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낀40대'는 40대가 된 X세대 시민기자 그룹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이번 회에는 '자녀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해 봅니다.[편집자말]
"답답해서 못 가르쳐. 그냥 학원 보내."

엄마표 학습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 지인들의 반응은 대부분 우려였다. 워킹맘이면서 엄마표 학습을 꾸준히 하기 쉽지도 않거니와 아이와 사이가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생각하다가 내 뜻대로 아이를 가르쳐 보기로 했다.

어차피 학원을 보내도 숙제도 많고, 엄마가 신경 써야 하는 건 똑같다는 생각에 호기롭게 시작했다. 많은 양도 아니었고, 수학과 글쓰기 정도였다. 짧은 시간, 꾸준히,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된다고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다.

첫째 아이의 학습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학습은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었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니 아이와의 관계가 돈독해졌다. 아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다시 설명해주면 될 일이었다. 계속 반복해서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덕분에 지인들이 우려했던 답답해서 못 가르친다는 일은 없었다. 학습시간을 통해 공부습관과 아이와의 관계,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같은 뱃속으로 낳아도 전혀 다른 아이라는 걸 실감하는 요즘.
 같은 뱃속으로 낳아도 전혀 다른 아이라는 걸 실감하는 요즘.
ⓒ ⓒ amseaman, 출처 Unsplash

관련사진보기

 
둘째 아이의 학습은 달랐다. 수시로 화가 났다. 아이는 알아듣지 않기로 작정한 듯 질문만 계속 퍼부어댔다.

"학교에서도 배우는데 왜 문제집을 또 풀어야 해?"
"왜 연산을 매일 2장씩 풀어야 하는데?"
"하기 싫은데 왜 해야 해?"


학교에서 배워도 연산은 계속 연습을 해주어야 하고, 연습할수록 더 능숙하게 된다는 말은 아이에게 통하지 않았다. 매일 꾸준히 해야 습관이 되고, 실력이 쌓인다는 말도 아이에겐 통하지 않았다.

"왜 수학을 꾸준히 해야 하는데?"

아이는 공부하기 싫으니 귀를 닫아놓고 있었다. 아이와 실랑이를 하다 보면 30분, 1시간은 훌쩍 지나 있었고, 더 큰 문제는 대화가 안 되니 윽박지르고 소리를 지르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냥 좀 하라면 해!!"

내가 입 밖으로 내뱉고도 '와, 이건 좀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화를 주체할 수 없어 늘 그런 식으로 끝났다. 아이는 매번 울면서 숙제를 끝냈다. 끝나고 나면 아이도 나도 감정이 너덜너덜해졌다.

둘째를 가르치면서 알았다. 엄마표 학습의 성패는 엄마가 잘 가르치느냐의 여부가 아니었다. 아이가 잘 따라하는 아이냐 아니냐의 차이였다. 나는 두 명을 가르치면서 극과극을 체험했다. 지인들의 의견대로 학원을 보내야 하나 싶었지만, 저런 태도로 학원에 간다고 한들 따라할 수 있을까 싶었다.

"왜 해야 하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첫째에 비해서 둘째를 혼내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는 어느 날 볼멘소리로 이야기 했다.

"엄마는 항상 나만 혼내. 형아는 칭찬만 하고!!"

아이의 말을 듣고는 흔한 드라마 스토리가 떠올랐다. 형은 잘하고, 동생은 못하고, 그래서 부모는 형만 좋아하고 동생과 차별한다는 이야기. 동생은 그런 부모의 사랑을 확인하려는 듯 사고치고 엇나간다는 이야기. 혹시 그 이야기가 우리 집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육아 방식에서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육아에서 문제를 찾다 보면 내가 기억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복기하게 된다. 나는 어떠했더라? 나는 공부를 좋아했던가? 부모가 강압적일 때 나는 무엇을 했더라?

어린 시절 내가 주로 혼나면서 듣는 이야기는 '말대꾸'였다. 가만히 있으면 덜 맞을 텐데 계속 대들고 말대꾸해서 매를 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의 말대꾸는 지금 둘째처럼 '왜'라는 질문이었다. 한 마디로 말 잘 듣는 아이가 아니었다. 내가 자라던 시대의 교육체계는 쉽게 수긍하고, 쉽게 이해하는 아이를 좋아했다. 자라면서 나는 쉽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쉽게 수긍하는 인간으로 바뀌었다.

