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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연재중인 '아이들은 나의 스승'
 <오마이뉴스>에 연재중인 "아이들은 나의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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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이들은 나의 스승'이라는 제목으로 연재기사를 올리고 있다. 지난 2014년 봄부터 연재를 시작했으니 올해로 7년째다. 총 기사 수가 265편이니, 대략 헤아려보면 한 해에 38편쯤 쓴 것이고, 열흘에 한 편씩 꼬박꼬박 송고한 셈이다. 듣자니까, 하나의 주제로 이렇게 오랫동안 연재한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자화자찬 같아 민망하지만, 제목 하나는 잘 지은 것 같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일과 중에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새삼 깨닫게 되는 게 많다. 교직에 발을 내디딘 지 만 23년째, 그들의 부모 또래 교사지만, 반면교사일지언정 누구에게든 배울 점은 있고 그렇게 하루하루 성장해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경력이 쌓여갈수록, 다시 말해 아이들과 부대낄수록 교사의 역할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이 시나브로 허물어졌다. 교육은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 소통의 활동이라는 점을 절감한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선현들의 경구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더욱이 그들 중엔 특정 분야에서 교사보다 탁월한 지식과 통찰력을 지닌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른바 '덕후'라고 부르는 아이들인데,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들로부터 배우겠다는 자세로 방과 후에 장시간 토론하거나 직접 제자가 스승을 찾아가듯 도움을 청한 적도 있다. 역사 교사로서, 역사라면 몰라도 정치와 경제, 과학, 예술 등은 '덕후' 아이들이 한 수 위다. 

아니, 역사 분야조차 호언장담하지 못한다. 5~6년 전 특히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해박했던 한 아이가 떠오른다. 공부하다 궁금증이 생기면 학교 도서관의 백과사전은 말할 것도 없고, 국회도서관의 소장 자료까지 샅샅이 뒤져 해결하던 친구였다. 그의 말이라면 교과서의 서술보다 더 믿음이 간다고 할 정도였다.

일례로, 고산 윤선도의 고택이라는 설명이 적힌 삽화에 '해남 녹우단'이라는 명칭은 오타라며 장황하게 설명한 적이 있다. 다른 아이들은 별 걸 다 트집 잡는다며 심드렁한 표정인데도, 교과서의 공신력 문제라며 굴하지 않았다. '녹우단'이 아니라 '녹우당'이라 해야 옳다는 것이다. 

녹우단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러자면 윤선도의 사당에 대한 설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삽화와 설명은 집을 가리키면서, 명칭은 사당을 의미하는 제단이라고 적었으니 잘못됐다는 것이다. 출중한 한자 실력에다 논리적인 사고까지, 교사로서도 그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시험 도중 만약 그가 문제가 이상하다고 할라치면 등에서 식은땀이 날 정도였으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그는 고2 때 수행평가나 숙제가 아니었는데도 자발적으로 논문을 작성해 보여주기도 했다. 당시 태극기와 함께 새마을기를 게양하는 공공기관들이 지역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는 주제였다. 주말을 이용해 직접 발품을 팔기도 하고, 일일이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등 그의 열정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근현대사를 더 자세히 공부하고 싶다며 한 대학 사회학과에 진학했다. 

그가 교사, 내가 학생

그런가 하면, 이태 전엔 학교에 개설돼 있지도 않은 러시아 문학과 예술, 정치에 꽂힌 아이도 있었다. 자습 시간에 독학으로 키릴 문자를 공부하며, 러시아와 관련된 책들을 탐독했다. 두툼한 러시아 혁명사를 여러 번 반복해 읽었다는 그의 꿈은 한국인 러시아 전문가였다. 사서교사의 전언에 따르면, 학교 도서관에 비치된 러시아 관련 책은 빠짐없이 다 읽었다고 한다. 

그는 점심시간은 물론, 10분짜리 쉬는 시간에도 도서관을 찾았다. 이따금 교무실에 와서 러시아 문학과 예술에 관한 질문을 던지곤 했는데, 어떤 교사에게 가보라고 해야 할지 막막했다. 부담스러워선지 국어 교사도, 음악과 미술 교사도 그가 찾아오는 걸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다. 

한번은 그와 방과 후에 러시아의 역사에 대해서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아는 거라곤 기껏해야 제1차 세계대전 중의 러시아 혁명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개론 수준의 역사가 전부인데, 그는 레닌과 스탈린, 트로츠키와 흐루쇼프에서 고르바초프와 엘친에 이르기까지 옛 소련 정치인들의 사상과 행적 등을 막힘없이 풀어냈다. 말 그대로, 그가 교사였고 내가 학생이었다. 

