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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3명이 모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주민 참여의 문턱을 낮춘 마을공동체 지원정책이 내년이면 10년을 맞는다. 뜻이 맞는 주민들이 지역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직접 해결해 가며, 조금 더 행복해진 이야기들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변화. 그 10년의 이야기를 몇 차례에 나눠 실었다. 마지막 연재 글로 마을에서 활동하는 청소년에 대해 실으며 마을의 다음 10년의 이야기를 기대해본다.[기자말]
ⓒ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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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치구에는 '마을 청소년 이끔이'라는 역할이 있다. 청소년들의 마을 활동에 도움을 주는 일이다. 나보고 이 역할을 맡으라고 했을 때, 솔직히 너무 부담스러웠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라온 나조차도 마을이라는 이름이 낯선데, 요즘 청소년들은 오죽할까? 학원과 수행평가, 학적부, 시험 등에 치이고 쫓기면서 마을에까지 관심을 가지는 친구가 있을까?

그러나 이런 우려에도 마을자치센터에서 진행한 아동‧청소년 마을계획 공모에 신청한 청소년들이 있었다. 계획서는 어설펐지만 나름 회차별로 활동 계획을 열심히 쓰고 예산 계획까지 그럴듯하게 제출한 모습이 인상 깊었다. 게다가 오리엔테이션 때는 누구보다 당차게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계획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관심이 막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들과의 한 해는 마을과 청소년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을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마을에도 청소년이 있다
 
지역에서 내가 자주 찾는 곳을 퍼즐액자 작품으로 만들기
 지역에서 내가 자주 찾는 곳을 퍼즐액자 작품으로 만들기
ⓒ 이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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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궁금했던 것은 마을에 대한 청소년들의 생각이었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동네 여기저기서 어울려 노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요즘은 죄다 학원으로 몰려가고 유튜브에 빠져 있지 않은가? 이런 변화 속에서도 마을이 청소년에게 의미가 있을까?

"마을이요? 동네죠."
"내가 사는 집이 있는 곳이요."
"친구들이 있는 곳이요. 친구들이 있어서 내가 행복한 곳이요."
"내가 이웃과 함께 살고 있는 동네요."


대화를 이어갈수록 마을에 대한 아이들의 대답은 조금씩 깊어졌다. 내가 살고 있는 물리적 공간이라는 답에서 친구와 행복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지고, 다시 '이웃'과 '함께 사는'이라는 가치까지 오게 됐다. 마을이 개별적인 거주 지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혹은 살아가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는 모습에서, 이것이 마을이 우리에게 주는 본능적인 개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필자와 청소년들
 필자와 청소년들
ⓒ 이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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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은 마을에서 무엇을 원할까도 궁금했다. 처음에는 청소년 운동시설이나 청소년 놀이공간이나 쉼터를 이야기하던 친구들이 점차 체육시설이나 공중화장실 같이 보편적인 의견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청소년들은 자기들이 필요한 것만 요구할 것이라는 애초의 생각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주민에게 지역 의제 발굴을 맡기면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주장만 앞세울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청소년들과의 대화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처음에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요구하더라도 대화가 진행될수록 공공선을 찾아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 자치구에서는 애초 청소년이 마을계획까지 수립하는 실험을 준비했지만 코로나19로 취소되었다. 만일 청소년들이 마을 계획을 수립했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왔을까?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계획보다 좋았을까, 나빴을까?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아주 멋지고 흥미로운 마을계획이 나왔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게 했다.

마을에서 성장하는 청소년들

물론 청소년들과 마을에서 함께 활동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얼굴을 마주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대화도 잘 통하고 역할 분담도 착착 진행됐지만, 문제는 온라인 단톡방에서 회의를 할 때마다 나타났다. 내가 의견을 내면 메아리조차 없는 독백으로 끝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왜 악플보다 무플이 치명적이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무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들끼리는 어렸을 적부터 절친들이었지만, 이들이 함께 어떤 공동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역할을 나누고, 자기 역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일을 진행하는 경험을 해보지 못한 것이다. 누군가는 자기 마음처럼 행동해 주지 않는 친구를 탓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어디서부터 뭘 해야 할지 몰라 속상해했다. 용기를 내어 낸 의견이 채택되지 못해 서운해 한 친구도 있었다. 나의 의견에 대한 무응답 역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나온 침묵이었다.

이런 문제는 청소년들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훨씬 나이가 많고 더 많은 교육을 받은 어른들과의 공동 활동에도 이와 유사한 일들은 자주 일어난다. 그러다 사소한 오해로 대판 싸우고 원수같이 지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다행스럽게도 청소년들은 그러지 않았다. 각자의 서운했던 점이나 수행하지 못한 역할에 대한 이유를 공유하면서 하나둘씩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 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 해결책이라는 것도 어른의 시각에서 보면 서툰 것일 수는 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나름의 시행착오를 겪고 있었다. 아마도 그 아이들은 또래보다 더 일찍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그 경험과 시간만큼 더 성숙한 시민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일 것이다.
 
청소년 마을 계획 마무리 회차 회고 시간
 청소년 마을 계획 마무리 회차 회고 시간
ⓒ 이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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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마을계획 마무리 회차 회고 시간
 청소년 마을계획 마무리 회차 회고 시간
ⓒ 이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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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청소년들이 많아진다면 어떨까? 청소년이 참여하는 모든 마을 활동과 사업이 성공적일 수는 없다. 그러나 마을이 '이웃과 함께 사는 곳'이라는 것을 아는 아이들이 조금 더 일찍, 조금 더 많이 시행착오를 겪는다면, 이들이 이끄는 마을은 더욱 좋아지지 않을까?

나는 청소년 이끔이로 마을센터에서 일을 하지만, 어쩌면 마을을 이끄는 것은 바로 이 청소년들일지도 모른다.

태그:#청소년,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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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구마을자치센터 마을지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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