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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온가족을 거실 앞에 불러모았던 브라운관 티비(TV)의 시절은 이제 우리 기억 속의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그 대신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으로 각자의 모니터에서 구독 중인 OTT 콘텐츠를 소비하는 풍경이 자리잡는 중이다.
 한때 온가족을 거실 앞에 불러모았던 브라운관 티비(TV)의 시절은 이제 우리 기억 속의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그 대신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으로 각자의 모니터에서 구독 중인 OTT 콘텐츠를 소비하는 풍경이 자리잡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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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온가족을 거실로 불러모았던 브라운관 티비(TV) 시절은 이제 우리 기억 속의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그 대신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으로 각자의 모니터에서 구독 중인 OTT 콘텐츠를 소비하는 모습이 일상에 자리잡는 중이다.

티비 리모컨 쟁탈전이 사라진 만큼 더욱 평화로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민감한 정치-사회적 이슈를 두고는 한쪽의 주장 위주로 편집된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돼 수백 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거나, 심지어 백신 및 선거에 관한 가짜뉴스가 그럴 듯한 주장으로 포장돼 퍼지기도 한다. 

또한 예능과 드라마 출연으로 인기를 얻던 연예인이 학교폭력 또는 강력범죄 가해자였다는 혐의가 SNS를 통해 제기돼 중도 하차하는 일도 최근엔 드물지 않게 벌어진다. 드라마나 영화 속 설정 일부가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거나 혐오적이라는 지적에 거센 비판이 나오는 경우도 전보다 잦아지는 듯하다. 

이럴 때 드는 생각은, 실은 우리가 학교를 비롯한 어디에서도 '티비를 보는 법'이나 '유튜브를 잘 보는 법' 같은 걸 배운 적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균형 잡힌 관점과 자극에 휩쓸리지 않는 태도로 어떤 정보나 작품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접할 기회가 흔하지 않다는 얘기다. 

2021년 10월 출간된 신간 <잘 봐 놓고 딴소리>는 시청자들을 위해 최근 방송가 사례들과 함께 적절한 시각과 다양한 해석을 전해준다. 유튜브, 넷플릭스, 왓챠 등 매체 종류의 확장과 새로운 작품들의 홍수 속에서 헤매던 사람들에게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듯하다.

드라마는 드라마로만 보자고? 과연 그래도 될까요
 
이승한 칼럼니스트의 책 <잘 봐 놓고 딴소리> 표지 사진.
 이승한 칼럼니스트의 책 <잘 봐 놓고 딴소리> 표지 사진.
ⓒ 북트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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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첫 장에서 미국의 범죄 드라마 <클로저>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극 중 주인공인 형사가 악질 범죄자를 잡고자 증거를 조작하려는 장면을 예시로 드는데, 법을 어기고 무자비한 폭력을 써서라도 범인을 잡으려는 설정이 너무 쉽게 정당화되어도 정말 괜찮은지 묻는다.

지난 몇 년간 주인공의 폭력적인 행동까지도 '그래도 될 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조선족 사투리를 쓰는 범죄자'를 등장시키는 영화가 한국에서도 많이 개봉한 바 있다. 시청자 상당수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인공에 이입하고 대립하는 대상에 분노하게 된다는 점을 돌아볼 때, 이런 설정은 때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또 다른 폭력을 용인하고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보지 못한 사람, 장소에 대한 이미지는 "각종 대중매체를 통해서" 얻게 된다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작품 속 이미지가 시청자의 현실 인식에 영향을 주는 이상 그저 넘길 일이 아닌 경우도 있으며, 시청자는 때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만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이들을 향해 목소리를 낼 수도 있어야 한다고.
 
TV 드라마가 현실을 묘사하는 방식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유지하기, 최대한 다양한 출처로 정보를 접하고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편견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기, 제작자들에게 자신의 콘텐츠에 대한 책임감을 요구하기… 아마도 이 정도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일 겁니다. 일단, "드라마는 좀 드라마로 봅시다." 같은 말을 하지 않는 데서부터 출발해 보면 어쩔까요? - 본문 22쪽 중에서
 
'과거 학교폭력 가해자였다'는 폭로의 여파로 활동을 중단하는 방송인들이 늘어나는 요즘, '더 강한 주인공이 학폭 가해자를 힘으로 눌러 복수하는' 내용의 웹툰과 드라마에도 저자는 우려가 담긴 질문을 던진다.

