 현업단체들은 여야 동수 18인으로 구성되는 언론미디어제도개선특위 구성을 적극 찬성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 특위는 한 달이 지나도록 개선 논의는커녕 위원회조차 구성하지 못했다. 중간에 3주간 국정감사를 하긴 했지만 여도 야도 거들떠보기 싫은 애물단지가 된 것이다.  

언론현업단체들은 신문협회와 편집인협회 등 사용자단체와 함께 '표현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위원회'를 발족해 자율 규제를 하겠다고 했다. 참여 언론사에는 정부가 조성한 언론진흥기금과 지역신문발전기금 또는 포털에서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요구까지 나오고 있다. 현업단체에게 묻는다. 자율 규제가 진정으로 실효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언론중재법의 핵심조항들을 '독소조항'이라며 비판해 여당이 일부 수용하자 '누더기 언론중재법, 폐기가 답'이라고 주장했다. 법안을 누더기로 만든 장본인이 '누더기가 됐으니 폐기하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현업단체들은 국민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자율규제라는 형용모순

사실 '자율규제'라는 말 자체가 형용모순에 가깝다. 규제는 자율로 이뤄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기자로 일할 때 재벌이나 직능단체들이 각종 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반성이나 자율 규제 결의를 해왔으나 스스로는 거의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타율 규제의 예봉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니까.

규제는 기업을 억압하려는 게 아니라 시장의 질서를 세우려는 것이다. 신문사와 광고주의 자율기구인 한국ABC협회는 회원사의 시장교란행위를 오히려 공인하는 구실을 해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주체들은 제재와 인센티브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생존을 건 상업경쟁이 벌어지는 언론시장에서 '우리 이러지 맙시다' 하는 도덕주의는 힘을 받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대형 언론사는 선정적 기사의 온상이 되고 있는 어뷰징팀이나 자회사까지 두고 있는데 자율규제가 가능할까? '표현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 위원회'에는 신문협회와 편집인협회도 들어가 있으니 언론노조와 기자협회가 그런 조직을 없애자고 요청한다면 받아들일까? 거기서 큰 이익이 나는데? 포털 규제와 징벌적 배상제 같은 강력한 규제 없이 언론 신뢰도는 세계 꼴찌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다.

'탐사보도 위축된다'던 기성언론이 '대장동' '고발사주' 왜곡 

언론중재법 개정 반대논리로는 '대장동 개발'과 '고발사주' 사건도 동원됐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같은 말을 했지만 '언론재갈법이 통과되면 대장동 보도는 없었을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징벌적 배상제에 반대해온 보수언론은 진실 보도에 기여하기보다 물타기에 바빴다. '고발사주' 사건에서도 <조선일보> 등은 '제보사주' 프레임으로 메신저를 공격했다. 두 사건 탐사보도의 최대 공로자는 징벌적 배상제에 찬성하는 <열린공감TV>와 <뉴스버스>였다.
  
최근 불거진 대형 비리사건의 공통점은 언론인이 비리의 주역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언론인이 부패를 눈감아주는 유착 단계를 넘어 공익을 배신하고 사익추구를 공모하거나 주도하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거대권력이 된 언론사의 핵심 간부들, 특히 법조기자단 출신이 부패 카르텔의 중심에 섰다. '가짜 수산업자' 사건에서는 뇌물과 성접대까지 받았다. 이런 때 각 언론사나 언론단체들은 기자나 회원 또는 회원사를 제명 등으로 중징계하고 사과문을 발표하는 게 당연한데도, 자정 움직임이 없다.

개혁대상 아닌 시민의 목소리 경청해야
 
지난 8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 관련 자료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다.
 지난 8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 관련 자료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언론중재법 개정 국면에서 지적돼야 할 가장 큰 문제점은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는 안 들리고 개혁대상의 목소리가 너무 과도하게 반영된다는 것이다. 언론중재법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자 시민단체인 언론인권센터 정도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논평했다. 그마저 <미디어오늘> <슬로우뉴스> 등을 빼고는 보도한 데가 없다.

국회 언론특위를 여야 동수 8인위원회에 이어 18인위원회로 구성한 것 자체가 '민의 왜곡'이다. 국민은 범여권과 보수야당에 180 대 120으로 의석을 배분해줬는데 150 대 150으로 바꿔치기 해버린 셈이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특위가 구성되기도 전에 "언론중재법에 징벌적 손배제 넣자고 하면 합의를 못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현업5단체는 "12월 31일로 정해진 시한을 철회하고 21대 국회 임기 종료 시점까지 특위를 존속해 언론계, 학계, 현업단체, 시민사회 등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사실상 보수야당이 소수당인 21대 국회에서는 처리하지 말라는 요구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언론의 방종'이 민주주의를 위협 할 때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헌법 21조에 함께 규정된 '언론자유'와 '피해구제'라는 기본권 상충 문제를 온건하게나마 해결하려는 일부 법조항 개정에 불과하다. 2004년부터 치면 법 개정이 17년간 지연되면서 언론 피해를 입은 시민이 속출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없어 대개 소송을 포기한다. 2019년 가로세로연구소가 허위사실로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명예를 훼손했다가 피소됐지만, 지난 10월 2년만에 내려진 2심 손해배상액은 고작 500만 원이었다.

민간기업에 언론 자유라는 권능을 준 것은 민주주의를 지키라는 사명감도 함께 수여한 것이다. 언론의 방종이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한다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여당은 개혁대상이 아니라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의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법안은 훨씬 더 강화해야 옳다고 보지만, 최소한 '협치'라는 미명으로 입법후퇴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여론에 따라 법안을 통과시키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것이 민주주의다.

댓글1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쓴이는 조선일보 기자, 한겨레 경제부장,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초대원장(2008~2019)을 역임한 언론인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