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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노태우씨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노태우씨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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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과는 다르다."

정부가 지난 10월 26일 사망한 노태우의 국가장 결정의 이유로 든 외마디 해명이다. 이에 대해 이곳 광주의 아이들은 "대체 뭐가 다르냐?"고 반문하고 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삶의 궤적이 포개지듯 똑같은 평생의 동지 아니냐는 거다. 교사로서 뭐라고 답해야 하나. 

전두환과 마찬가지로 노태우에게도 전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붙일 수 없음을 미리 밝힌다. 법적으로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박탈된 이상, 사후라도 직함을 붙이는 건 합당치 않다고 본다. 자연인으로 돌아갔으니 장례 역시 장삼이사와 같은 평범한 가족장이 마땅하다고 여긴다.

"전두환과는 완전히 다른 케이스"라고 강조하며 정부가 제시한 근거는 이렇다. 우선, 용서를 구한다는 유언을 남겼고, 장남인 노재헌씨가 5.18 묘역을 찾아 무릎 꿇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을 꼽았다. 사과는커녕 역사적 사실조차 부정하는 전두환과는 천양지차라는 거다.

유족을 통한 '대리 사과'가 과연 진정한 사과일 수 있는가. 유언을 남겼다는 그에겐 직접 사과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2002년 전립선암 수술 후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전두환 회고록>의 모본이라고 조롱받는 <노태우 회고록>이 출간된 건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1년이다. 

사과의 진정성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

알다시피, <노태우 회고록>에서 5.18은 여전히 '광주 사태'로 적고 있다. 민주화운동으로 공식 명명되고, 희생자들이 잠든 곳이 국립묘지로 지정된 지 10년도 더 지난 때다. 입말이라면 몸에 밴 습관이라 눙칠 수 있다 쳐도, 그의 이름을 내건 자서전 성격의 회고록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또, '12.12 쿠데타를 당시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을 연행하려다 일어난 돌발 사고'로 규정하는가 하면, 5.18 당시 광주시민들이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시민들 씨를 말리러 왔다'는 유언비어에 현혹되어 계엄군에 맞선 것이라고 적었다. 훗날 그들에 의해 격해진 지역감정을 끌어와 과거 사건의 원인인 양 호도한 그의 비열함에 치를 떨게 된다. 

나아가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참모로서 조언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진압 작전에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고 기술했다. 대놓고 전두환의 대변인임을 자처하는 격이며, 그와 '운명 공동체'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 전두환이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의 수괴라는 역사적 사실조차 부인하는 것이어서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역사 왜곡과 폄훼 말고도 사과의 진정성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그의 재임 시절 천문학적 액수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스스로 털어놨으면서도, 시대적 한계 운운하며 같잖은 변명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퇴임 후 사적인 축재용이 아니'라고 항변하기까지 했다.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가 원활하게 움직이도록 각 부품에 윤활유를 쳐주어야 했고, 통치자금은 국정 수행의 효율성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는 해명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정경유착이 국정 운영에 유용하다는 이야기 아닌가.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관료사회를 통제하기 위해 '검은돈'이 필요하다는 발상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대선을 앞둔 정치적인 결정이라는 의심
 
29일 부산시청 광장에 부울경518민주유공자회, 천주교부산교구정의평화위원회,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등의 "노태우 국가장 거부" 현수막이 부착돼 있다.
 29일 부산시청 광장에 부울경518민주유공자회, 천주교부산교구정의평화위원회,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등의 "노태우 국가장 거부" 현수막이 부착돼 있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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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술 더 떠, 김부겸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의 모두발언에서 "재임 시 국가 발전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며, 예우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기리고자 하는 노태우의 업적은 뭘까. 88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와 북방정책, 그리고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정도를 들 수 있겠다. 

하나같이 굵직한 역사적 사건임을 부인할 순 없다. 다만, 그것들은 당시 소련의 88올림픽 참가 결정 이후 도미노처럼 이어진 일련의 과정이었다. 1989년 몰타회담에서 미소 정상에 의해 냉전 종식이 선언되었고, 우리나라는 동유럽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이 이뤄졌다.

중국과 러시아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 곧 북방정책은 자연스럽게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으로 이어졌다. 곧, 국제정세의 급격한 변화와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대한 대응의 일환이었다. 요즘 말로, 외부 환경이 노태우의 치적을 '하드 캐리'한 셈이다. 

정부는 한사코 그의 업적에 방점을 찍으려 하지만, 대선을 앞둔 정치적인 결정이라는 의심을 거두기 힘들다. 백 보 양보해서, 그 모든 게 노태우의 탁월한 정치적 역량에 기인했다고 치자. 그러면 쿠데타를 일으키고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천인공노할 죄과가 덮어지는 것인가.

"전두환은 법률을 개정해서라도 국가장을 치르지 않겠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노태우는 되고 전두환은 안 된다는 게 과연 논리적으로 타당한가. 둘은 권력 서열 1, 2위였을지언정 헌정질서를 파괴한 쿠데타와 광주 학살의 주범이었다.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을 두 번 죽이는 행태"

무엇보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국론 분열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당장 국가장법에 따른 조기 게양과 분향소 설치를 두고 지역마다 입장이 제각각으로 갈렸다. 그를 용서하지 못하는 광주에서는 조기 게양조차 거부했지만, 그의 고향인 대구와 경북 지역에서는 분향소가 곳곳에 설치됐다. 

광주에서는 대구와 경북을 향해 "시민을 학살한 군사독재정권의 편이냐"며 항의하고, 대구와 경북에서는 광주를 향해 "용서할 줄 모르는 모진 사람들"이라며 손가락질하고 있다. 과연 이렇게 될 줄 몰랐을까. 피해자의 용서가 전제되지 않은 정부의 화해 시도는 서로에게 더 깊은 생채기만 남길 뿐이다.

공교롭게도, 1992년 노태우가 김영삼, 김종필과 손잡았을 때 벌어진 상황과 유사하다. 이른바 '3당 야합'으로 광주를 비롯한 호남은 철저히 고립됐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망국적 지역감정으로 남아있다.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엔 국가장 결정에 반대하고 나선 광주와 호남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는 점이다. 

"노태우가 전두환과 대체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이렇게나마 답했다. 역대 최저 득표수로 당선됐을지언정 직선제 대통령이라는 점, 유언장으로나마 '대리 사과'했다는 점, 추징금 2628억 원을 완납했다는 점 등에서 전두환과는 다르다? 마른 수건 쥐어짜듯 찾아낸 답변이 한없이 궁색하고 아이들 앞에서 민망하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그게 국가장 결정의 이유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힐난했다. 한 아이는 온 국민으로부터 전두환이 몹쓸 인간으로 조리돌림 당하다 보니, 되레 노태우가 착해 보이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을 이었다. 다른 한 아이는 이번 사달을 매조지듯 이렇게 말했다.

"12.12 쿠데타를 부인하고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총칼로 학살한 그를 국가장으로 예우하는 건 사회 정의에 반하는 일이자, 5.18을 비롯해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을 두 번 죽이는 행태입니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사죄하고 이번 국가장 결정을 취소해야 합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에 흠결을 남겨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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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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