사이다 서사가 인기를 얻을수록 "'쉽고 빠르며 속 시원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학교 폭력과 소년범죄 발생률을 낮추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등의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대책을 이야기할 공간은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고 말이다. 최근 크고 작은 규모의 여러 문화 콘텐츠가 현실에 미치는 폭발적인 영향력을 감안하면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작품과 장르에 대한 애정에 뿌리를 둔 비평

여기까지 정리한 바를 보면, <잘 봐 놓고 딴소리>의 저자가 너무 쓴소리만 잔뜩 적은 것처럼 느낄 수도 있겠다. 책에 실린 글의 일부만 인용할 수 있기에 아쉽지만, 책에는 비판보다 최근 공개된 작품들에 대한 따스한 감상이 더 많은 분량으로 담겨있다. 

어떤 작품과 캐릭터가 왜 마음을 끌어당기는지 꼼꼼하게 해석하여 기록해둔 글을 읽다 보면, 책을 가득 채운 비평들이 다양한 장르와 작품에 대한 애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세 살이 되어 티비 화면 속 자막을 보며 말문을 트게 됐다"는 저자 이승한씨는 자신이 본 작품들의 아기자기한 요소들을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비록 아쉬운 점이 있더라도 두루 세밀하게 살펴 의미와 가능성을 돌아보려는 부분에서는 많은 작품들의 매력을 하나하나 이해해보려는 노력이 전해지는 듯하다. 김서형 주연의 여성 형사물로 주목받았으나 정작 여성에 관한 서사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들었던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를 두고 쓴 글도 그랬다. 
 
(전략)… 그러니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같은 작품이 성취한 보편성을 높이 평가하는 동시에 여성 서사라는 특수성 측면에서 남긴 아쉬움을 인정하고, 이다음 시도에선 더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라야겠죠. 새로운 시도를 꾸준히, 더 많이 하다 보면 우린 분명 더 다양한 가능성의 영토에 도달해 있을 겁니다. -  본문 91쪽 중에서

저자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아래 '꼬꼬무')>가 주목받지 못했던 개인의 이야기로 역사적인 사건을 재구성한 것을 언급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육영수 저격 사건을 다루면서 대통령 암살 시도범이나 당시 영부인 육영수의 이야기부터 풀어내는 대신 저격 당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노래하기로 예정돼 있던 합창단원 고등학생 개인의 시점으로 사건을 돌아보는 식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연예인이나 사회적 명사의 이야기를 듣는 '토크쇼'"와 휴먼 다큐멘터리의 차이점을 짚고, 더 나아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MZ세대(또는 요즘 애들)', '전형적인 86세대'처럼 상대를 쉽게 규정짓는 말을 넘어 서로와 시대를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도 드러낸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갈등과 불화도 어쩌면 그와 같은 방식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덧붙이면서.

'잘 봐 놓고 딴소리' 하는 시청자가 늘어난다면

<잘 봐 놓고 딴소리>에는 2021년 전후 최근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실려 있다. 그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시대에 콘텐츠를 대하는 자세와 제작에 대한 시선도 담겨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 이후 전 세계에 인종차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BLM'(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과 해시태그 물결에 케이팝(K-Pop) 팬들이 적극 나선 사례도 언급된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BLM 운동을 조롱하며 혐오적인 내용의 게시물을 해시태그(#WhiteOutWednesday)와 함께 SNS에 게시하자, 수많은 케이팝 팬들이 해당 해시태그와 함께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의 사진-영상을 대량 업로드해 혐오 게시물을 타임라인에서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이를 두고 저자는 "가장 소중한 것으로 옳은 싸움에 연대"한 예시라고 표현했다.

또한 문제를 일으킨 유명인의 작품을 불매하는 방식의 시민운동 '캔슬 컬쳐'를 언급하며 저자는 '논란에 미숙한 대응을 보인 연예기획사'를 지적하면서도, 집단적 불매운동이 "상대의 입을 완전히 닫게 하는 게 아니라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 돼야 할" 것이라고 다른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저자 이승한 칼럼니스트는 많은 사안에 대한 답을 명쾌하게 정리해 내놓기보다는, 직접 고민하고 답을 찾아볼 수 있도록 여러 생각의 갈래를 독자들에게 공유하는 식으로 말을 건넨다. '믿고 싶은 것만 찾아 보느라' 확증편향에 빠지기 쉬운 오늘날, 판단의 균형을 잡기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를 기르는 데 도움이 될 내용까지 담긴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의 조언처럼 콘텐츠의 재미는 고스란히 즐기되 문제의식을 갖고 시청하며 '잘 봐 놓고 딴소리'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앞으로 더 나은 콘텐츠도 따라서 늘어나 한국 문화 콘텐츠의 바다도 더욱 풍성해지지 않을까? 문제적 요소를 줄이면서도 완성도 높은 콘텐츠가 많이 나오려면, 제작자의 역량 만큼이나 시청자들의 목소리도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말이다. 

잘 봐 놓고 딴소리 - 드라마, 예능, 웹툰으로 갈고닦는 미디어리터러시

이승한 (지은이), 북트리거(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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