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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3명이 모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주민 참여의 문턱을 낮춘 마을공동체 지원정책이 내년이면 10년을 맞는다. 뜻이 맞는 주민들이 지역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직접 해결해가며, 조금 더 행복해진 이야기들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변화. 그 10년의 이야기를 몇 차례에 나눠 싣는다.[기자말]

  
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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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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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그리고 마을

나는 평범했다.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어느 학원에 보낼까? 세탁기 바꿀 때가 되었는데 어디가 좋은가'를 고민하며 살았다. 시민단체 몇 곳에 후원하면서 '나는 좀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스스로 위안하기도 했다.

그러던 내 삶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2014년 믿을 수 없었던 세월호 소식이었다. 우리 첫 아이도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 수학여행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마치 내 아이가 깊은 물속에 갇힌 것처럼 매일 눈물이 흘렀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우리 동네에 비슷한 감정을 느낀 사람들이 모임을 가졌다. 세월호에 대한 슬픔과 분노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고, 사회가 변화하려면 나부터 변해야 했다.

마을 아파트 상가 앞에서 뜻이 통하는 사람들과 '생명을 달리는 세상 수다'라는 모임을 만들고, 세월호 리본 달기, 작은 공연, 추모의 날을 진행했다. 그러다 '더, 초록'이라는 마을 공간도 만들게 됐다. 주민이라면 누구나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사람들과 세상 일에 대해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자 했다.

세월호를 계기로 내 관심은 나에게서 주변 사람으로, 공간으로, 마을로 넓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주민 3명 이상이 모이면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마을공동체 사업에 참여했다. 처음으로 마을 사람들과 '꿈담 마을학교'를 열어 여성의 몸과 건강에 대해 이야기하고 면 월경대를 알려 나가기도 했다. 또 '부뚜막'이라는 반찬 모임을 통해 더 많은 주민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가졌다. 이 두 모임은 7년이 지난 지금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젠더거버넌스, 무슨 햄버거 이름이야?

그러던 중에 여성의 눈으로 정책을 모니터링하고 소외되는 사람들이 없도록 힘쓰는 '젠더거버넌스' 활동도 하게 됐다. 처음 젠더거버넌스란 단어를 들었을 때의 어색함과 낯섦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젠더거버넌스? 무슨 햄버거 이름이야?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화장실 개수는 남자와 여자가 같은 게 평등한 것 아니야?"
"항상 지하철 손잡이를 못 잡았지만 내가 키가 작아서 그런 거 아닌가? 뭐가 문제야?"


모임을 시작하기 전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차츰 이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나 내 잘못이 아니라 남성 위주의 구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여성은 남성보다 화장실 사용 시간이 2.3배 길고 월경 중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지하철 손잡이는 170cm 이상의 남성을 기준으로 만들어 놨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성이나 키 작은 남성은 잡기 어렵다. 함께 공부하고 이야기해보기 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다.

성인지 공부도 무척 어려웠다. 행정을 모니터링한다고 하지만 내가 감히 공무원을 상대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앞이 막막했다. 마치 담당 주무관이 '아줌마가 뭘 알아?' 하고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주무관이 먼저 전화해 "올해는 모니터링 안 해요?" 하고 묻기도 한다. 이래 봬도 8년 차 활동이니 내공이 쌓였다.

원수에게도 생리대는 빌려줄 수 있다는데
   
여성 청소년 생리대 보편 지급 캠페인
 여성 청소년 생리대 보편 지급 캠페인
ⓒ 조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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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공중화장실에 긴급 생리대를 배치하는 것이었다. 2017년과 2018년에 공중화장실을 모니터링하면서 공중화장실 5곳에 긴급 생리대를 배치하는 '공중화장실 조례' 개정과 '양성평등 조례' 개정을 이끌어 냈다. 여성이라면 갑작스러운 월경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이럴 때 공중화장실에 비치된 긴급 생리대는 큰 도움이 된다.

또한 2016년 '깔창 생리대 사건'이 말해 주듯이 월경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 잡고, 빈곤을 증명한 사람만이 아니라 여성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월경 용품을 지급받고 월경하는 몸에 대해 교육받는 것이 당연한 권리로 여겨질 수 있도록 '여성 청소년 생리용품 보편 지급 조례' 운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원수에게도 생리대는 빌려줄 수 있다'는 한 청소년의 글은 월경에 대한 보편적 지원의 필요성을 압축적으로 말해 준다.

그 결과 우리는 서울시 최초로 관련 조례를 제정할 수 있었다. 이런 움직임은 서울시의회가 '어린이·청소년 인권 조례'에 명시되어 있었던 "빈곤한 여성 청소년에게"라는 문구에서 '빈곤'을 빼고 '월경 용품 보편 지급'을 명시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행정에서 관련 예산을 "0원"으로 올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을은 비상회의를 열고 "어떻게 예산이 빵원이냐"며 분노했다. 마을 사람들은 릴레이 기고, 주민 펀딩을 통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청소녀와 주민의 목소리를 지역 신문에 전면 광고로 실었다. 온 마을이 마을넷 톡방이나 개인과 단체 SNS를 통해 예산 확보를 압박했다.

그 결과 예결위 마지막 날 예산 1억 1천만 원을 확보해 작년부터 고등학교에, 올해부터는 중학교 화장실에 긴급 생리대 함이 설치되었다. 이제 우리는 여성 청소년이 언제, 어디서나 생리대가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개별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여성 청소년 생리대 보편 지급을 다룬 기사
 여성 청소년 생리대 보편 지급을 다룬 기사
ⓒ 구로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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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아름답게 늙는 방법

코로나19가 일상의 멈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요구했던 2020년에는 많은 일상이 달라졌다. 사람들과의 만남도 줄었고,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됐다. 마을 활동을 하는 나도 번번이 취소되는 회의와 연기되는 일정에 무기력감을 느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 없었다.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뭐라도 하고 싶어 웹자보를 만들어 SNS로 홍보했다.

다회용 마스크 만들기를 진행하면서 일회용 마스크의 환경 문제도 이야기할 수 있었다. 마음껏 돌아다니지 못하는 양육자와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이 사무실로 한두 명씩 찾아와서 바느질을 도왔다. 감염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는 두려움 속에서도, 마을은 자연스럽게 돌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기후위기 비생행동 캠페인
 기후위기 비생행동 캠페인
ⓒ 조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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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지난 10년 동안 마을에서 참 많은 활동을 펼쳐 왔다. 소녀상 건립, 여성 청소년 월경 용품 조례, N번방 피케팅, 3.8 여성의 날 행사 등 여성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지역 사회에 만연한 일회용품 문제와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의 환경 문제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지금은 사람들과 기후위기 캠페인 '용기내#'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평범한 나를 바꿔놓은 것은 마을이었다. 마을은 일상에 안주하던 나를 세상으로 이끌어 주었다. 불편하거나 부당한 것을 알아도, 나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을이 필요하다. 환경과 여성 문제도 공동체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팬데믹 시대의 사회적 돌봄과 안전 문제도 공동체를 통해서만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마을살이'를 통해 아름답게 늙는 법을 고민하고 있다. 나만 행복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마을이 아름다워야 나도 아름다울 수 있으니까.
 
용기내# 캠페인 중인 필자
 용기내# 캠페인 중인 필자
ⓒ 조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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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사람들과 작당모의를 즐기며 여성과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낭만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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