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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은 소소한 탐식을 통해 일상의 고단함과 노곤함을 이겨냅니다. 고독한 방구석 연주자인 임승수 작가는 피아노 연주를 통해 얻는 소소한 깨달음과 지적 유희를 유쾌한 필치로 전달합니다.[편집자말]
인터메조 Op.118 No.2는 독일의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가 환갑이 넘은 1893년에 작곡한 피아노 소품이다. 드라마 <밀회>, 영화 <색,계> 등에서 배경음악으로 사용될 정도로 대중적인 곡이지만, 드라마나 영화를 잘 보지 않다 보니 내가 이 곡의 매력을 제대로 인지한 것은 꽤 늦은 2020년이었다.

당시 유튜브 채널 또모TOWMOO에서 안종도 피아니스트가 한 음대생에게 이 곡을 레슨하는 영상을 봤는데, 브람스의 고향인 북독일 항구도시 함부르크의 저녁노을을 소재로 곡에 흐르는 정서를 해설하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안종도 피아니스트는 함부르크 국립음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니, 그에게도 함부르크는 남다른 의미의 도시일 테다.

Andante teneramente(다소 느린 템포로 부드럽게)의 가장조(A major)인 이 곡은 브람스 만년 작품이라 그런지 뭔가 지나온 삶을 관조하는 느낌이 들면서도, 그 안에는 어떤 대상에 대해 갖는 다정함과 애절함이 뒤섞인 아련함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연주 시간 5분짜리 소품이지만 그 안에 단어 하나 점 하나 덜어낼 수 없는 밀도의 운문으로 꽉꽉 눌러 채운 느낌이다. 곡이 자아내는 이러한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음악으로도 쓰였겠지. 관련 정보를 찾아보니 브람스는 이 곡을 '클라라 슈만'에게 헌정했다는데, 그제야 이 곡 전반에 걸쳐 흐르는 그 절절한 정서의 원천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절절한 정서의 원천
 
2010년 개봉한 영화 <클라라> 중 한 장면
 2010년 개봉한 영화 <클라라> 중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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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슈만은 당대에 손꼽히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다. 브람스와 클라라의 인연은 18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0살이었던 브람스는 지인의 추천으로 슈만의 집을 방문해 로베르트와 클라라에게 자신의 곡을 연주할 기회를 가졌다.

브람스의 연주에 충격과 감명을 받은 슈만 부부는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어 브람스라는 천재의 등장을 널리 알렸다. 하지만 슈만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당시 증세가 심해져서 라인강에 투신해 자살을 시도하는 일까지 벌이다가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1856년에 그곳에서 사망한다.

이 어려운 시기에 청년 브람스는 한동안 슈만의 집에 기거하며 마치 고용된 집사인 것처럼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온 힘을 다해 도왔다. 로베르트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클라라와 함께 정신병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심지어 브람스의 어머니가 자식에게 편지를 보내 왜 재능을 낭비하고 인생을 허비하느냐며 나무랄 정도였다. 클라라는 이러한 브람스에게 큰 신뢰를 느끼며 의지하게 되었고, 브람스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기품있고 우아하며 어딘가 우수에 찬 듯한 인상의 14살 연상 여인에게 깊은 애정을 느끼게 된다.

브람스는 자신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인 베르테르에 빗댈 정도로 클라라에 대해 애절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클라라에게 가장 중요한 단 한 사람은 로베르트였다. 클라라는 로베르트 사후 40년이 지난 1896년에 사망할 때까지 내내 독신으로 살았다.

사망 후 로베르트의 묘지에 함께 묻혔으며 묘지에는 클라라의 요청대로 자신이 로베르트를 바라보는 형태의 기념비가 세워졌다. 죽어서도 오직 남편만을 바라보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편단심 클라라를 가슴 깊이 사랑한 브람스 역시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다가 클라라가 사망한 이듬해인 1897년에 급속히 쇠약해져 세상을 뜬다.
 
클라라의 요청대로 자신이 로베르트를 바라보는 형태의 기념비가 세워졌다.
▲ 로베르트와 클라라 무덤의 기념비 클라라의 요청대로 자신이 로베르트를 바라보는 형태의 기념비가 세워졌다.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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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와 클라라는 여느 가족 구성원 이상의 신뢰와 애정을 갖고 평생을 교류했지만, 이렇듯 진정한 가족의 구성원이 될 수는 없었다. 브람스는 클라라의 73세 생일에 보낸 편지에서 이러한 자신의 처지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1892년 9월 13일
이 불쌍한 이방인이 오늘만은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변함없는 존경을 담아 당신을 생각하고 있으며, 나에게 가장 소중한 당신에게 모든 선함과 친절함과 아름다움이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나는, 불행히도 그 어느 누구보다, 당신에게는 이방인인 사람입니다.
 
