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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나른한 기분으로 책을 읽고 있던 금요일 오후였다. 내게 몸을 기댄 채 졸고 있던 반려견 은이가 갑자기 현관 앞으로 달려가더니 문을 향해 짖어댔다. 동시에 내 핸드폰의 알림이 울렸다. '상품이 현관 앞에 배송완료 되었습니다.'

드디어 도착한 거였다. 1년간 공을 들인 결과물이 현관 앞에 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애써 모른 척하고 책을 좀 더 읽었다. 설레면서도 두려웠고 뿌듯하면서도 부끄러웠다. 한참을 망설이다 택배 상자를 뜯었고 마침내 나의 두 번째 책 <이 선 넘지 말아 줄래요?>를 만났다. 이 책은 상담심리사로서 나의 경험을 담은 첫 번째 책이기도 하다. 
 
송주연 지음 <이 선 넘지 말아 줄래요?> (한밤의책, 2021)
 송주연 지음 <이 선 넘지 말아 줄래요?> (한밤의책, 2021)
ⓒ 송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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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두 번째 출간은 조금 다르기를 기대했었다. 첫 책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를 출간했을 때 느꼈던 두려움이 찾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번엔 더했다. 지인들에게 출간 소식을 알리는 것마저 고민이 될 만큼 마음이 복잡했다. 내가 쓴 책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동안 나는 이 감정에 머물렀다. 그러자 이런 질문이 내 안에서 떠올랐다.

'나는 과연 책에 쓴 대로 살고 있는 걸까?'

나는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최근 상담을 받기 시작했는데 (상담자들은 자기 자신의 문제를 바로 보지 못하면 효과적인 상담을 할 수 없기에 더 자주 상담을 받는다) 여전히 타인의 눈치를 보고, 사회에서 부과한 역할에서 벗어나려 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도 나의 두려움은 책에 쓴 것을 나조차 잘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끄러움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컸다.
    
거리두기에도 숨 쉬지 못하는 마음들

이 책은 '심리적 거리두기'에 대한 이야기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었을 때 멀어진 신체적 거리와는 정반대로 내 마음은 답답하기만 했다.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자, 생각이 많아졌다. 한 번 떠오른 예전의 억울했던 기억은 꼬리를 물고 번져가면서 나를 괴롭혔다. 또한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으로 온 가족이 집안에서만 지내게 되면서 나만의 공간과 시간이 사라지자 숨이 막혀왔다.

게다가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나는 가부장제에서 강요받은 엄마와 아내로서의 역할에 압도당하곤 했다. 나 역시 재택근무였기에 집에서 글을 쓰고, 온라인으로 상담도 해야 했지만, 가족과 함께 있는 곳에서 나는 전문적인 일에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수시로 가족들을 살피며 돌봄 제공자로서 역할을 해내고자 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두통과 소화불량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 시기 내가 만나온 내담자들도 상당수가 나와 비슷했다. 홀로 있으면서 과거의 상처나 '~해야 한다'는 생각에 압도되는 내담자들이 늘어났다. 어떤 이들은 집에 오래 머물게 되면서 함께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숨 막힌다는 호소를 해 왔다. 한편,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편견과 차별은 더 위세를 부렸다.

엄마들은 집에 머무는 아이들의 돌봄을 전담하느라 발이 묶였고,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많은 아빠들이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에 시달렸다. 코로나19로 인한 노인들의 죽음은 젊은이들의 죽음보다 가볍게 취급됐고, 사회적 상황 때문에 취업하지 못한 젊은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탓했다.

