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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1일 KBS 신관 앞에서 '방송 3사, 방송작가 근로감독 협조' 를 촉구하며 열린 기자회견
 지난 6월 21일 KBS 신관 앞에서 "방송 3사, 방송작가 근로감독 협조" 를 촉구하며 열린 기자회견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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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7일부터 KBS, MBC, SBS 방송 3사 시사·교양 및 보도 분야에서 일하는 방송작가들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 지상파 비드라마 현장에 근로감독이 진행되는 것, 특히 프리랜서 방송작가들만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이 이뤄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근로감독으로 방송작가들의 근로자성 여부와 전반적인 노동 실태를 조사한 뒤 노동관계 법령 위반이 적발되면 시정명령 등 후속 조치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 근로감독은 가히 역사적이다. 방송작가는 그동안 피디와 함께 방송 제작의 전 과정에서 역할을 담당하고, 특히 방송의 구성을 책임지는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늬만 프리랜서로 취급받아왔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프리랜서라는 허울로 근로기준법상의 아주 기본적인 노동권 보호도 받지 못했다. 특히 방송 3사 시사교양 보도 분야에서 일하는 작가들의 경우 타 분야에 비해 출퇴근, 업무 지시 등의 면에서 보다 월등히 방송사에 종속적으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도 방송 현장에서 자체적인 방송작가 노동 환경 개선 노력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근로감독이 착수되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먼저 2017년에 방송작가유니온이 출범했다. 장시간 노동, 저임금에 시달려온 작가들이 더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모였다. 상시 지속적인 업무지시를 받으면서 일을 해도 프리랜서라는 허울로 해고로부터 자유롭고, 제대로 된 임금 체계로부터 자유롭게 일해왔다. 공기업에서, 공영방송에서 진정 어처구니없는 노동 현실이었다. 그렇게 노동조합을 만들어 "방송작가도 노동자다"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후 수많은 외침으로, 국정감사 질의로 제발 정부 기관에서 나와서 말도 안 되는 현장을 봐 달라 요청했다. 그러던 중 올해 3월 MBC 보도국에서 일한 방송작가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은 첫 번째 행정판정이 나왔다. 방송작가의 노동 실질을 따져보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이후 방송작가가 자유로운 프리랜서가 아닌 종속 노동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방송 3사 근로감독이 착수되었다.

하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다. 방송 3사는 근로감독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비정규직 실태를 숨기는 데 급급해하는 등 비협조적인 행태를 보였다. 단순히 협조하지 않는 것이 방해와 같을 수 없다. 하지만 작가들의 생사여탈권을 정규직 피디들이 쥐고 있다. 그동안 작가들은 피디 마음에 들지 않아서 등과 같은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해고되거나 불이익을 입는 일들이 잦았다. 그래서 늘 조심한다. 이번 근로감독도 마찬가지다. 내가 근로감독 조사에 나선 것이 피디한테 알려져서 해고당하는 건 아닌지, 불이익당하지 않을지 작가들은 우려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비협조적인 태도는 단순 비협조가 아니라 근로감독을 방해하는 행태다.

이에 더하여 방송사는 초반에 조사 대상 작가들의 명단과 연락처 제출 요구에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응하지 않았다. 근로감독에서 조사 대상자 명단 제출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작가 개인에게 근로감독에 응하고 싶은 작가들은 응하라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문자를 보냈다. 방송작가유니온에서 지속해서 문제 제기한 이후, 한참 시일을 끈 이후에야 KBS는 작가들에게 개인정보 제공 동의 절차를 밟았다. 처음 의도가 그렇지 않았을지라도 사실상 전수조사의 취지를 몰각시키는 해태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또 다른 방송사는 면담자가 정해지면 방송사가 중간에서 작가의 면담 장소를 정해 통보하는 방식 등으로 근로감독을 지연시키고 면담 당사자를 위축시켰다.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은 방송사에 떠도는 근로감독 괴담이다. "근로감독으로 방송작가들이 근로자성을 인정받으면 작가들의 일자리 수만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근로계약을 하면 최대 2년까지만 일할 수 있고 다시는 방송사에 돌아올 수 없다"라는 등 방송국 내 악의적인 소문들은 작가들이 적극적으로 근로감독 면담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게 하고 있다. 특히 MBC는 지금과 같은 고용구조가 방송사와 방송작가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망언까지 일삼았다. 이런 곳이 어떻게 언론으로서의 자격이 있단 말인가. 이런 조직에서 어떻게 공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방송 비정규직 문제가 이토록 해결되기 어려운 이유는 방송사가 여론을 만드는 권력을 가진 언론이기 때문이다. 이 거대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방송작가, 전태일재단, 노회찬재단,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방송작가친구들'로 모였다. 지난 6월, 방송작가유니온과 미디어비정규직공동사업단 '방송작가친구들'은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이 같은 행태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그 이후 제대로 된 근로감독 시행과 많은 언론 노동자들이 방송 비정규직 문제에 힘을 실어주기를 촉구하는 다방면의 연대를 이어오고 있다.

근로감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올해 안에는 어떻게든 결론이 날 것이고, 그 안에는 분명히 근로자로 인정받는 작가들이 다수 나올 것이다. 이 결과로 KBS, MBC, SBS에서는 방송작가가 최초로 근로계약을 맺게 되는 선례가 생길 것이다. 이제 작가들은 정해진 원고료뿐만 아니라 정해진 근로시간 이후에 일하게 되면 추가 수당을 받고, 휴일에 일하면 두 배의 임금을 받게 될 것이다. 평일 5일 동안 일을 하면 일주일 중 하루는 유급으로 쉴 수 있고, 개편이든 무엇이든 방송사 사정으로 일을 그만두게 될 경우 실업급여도 받을 수 있다. 1년 이상 일을 하면 받을 수 있는 퇴직금도 이제 더이상 남 이야기가 아니다.

그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무늬만 프리랜서를 양산해온 방송사의 행태를 바로잡고 방송 노동 현장 속 '비정상의 정상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착취로 쥐어짜서 만드는 방송에 더이상 시청자들은 감동하지 않는다. 공정노동 없이 공정언론 없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방송이 살길은 현장에 있는 열악한 제작 환경 먼저 돌보는 것이다. 외부 노동 사건 실컷 보도하고 비판하면서 내부 노동 문제에는 입 막고 귀 닫는 방송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그동안 부당하다고 느껴왔던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비정규직,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이유로 부당한 현실에 입 막을 수밖에 없었던 작가들이 스스로 목소리 내고 변화할 큰 계기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김한별 방송작가유니온 지부장이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1, 12월호 ‘여기, 현장’ 꼭지에도 실렸다.


태그:#방송작가, #근로감독,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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