클라라에 대한 수십 년의 순애보와 회한이 담긴 곡이 바로 인터메조 Op.118 No.2이다. 음악 자체도 인상적인 데다가 드라마 같은 뒷이야기까지 더해지니 불타오르는 연주 욕망을 참아내기 어려웠다.

브람스가 악보 곳곳에 숨겨 놓은 작곡 의도

일단 꽂히면 엄청난 조급함과 실행력이 발동하는 내 성정으로는, 종이 악보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간조차 참아낼 수 없어 바로 인터넷을 검색해 PDF 파일 악보를 내려받아 태블릿 PC에 띄워놓고 연습에 돌입했다(물론 악보는 따로 주문했다). 그렇다. 가족에게 '못 할 짓'이 시작된 것이다.

가끔 집에 손님이 오면 흥이 올라 내가 직접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는 경우가 있다. 곡 하나를 그럴싸하게 연주하면 손님이 손뼉을 치며 아내에게 '남편이 피아노 잘 쳐서 좋겠어요'라고 덕담을 건네는데, 그럴 때면 아내가 꼭 하는 말이 있다.

"지금 딱 결과물만 들으셔서 그렇게 얘기하시는 거예요. 저는 남편이 저렇게 치게 되는 과정을 계속 들었잖아요. 그게 참 못 할 짓이에요."

곡에 대한 애정이 클수록 연습의 빈도와 강도가 상승하는데, 이번 브람스 인터메조 Op.118 No.2은 인생곡으로 꼽을 정도로 취향을 저격당했으니 그 이후 벌어진 일은 이러하다.

"아빠는 왜 맨날 그 곡만 쳐?"
"여보! 좀 다른 곡도 치면 안 될까? 지겹다 지겨워."


하지만 클라라와 브람스가 우정과 신뢰와 사랑을 나누며 겪었던 세간의 구설과 마음고생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애들 장난 아닌가. 이 곡이 내 손으로 온전하게 연주되는 순간 브람스와 클라라의 사랑이 완성된다는 각오로 특훈에 돌입했다. 일단 테크닉 문제를 극복하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들을 때는 평이하게 느꼈는데, 막상 악보를 펴놓고 한 음 한 음 직접 누르니 아마추어 방구석 연주자에게는 다소 버거운 난이도였다.

하지만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매일매일 꾸준히 연습하니 벅차게만 보였던 기술적 문제가 차츰 해결되었고, 어느새 악보에 그려진 음표대로 건반을 누를 수 있는 수준에는 도달했다. 하지만 진정한 어려움은 이제부터다. 소리(sound)를 음악(music)으로 만드는 일이 남은 것이다.

주요 선율이 자연스럽게 인식될 수 있도록 최상성부 음을 베이스나 내성부보다 도드라지게 연주하며, 적재적소에 필요한 만큼만 페달을 밟아서 소리의 울림이 풍성하면서도 자칫 지저분하지 않도록 조절한다. 기분 내키는 대로 연주하다가 머나먼 달나라로 가지 말고, 악보 곳곳에 적힌 악상기호를 숙지해 작곡가의 의도에 어긋나지 않도록 주의한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기술적 문제를 극복하며 점차 곡의 내면으로 스며들다 보면, 손가락 신경쓰느라 분주할 때는 미처 발견할 수 없었던 비밀의 화원이 눈 앞에 펼쳐진다. 악보 곳곳에 브람스가 숨겨 놓은 작곡 의도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마치 어려운 퍼즐을 풀어낼 때나 느낄 법한 짜릿함을 경험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다음의 도입부 악보를 보면 '모티브'라고 빨간색으로 표시해 놓은 곳이 있다. 해당 부분의 최상성부 멜로디를 보면 '도#-시-레, 도#-시-라'로 움직인다. 이 짧은 모티브가 다양한 방식으로 곳곳에 등장하며 곡에 통일성과 형식미를 부여하는데, 참으로 절묘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구체적인 몇몇 사례를 살펴보자.
 
도입부의 짧은 모티브가 다양한 방식으로 곳곳에 등장하며 곡에 통일성과 형식미를 부여한다.
▲ 브람스 인터메조 Op.118 No.2 도입부 도입부의 짧은 모티브가 다양한 방식으로 곳곳에 등장하며 곡에 통일성과 형식미를 부여한다.
ⓒ 임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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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악보는 곡의 28~37마디 부분을 옮긴 것이다. ①, ②, ③, ④로 표기한 곳을 보면 앞선 악보에 나오는 '모티브'의 앞부분 음형을 베이스 성부에서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espress.(표정을 풍부하게)라는 악상기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감정을 표출하는 부분인데, 격정의 원심력이 자칫 곡의 구조감을 취약하게 만들 수 있는 상황에서 베이스의 '모티브'가 구심력으로 작용해 곡에 짜임새를 부여한다. ④에서 '도' 음에 제자리표를 넣어 앞선 ①, ②, ③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 것도 인상적이다. 브람스의 의도를 읽어낸 피아니스트들은 ①, ②, ③, ④부분에서 의도적으로 베이스의 모티브 음이 잘 들리도록 연주하기도 한다.
 