마음을 지키는 법을 배우지 못한 우리

'거리두기'를 하면서도 공기가 통하기는커녕 더 답답해지기만 하는 마음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의문을 품고 나와 내담자들의 삶을 관찰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는 마음을 괴롭히는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것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초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과 대학원까지 다니면서도 나는 단 한 번도 내면에서 나를 괴롭히는 생각과 감정들로부터 나를 지키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마음이 이상하다고 털어놓았을 때 어른들은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일축하곤 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남을 배려해라',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말라'고는 배웠지만, 누군가가 나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사회가 나를 부당하게 대할 때에도 이에 저항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오히려 부당함을 감수하고 적응해냈을 때 칭찬을 받아왔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대학원에서 공부했던 심리학 이론서들을 '나를 지키는 법'이라는 관점으로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미 알던 것들이 새롭게 보였다. 심리학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나를 지키기 위해선 나를 괴롭히는 내면의 생각과 감정들, 함부로 나를 침범하는 관계들,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적 통념들과 거리를 두고 선을 그어야 한다고 말이다. 다만,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한국적 시선 탓에 이 이론들을 타인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거나 집단에 순응하는 쪽으로만 해석해 왔던 것이다.

나는 '나를 지키는 선긋기'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나의 일상과 내담자들의 사연을 재조망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이 책은 탄생했다. 1장은 나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과 거리두는 법을 다뤘다. 나와 거리를 둔다는 말이 어색하기도 하겠지만, 우리를 괴롭히는 많은 것들은 사실 우리 안에 있다. 2장엔 선을 넘어 침해해 오는 타인과 선 긋는 법을 담았다. 나와 타인의 감정을 구분하고 타인이 아닌 나의 행복에 책임지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3장에서는 사회의 편견들로부터 나를 지키는 법에 대해 다루었다. 자신이 속한 사회의 지배적인 사고방식들은 개인의 내면에 깊숙한 영향을 미치지만,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에 이를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편견에 기대어 타인과 관계 맺거나 나를 바라보는 것은 결국 나를 잃게 만든다. 예민한 감수성으로 편견을 알아차리고 보다 온전하게 살아가는 방법들을 이야기해 보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염병으로부터 우리의 건강을 지키듯, 마음의 건강에도 적절한 '심리적 거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염병으로부터 우리의 건강을 지키듯, 마음의 건강에도 적절한 "심리적 거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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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그어 연결하기

그런데 책을 쓰면서 알게 됐다. 선을 긋고 거리를 두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연결되는 방법임을 말이다. 그림을 그리려면 일단 선을 그어야 한다. 선을 긋지 않으면 아무런 형체도 만들 수 없고 어떤 연결도 만들어 낼 수 없다. 이처럼 선을 잘 그어 각자의 형체가 명확해졌을 때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각자가 고유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경계를 지키면서 손을 잡을 때에만 평등하게 연결될 수 있다.

자신의 내면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고 통합적으로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스스로를 탓하거나 다그치지 않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은 타인의 경계 역시 존중하며, 나의 감정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을 수 있다. 나아가 사회의 편견들과 선을 그을 때, 각자가 지닌 다양성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온전해진 개인들이 서로의 선을 지키고 존중하며 연결될 때 진정한 연대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앞서 고백한 것처럼 나는 '선긋기'에 여전히 서툴다. 그래서 이 주제에 더욱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책을 쓰면서 나는 나의 내면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되었고, 나 자신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됐다. 다른 이들에게 나의 경계를 알리는 것도 전보다는 편안해졌다. 무엇보다 사회적 맥락 속에서 나를 돌아본 덕분에 쓸데없는 죄책감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나는 오늘도 글을 쓰면서 나의 선을 긋는다. 나는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며 나의 경계는 여기까지라고 글을 통해 말한다. 그리고 이 선을 존중해주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이어지는 경험을 한다. 이 연결감은 또다시 내가 살아가는 힘이 되어 준다. 다시금 소통과 연결의 기쁨을 느껴보고 싶다. 그래서 이젠 출간에 따르는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떨쳐내 보고자 한다.

자신만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서로의 선을 지키며 연결되고픈 사람들을 나의 책 <이 선 넘지 말아줄래요?> 속으로 초대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이 선 넘지 말아 줄래요? - 나를 지키는 거리두기의 심리학

송주연 (지은이), 한밤의책(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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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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