수긍한다고 해서 기질이 쉽게 변하지는 않았다. 기질은 때때로 튀어나왔다. 수학 공식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아 계속 질문하면 "그냥 외워"라는 말을 들었다. 신입사원 때는 자회사 제품판매를 직원들에게 강요해서, '왜' 해야 하냐고 물었다가 사무실에서 눈물 나도록 혼났다.

그때 팀장에게 들었던 말은 "하라면 하지 왜 그렇게 말이 많아?"였다. 내가 아이에게 했던 말이었다. 계속된 '왜'에 대한 대답을 듣지 못한 채 나는 사회에 적응해 나갔고, 더는 질문하지 않았다. 개인보다는 단체생활과 조직이 중요했던 시절이었다.

그때를 돌이켜 보면 나의 '왜'에 대한 질문은 이해하기 싫다는 고집이 포함되어 있었다. 부모님도, 학교 선생님도, 회사 상사도 권위와 권력을 내세웠다. 결국 나는 복종하면서 평범하게 살았다. 겉으로 보면 조용하고 평범한 아이였고, 속으로는 '머리 나쁘고, 제멋대로이면서 드센 아이'라는 자기 비하가 있었다. 혼날 때 자주 듣던 말이었다.

만약 그때 누군가 "왜"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을 해주거나 혹은 내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면 어땠을까. 내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았어도 적어도 나 자신을 비하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문득, 내 아이에게는 그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최초의 사람은 부모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아이는 어른이 되는 과정 동안 자신의 고집을 꺾어야 할 일도 있을 것이고,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뜻대로만 살았으면 하는 것이 부모마음이지만, 세상 일이 어디 그러하던가. 아이에게 조금은 안온한 기억을 남겨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아이가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돕기
 
곤충학자가 꿈인 아이는 사슴벌레를 열심히 키우고 있다.
 곤충학자가 꿈인 아이는 사슴벌레를 열심히 키우고 있다.
ⓒ 이혜선

관련사진보기

 
학습과 아이와의 관계, 두 가지를 놓고 한 가지만 고르라고 한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당연히 아이와의 관계다. 아이와의 관계가 힘들어진 첫 번째 원인은 학습이었다. 첫째의 엄마표 학습을 하면서 공부습관과 관계 두 가지를 얻었던 나는 둘째에게도 똑같은 효과를 기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아이 모두 다른 사람인데,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아이에게 질문을 하기로 했다.

"OO아, 숙제 많은 것 같아?"
"응."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이는 한참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줄였으면 좋겠어."
"얼마나 줄였으면 좋겠는데?"


아이는 눈치를 보더니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아직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는 그런 존재였다. 강하게 "왜?"라고 묻지만 부모의 눈치를 보는 나이.

"그럼 오늘 생각해 보고, 내일 엄마한테 이야기 해 줄래?"

다음 날, 아이는 한 가지만 줄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더 줄이자고 했다. 이유는 학습의 양은 아이가 잘하는 기준이 아니라 내가 스트레스 받지 않을 정도의 양으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야 아이와의 관계에도 좀 더 힘을 쓸 테니까. 아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이는 수학문제를 푸는 대신, 곤충과 노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아이의 꿈은 곤충학자다. 곤충 관련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곤충채집을 하러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닌다.

때로는 장난감 레고로 성을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어 열심히 입으로 떠들며 논다. 장난감을 분해해서 새로운 장난감으로 탄생시키기도 하고, 모터를 달아보기도 한다. 과학 책을 보면서 여러 가지 과학 실험도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는 중이다.

대한민국에 사는 엄마로서 학습에 대한 불안감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불안감이 떠오를 때마다, 나와 아이의 관계에 집중하기로 했던 마음을 떠올리련다. 수학 문제 좀 못 풀면 어떤가. 어떤 삶을 살든 아이는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갈 것이고,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지금처럼, 그리고 내가 그래왔듯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longmami) 및 브런치(https://brunch.co.kr/@longmami)에도 실립니다.


group낀40대 http://omn.kr/group/forty
40대가 된 X세대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