곳곳에서 ‘모티브’의 음형을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 브람스 인터메조 Op.118 No.2의 28~37마디 곳곳에서 ‘모티브’의 음형을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 임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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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부분을 지날 때쯤 calando(점점 여리게)라는 악상기호가 나오고, 이윽고 내가 무척 흥미롭게 여기는 ⑤부분이 등장한다. 여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최상성부에서 '모티브'가 전위(轉位, inversion)되어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멜로디가 거꾸로 뒤집혔다는 뜻이다.

무심코 들으면 새로운 멜로디 같지만, 기실 모티브를 데칼코마니처럼 변용해 활용한 것이다. 모티브의 원래 음형은 '도#⭨시⭧레, 도#⭨시⭧라'인데, 이게 '솔#⭧라⭨파#, 솔#⭧라⭨시' 그러니까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모티브 음형 후반부의 '시⭧라'는 7도 상행이지만, 전위되어 나타나는 ⑤에서는 '라⭨시'로 7도 하행인 것이 특히 인상적이다.

브람스는 이곳에 dolce(감미롭게)라는 악상기호를 적었는데, 앞서 격정적인 음표들을 거치며 흘러내린 눈물을 닦고 차분하게 마음을 다스리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분위기의 전환을 '뒤집힌' 모티브로 표현하다니, 이런 센스쟁이!

곡의 종지부에서도 '모티브'는 어김없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다음 악보에서 ①로 표시한 부분을 보면 상성부와 베이스 가운데에 샌드위치처럼 낀 내성(內聲, inner voice)에서 모티브 '도#-시-레, 도#-시-라'가 등장한다. 브람스의 의도를 간파한 연주자는 모티브를 드러내기 위해 내성부의 음이 잘 들리도록 세심하게 연주하며, 마지막 마디 화음에서 모티브 멜로디의 구성음인 최상성부 '라'음을 강조하며 마무리한다.
 
내성(內聲, inner voice)에서 모티브 ‘도#-시-레, 도#-시-라’가 등장한다.
▲ 브람스 인터메조 Op.118 No.2 종지부 내성(內聲, inner voice)에서 모티브 ‘도#-시-레, 도#-시-라’가 등장한다.
ⓒ 임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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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에 '지속음'이라고 표기해 놓은 부분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cresc. un poco animato(점점 크게, 약간 활기 있게)라는 악상기호가 나오는데, 이 부분을 들어보면 잔잔한 마음에 작은 조약돌이 떨어지고 그 지점을 중심으로 파문이 일렁이며 점차로 퍼져나가 가슴 전체를 따뜻하게 채워나가는 느낌이 든다.

오른손의 멜로디는 그러한 파문을 표현하듯 일렁이는데, 왼손 베이스에서는 그와 반대로 '라' 음이 통주저음처럼 고집스럽게 이어진다. 지속하는 '라' 음이 클라라에 대한 자신의 일편단심을 표현했다면, 오른손의 일렁임은 클라라를 처음 만났던 20대의 시절처럼 여전히 맥동하는 자신의 심장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숨은 이야기를 몰라도 느껴지는 감동

곡에 숨겨진 브람스의 의도를 하나씩 발견할 때마다 그 치밀함과 교묘함이 마치 정교하게 설계된 건축물과도 같아, 작곡가 브람스의 원숙함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로 형식과 구성 등의 작곡 기법에만 매몰되면 음악의 자연스러움을 훼손하기 쉽고, 즉흥적이고 즉자적인 아름다움만 추구하다 보면 곡의 뼈대가 허약해지기 마련이다.

브람스는 이 소박한 피아노 소품에서 숙련된 건축가의 설계도 같은 탄탄한 구성미에 아이가 동요를 흥얼거리는 듯한 자연스러움을 동시에 담아내어, 극한에 다다른 내용과 형식의 일치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렇게 고막을 통해 느껴지는 찰나적 정념에만 매몰되지 않고 전두엽의 이성을 동원해 곡을 분석하다 보면, 클라라와 브람스의 관계 같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경험들이 용해되고 그 내용물이 가장 추상적인 예술이라 할 수 있는 음악의 형식으로 주조되어 '보편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체험하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보편성을 취득한 음악을 들으며 굳이 클라라와 브람스 사이의 구체적 사랑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심지어 그런 뒷배경을 모르더라도 순수한 음악 자체의 울림만으로 감동을 받는다.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보편성을 취득한 음악이 결국 청취자의 구체적인 순간, 즉 기억의 사진첩을 건드리게 되는데, 그것이 안종도 피아니스트에게는 자신이 박사학위를 취득한 함부르크의 저녁 노을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구체적인 형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보편적인 음악은 청취자의 내면에서 구체성을 획득하게 되고, 각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향유한다. 이것이 구체성과 보편성을 넘나드는 음악의 놀라운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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