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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기회가 사라져버리는 것 같아." 

우주비행사 선발 시험에 떨어진 도이는 기차 안에서 중얼거린다. 한국이 역사적인 화성 탐사 프로젝트를 쏘아 올릴 때, 도이는 서울에서 단양 집으로 돌아간다. 서울과 수도권을 지키기 위해 한 마을이 수몰된 단양으로. 오랜만에 만난 엄마는 이번엔 만두 가게를 낸다며 분주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뭄으로 수면이 내려가면서 수몰된 마을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단양을 소재로 한 이 이야기는 '지역의 사생활 99' 프로젝트 중 불키드 작가의 작품이다. '지역의 사생활 99'는 비수도권도시 9곳을 소재로 9권의 이야기를 만드는 만화 프로젝트로, 10년간 99개 도시를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19일,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 한국만화가협회는 '2021 오늘의 우리만화' 수상작을 발표했는데, '지역의 사생활 99' 프로젝트가 이종범 작가의 '닥터 프로스트', 정지훈 작가의 '더 복서', 사이사 작가의 '도롱이', 강태진 작가의 '아버지의 복수는 끝이 없어라'와 함께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2020년에 시작한 지역의 사생활 99 시즌 1은 부산, 대구, 고성, 담양, 충주, 공주, 광주, 단양, 군산의 이야기를 그렸다. 시즌 1은 텀블벅으로 프로젝트를 알리고 펀딩을 받았는데 792명으로부터 30,612,100원을 후원받으며 세상에 나왔다. 올해 10월초에 펀딩을 마친 시즌 2는 양산, 울산, 대전, 정읍, 경주, 구미, 강릉, 동해, 옥천으로 무대를 확장했으며 910명으로부터 40,862,000원을 후원받으며 한층 견실한 성장을 보였다.
 
'지역의 사생활 99' 시즌 1 출간책들
▲ 지역의 사생활 99 "지역의 사생활 99" 시즌 1 출간책들
ⓒ 삐약삐약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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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사생활 99가 남다른 점은 서울에 대한 '적당한 무관심'이다. 한국은 성장을 위해 서울에 집중하고 지역을 동원했다. 단양의 충주댐처럼, 어느 곳에는 송전탑이, 다른 곳에는 군사기지가 들어섰다.

하지만 지역의 사생활 99는 그런 모순을 폭로하는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도이의 엄마도 서울 얘기에 "술 맛 떨어져" 하며 삼킬 뿐이다. 한 도시에 주어진 분량이 100페이지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를 탓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아까운 탓이다.

대신에 작가들은 주어진 공간에 시간과 인물이라는 상상력을 마음껏 교차시킨다. 2015년이지만 우주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고, 조선이나 일제 시대가 몇 컷 만에 지금 이 순간과 연결된다. 중간중간에 아주 사적인 꿀팁도 찔러 넣는다. 숨은 맛집이나 절경, 산책코스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면에서 책의 말미에 20페이지 내외의 작가 인터뷰를 수록한 것은 무척 영리하다. 강렬한 이야기는 하나의 완결된 구성으로 풀고, 못 다한 소소함들은 문답형으로 갈무리한다. 인터뷰를 읽으면, 꼭 귀농 귀촌이 아니더라도 그 곳에서 한 달 정도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자라난다.

도시만큼이나 낯선 만화가들과의 만남도 즐겁다. 만화계는 웹툰이나 그래픽노블 외에도 다양한 형식의 작품이 존재하고 또 지금 이 순간에도 장르의 경계선을 실험하는 전위적인 작가들이 있다. 지역의 사생활 99는 그런 작가들을 찾아내 지역이라는 연결고리를 부여한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산호, 근하, 정원, 래현, 고형주, 북구프랜빵, 작은비버, 약국, 퐅콜, 이요, 샘골이야기, 사진의기분, 코익, 황미몽, 최준혁, 하양지 작가들은 해당 지역과의 인연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풀어낸다. 마치 만화계의 젊은작가상을 읽는 느낌마저 든다.

프로젝트 자체의 실험도 유쾌하다. 삐약삐약출판사는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예고편 영상을 제작했는데, 작품의 컷과 배경음악 조합에 머물지 않고 음성 대사까지 더해 몰입감을 높였다. 개인적으로 공주 편 영상은 책으로 전할 수 없는 섬세한 감정까지도 전하는 듯 했다.

어쩌면 다음 시즌에는 실사판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군산에 위치한 삐약삐약출판사는 오프라인 상에서도 지역 독립서점들과도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 중이다. 군산에서 일으킨 작은 바람이 앞으로 10년간 '지역'이라는 키워드를 어떻게 채워갈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 영상 보러 가기 https://youtu.be/sWOlVDm5Mf8

지역의 사생활 99 : 담양 - 1-41(일다시사십일)

래현 (지은이), 삐약삐약북스(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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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NGO에서 커뮤니케이션 일을 해왔습니다. 만화를 좋아해서 잠시 에이코믹스에서 글을 썼습니다. 자유, 상상력, 이별 따위의 주제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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