담임교사도 처음엔 대학에 진학한 뒤에 공부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했지만, 그의 '수준'을 안 뒤에는 일절 언급을 삼갔다. 단지 수능 주요 과목인 그의 국영수 성적이 너무 낮다는 걸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학종이든 수능이든 현행 대입 제도 내에서 국영수 성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타지의 한 지방대에 재학 중이다.

내로라는 '정치 덕후'도 있다. TV에 출연하는 웬만한 정치 평론가 뺨친다. 방송사별로 정치 평론가들의 발언을 그러모아 그들의 정치적 성향을 분석할 정도다. 친구들의 전언에 따르면, 대선을 앞둔 요즘 그와의 대화 주제는 정당별 대선 후보의 당선 가능성 이야기로 수렴된다고 한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죄다 꿰고 있다며 놀라워한다. 

오지랖 넓게도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친구들에게 부러 다가가 그러면 안 된다고 훈계까지 한다고 한다. 그래선지 그에 대한 평판을 들어보면 호불호가 확연히 갈린다. 나중에 분명 근사한 정치인이 될 거라며 응원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정치 외엔 아무런 관심이 없어 편협한 외골수가 될 게 뻔하다며 질타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다른 친구들이 유튜브로 예능 꼭지를 보며 키득거릴 때, 그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정치 시사 꼭지나 다큐멘터리를 본다. 이따금 도서관에서 그를 만날 때마다 그의 손엔 시사 주간지가 들려 있다. 수능을 코앞에 둔 고3인데도 공부하다 집중이 안 될 때 신문이나 잡지의 정치 기사를 읽으면서 쉰다고 할 정도다. 물론, 그의 꿈은 좋은 정치인이 되는 것이다. 

'교복 입은 시민'

이처럼 '덕후'들은 교사인 내게 더없이 훌륭한 스승이지만, 대입을 앞둔 고등학교에서는 그다지 환영받는 유형의 학생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학종이 그런 아이들을 선발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지만 제구실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아무리 탁월한 재능이라도 내신성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인정받을 수 없다. 

학종이든 수능이든 대입을 준비하려면 '덕후 짓'을 멈춰야 한다. 학교 교육과정에 따른 내신을 철저히 챙기고, 국영수 등 주요 과목 위주로 수능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1점 차이로 등급이 오르내리는 무한경쟁 중에 한가하게 정치와 사회 문제를 고민하고, 러시아 문학과 예술을 감상하는 건 사치다. 안타깝게도 그들에게 학교는 '거푸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야기가 잠깐 삼천포로 빠졌다. 나의 스승이 돼준 몇몇 '덕후' 아이들을 소개한 이유가 있다. 연재한 기사에 달린 한 댓글을 보고서다. 워낙 악플을 많이 접한 까닭에 웬만해서는 댓글을 읽지 않지만, 우연히 스치듯 봐버렸다. 혹 기사 내용 중 광주에 산다는 게 드러날라치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로 도배되기 일쑤다. 

"본인 주장은 그냥 본인 이름을 걸고 쓰지, 왜 비겁하게 아이들 뒤에 숨으십니까?"

아이들의 이름을 팔아 내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뜻일 테다. 아이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내가 새삼 깨달은 내용을 기사화한 것이니 아예 틀린 지적은 아니다. 아이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때로는 그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편견이 깨지고 생각이 정돈되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비겁하다'고 욕먹을 일인가. 

짐작하건대, 댓글을 단 분의 요지는 이것이다. 지금 고등학생 아이들이 기사에서 언급할 정도로 정치적 사회적 의식 수준이 높지 않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런 아이들이 태반이라는 건 부인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것은 교사를 비롯한 기성세대의 무책임을 뼈저리게 반성할 일이지, 고등학생이 그럴 리 없다며 눈 흘기는 건 무슨 행태인가. 

3.1운동 이후 대한민국 100여 년을 되짚어보면, 우리 역사를 이끈 주역은 피 끓는 10대 고등학생들이었다. 수십 년 동안 서슬 퍼런 군사독재정권이 분단의 현실을 악용해 사상을 옥죈 과거에도 무릎 꿇지 않았다.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며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가치관이 범람하는 지금도 꿋꿋이 버텨내는 아이들이 있다. 그들이 나의 귀감으로, 내 연재 기사의 취재원이다.

누구는 '교복 입은 시민'이라는 표현을 썼다. 비록 대입을 위한 성적은 변변치 않아도 이웃과 공동체에 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깨어있는 아이들이 학교마다 소수일지언정 분명 있다. 내가 만난 '덕후'가 곧 그들이다. 그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 주역이 되어야 한다. '덕후'들이 활개를 치는 곳이라야 좋은 학교이고 좋은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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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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