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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과 창덕궁 주변 가회동과 혜화동, 성북동 일대는 옛날 풍취가 드문드문 남아있어 거닐어볼만 한 길이다. 종로구는 삼국시대 이래의 수도 서울로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동네이다보니 행정구역상 87개나 되는 법정동이 있다.

아마 서울 시민도 처음 듣는 지명이 있을 것이다. 경복궁 우측 담장길을 따라 소격동과 중학동이 있다. 수송동과 견지동에 걸쳐 조계사가 있으며 훈정동에는 종묘가 자리하고, 창덕궁이 바로 와룡동이다. 종묘 서편으로 담장을 따라 권농동과 봉익동이 자리한다.

쌀쌀한 날씨, 만추의 계절에 산책 코스로 훌륭한 종로구 일대를 소개한다. 3호선 안국역을 나와 삼청-와룡공원을 넘어 성북동 일대와 성균관대(명륜당)를 거닐어 보는 코스다. 필자와 같은 길맹을 위하여 지도를 만들어본다면 다음과 같다. 
 
삼청공원, 명륜당, 와룡공원 산책 루트
▲ 궁궐의 뒷길로 난 단풍 코스 삼청공원, 명륜당, 와룡공원 산책 루트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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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의 시작은 안국역 2번 출구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도보로 약 15분쯤 걸으면 삼거리 길에 감사원과 삼청공원, 중앙중학교가 모여 있다. 만약 시간을 아낄 요량이라면 마을버스(종로02)를 타고 감사원이나 종점(성대 후문)에서 하차하면 된다.

삼청공원에는 정몽주와 어머니의 시조비가 있어 살펴보는 재미가 있으며 숲속도서관에서는 책과 함께 간단한 음료도 마실 수 있다. 봄철에는 화사한 벚꽃 아래로 호젓한 산책을 즐길 수 있고 가을날에는 단풍이 화사하게 물들어간다.
 
▲ 궁궐의 단풍 뒷길, 명륜당, 와룡공원, 삼청동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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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의 지명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소격서(昭格署, 도교 의식을 행하던 관청)가 있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물과 숲, 인심이 맑아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으나 지금의 경복궁 우측 소격동이란 명칭으로 볼 때 전자에 더 무게가 실린다.

상(은)나라가 멸망하고 주나라가 세워지는 혼란기를 다룬 역사 판타지 소설 봉신방(봉신연의)에는 도교의 여러 신선들이 등장한다. 하늘에 주재하며 온 세상의 조화를 이루는 삼신을 가르켜 옥청(玉淸), 상청(上淸), 태청(太淸)이라 한다.

여기에 인격화된 신성을 부여하여 각기 원시천존, 영보천존, 도덕천존이라 부르기도 한다. 도교의 시조인 노자가 바로 도덕천존이며 태상노군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조선시대 때 도교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관청이 바로 소격서다.

한적한 숲속도서관에서의 풍류

삼청동(三淸洞)에서 바로 위쪽의 삼청터널을 지나면 바로 숙정문이 나오는데 도보로는 갈 수 없다. 청와대를 내려볼 수 있는 북악산길이라 진입이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노무현 정부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막혀있던 일부 구간을 오픈하고 있으니 서울 시민에게 또 하나의 볼거리를 선사해 주고 있다.

삼청공원 산길을 타게 되면 숙정문 말바위 안내소에서 출입증을 발부받아 북악산 둘레길을 거닐어 볼 수 있다. 이쪽 길은 언론에 많이 보도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으므로 호젓한 산책을 원한다면 와룡공원 방면으로 내려오는 것을 추천한다.
 
성북동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오는 산책 코스.
▲ 와룡공원 성곽길 성북동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오는 산책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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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길을 따라 서울국제고와 서울과학고로 내려오는 길의 단풍이 볼만 하다. 와룡공원 바로 북쪽에 있는 북정마을을 지나면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이 지척이다. 총독부가 싫어 일부러 북향으로 터를 잡고 한용운이 거처했던 집이다.

창덕궁의 북쪽에 있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인 성북동은 여러 외국 대사관이 늘어선 거리이며 예로부터 고관대작이 모여살던 부촌 중 한 곳이다. 북악산 마루에 즐비한 고급 주택가를 걷다보면 아파트가 빽빽한 서민들의 주거 공간과는 분명히 결을 달리하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시내에 몇 안 남은 달동네인 북정마을과 더불어 고급 주택이 공존하는 곳이다.

5백년 역사를 간직한 명륜당 은행나무

와룡공원까지 가지 않고 창덕궁 뒷길을 따라 성균관으로 나오는 길도 괜찮다. 중앙중학교 옆길을 따라 창덕궁 뒷길로 오르는 소로를 타면 바로 성균관 후문, 종로02번 마을버스의 종점이다. 그 바로 위쪽의 와룡공원 정류장과 가까우니 아무데나 내려도 된다. 성균관은 고려시대의 국자감을 이은 조선의 국립대학으로서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조선팔도의 유생은 물론이요 왕세자(양녕대군, 연산군, 광해군, 사도세자, 순종)까지 합숙을 하면서 공부를 했다. 은행나무는 유학을 상징하는 나무다. 왜냐하면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강의를 했기 때문이다. 1천원 권의 퇴계 이황이 성균관의 대사성(大司成, 정3품 벼슬)으로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뒷면에 나온 전각이 명륜당이다.
 
500년을 훌쩍 넘은 고목의 노란 단풍이 멋지다.
▲ 명륜당 앞 은행나무 500년을 훌쩍 넘은 고목의 노란 단풍이 멋지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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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를 배경으로 인생샷을 남기고 있는 시민.
▲ 가을을 만끽하는 시민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인생샷을 남기고 있는 시민.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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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59호로 지정된 은행나무를 사이에 두고 명륜당과 대성전이 자리한다. 명륜당은 오늘날의 종합 강의실이며 대성전은 조선의 숭유억불의 정책에 따라 공자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성균관대학교는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1879~1962)에 의해 설립되었다. 1919년 3.1 운동 민족 대표 33인 명단에 유림 대표가 빠진 것을 천추의 한으로 여겼던 그는 전 재산을 내 놓고 성균관대를 세웠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부의장으로 활동하면서 항일운동을 펼쳤던 심산은 일제의 고문으로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해방 후에는 이승만 정권의 부패와 독재를 반대하여 또다시 옥고를 치뤘으며 1961년 5.16군사 정변 후 이듬해에 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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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를 펴냈다. 다음 세대를 위한 화보 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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