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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서울광장에 고 노태우씨 국가장 합동분향소가 마련되어 있다.
 29일 오전 서울광장에 고 노태우씨 국가장 합동분향소가 마련되어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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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병으로 오랜 병상 생활을 해온 노태우씨가 삶을 마감했다. 그의 사망으로 1980년 5월 광주학살의 진실규명의 한 단추가 사라졌다. 한 인간으로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41년여 동안 그의 진심어린 사죄 한 마디, 진실 규명에 대한 한 가닥 기대를 저버리지 못한 광주를 비롯한 이 나라 1980년 5월의 국민들은 아쉽다." 

2021년 10월 27일 광주 <무등일보> 사설의 첫 대목이다. 같은 날 대부분 언론의 속보는 "노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장(國家葬)으로 한다"는 소식을 알리고 있다. '국가장법'은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서거한 경우에 그 장례를 경건하고 엄숙하게 집행"하기 위한(제1조)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국가장이 결정되면 정부는 빈소를 설치·운영하며 운구와 영결식, 안장식을 주관한다. 물론 장례비용은 국고에서 부담한다. 장례 기간 중에는 조기를 게양한다. 

쿠데타와 학살, 죗값의 무게

<무등일보> 사설이 호명한 '노태우씨'가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긴 사람인지,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의 죽음을 보도하는 기사를 보면 '사망' '별세'라는 표현이 많지만 '죽어서 세상을 떠남'의 높임말인 '서거(逝去)'라 보도한 기사도 더러 보인다. 무릇 한 사람의 죽음 앞에 애도를 표해야하는 것은 당연지사, 애도의 방식인 장례를 두고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각박하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무엇 무엇을 빼면 "전두환 대통령이 그야말로 정치를 잘했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많다"는 발언의 파문을 생각하면 '전 대통령 노태우'의 죽음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사과'와 '인도사과'를 헛갈리는 사람이 했다는 그 '무엇 무엇을 빼면'의 '무엇'에 들어간 말이 "군사 쿠데타"와 "5.18"이라는 데 있다. 그가 말한 "군사 쿠데타"와 "5.18"을 정의의 여신이 들고 있는 저울, 민주주의와 대한민국 헌법 정신을 가늠하는 저울의 한쪽에 올려놓는다 치자. '12.12 쿠데타'와 '5.18 광주학살'이 갖는 죗값의 무게, 반민주, 반헌법의 무게는 너무나 무거워서 그 반대편에 어떤 것을 올려놓아도 기울어진 저울은 평형이 될 수 없다. 문제의 발언이 갖는 반 역사성, 반 민주성이 중대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40여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1980년 5월 광주학살에 대한 '진실 규명'이나 '진심어린 사죄'와 관련해 죽은 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살아있는 자 전두환
 
5·18 당사자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두환씨가 광주광역시에서 열리는 항소심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지난 8월 9일 오전 서울 연희동 자택을 나서며 손을 흔들고 있다.
▲ 손 흔들며 연희동 자택 나오는 전두환 5·18 당사자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두환씨가 광주광역시에서 열리는 항소심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지난 8월 9일 오전 서울 연희동 자택을 나서며 손을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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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살아있는 자 전두환은 어떤가. <아직 살아있는 자, 전두환>이라는 책이 있다. 책을 쓴 고나무는 1976년생이다. 저자 스스로 책의 서문에서 고백하고 있지만 그는 전두환·노태우가 "육사 선배들을 총으로 쏘고 육군의 최고 수장을 체포한 1979년에 세 살이었으며, 광주 시민 수백 명이 숨진 1980년에 네 살이었다." 그에게 전두환은 "악이었지만 박제된 악마"였고 "공포나 영감, 분노 같은 살아 있는 감정을 일으키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되묻는다. "나보다 더 젊은 세대에게는 어떨까?" 

구글에 '박정희 주의' '박정희 모델'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해보면 기사와 논문이 여럿 나온다. 반면, 아직 '전두환 주의'나 '전두환 모델'로 검색되는 것은 별로 없다. 기우일지 모르나 나는 2022년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적 국면에서 나온 "전두환 대통령이 정치를 잘했다"는 발언이 단순한 실언이 아니라 '전두환 주의' '전두환 모델'에 대한 탐색이나 기웃거림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전두환이 누구인가. 12.12 군사 반란, 5.18 당시 주한 미국대사였던 윌리엄 글라이스틴(William H. Gleysteen, Jr)은 "전두환은 유신의 아들(Chun Doo Hwan was a 'son of Yushin')" "(12·12) 쿠데타의 핵심 멤버들은 박정희의 유신 멘탈리티를 공유헀다"고 말한다(위 책 83쪽). 한 마디로 말해서 '전두환의 정치'는 '박정희주의'의 연장이요, 복제판이었다. 

몰상식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 직전인 2016년 11월, 칼럼니스트 박권일은 '박정희주의 종말론'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박정희주의'는 한국인의 마음에 가장 강력히 작용해온 '지배 레짐'이다. 우린 반세기 동안 박정희주의의 주술에 사로잡혔고, 박정희주의자로 살았고, 지금도 박정희주의자다. 한국의 유권자 다수는 분배보다 성장을 원하고, 경제 발전만 되면 노동탄압·언론억압 같은 건 눈감아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한겨레 21> 제1139호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전두환은 살아 있다. 아직 살아 있는 자 전두환, 그도 언젠가는 생물학적 죽음을 맞겠지만, 그와 그의 추종자들이 남긴 유산은 끈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다. 2016년 촛불집회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을 계기로 종말을 고한 듯 했던 '박정희주의'는 새로운 정치적 가면을 쓴 모습으로 재등장할 수 있다. 바라건대, 2022년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박정희의 정치' '전두환의 정치'를 운운하는 자들의 몰상식이 더 이상 허용돼서는 안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대전충남인권연대 뉴스레터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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