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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카피라이터가 요즘 뜨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탐방하며 기업들의 참신한 브랜딩 전략을 살펴봅니다.[편집자말]
언젠가부터 가게의 간판이 사라지고 있다. 철공소가 즐비한 을지로 골목 등에는 간판 없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찾아가기 힘든 4층이나 5층에 자리잡은 매장도 더욱 많아지는 추세다. 길거리와 건물 벽면에 존재하던 간판이 SNS 계정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SNS를 기웃거리며 가고 싶은 가게를 '발굴' 하고, 지도 어플의 도움을 받아 그곳을 찾아간다.

예전에는 길을 걸으면서 매장을 마주치는 게 당연했다면, 이제는 온라인에서 확인한 곳을 오프라인에서 찾아간다. 공간의 실제적인 위치보다도, 공간을 알리는 SNS 계정의 힘이 더 중요해졌다.

이런 패러다임의 전환은 공간 브랜딩에 새로운 가능성을 안겨 주었다. 장소에 연연하지 않으면서도 색다른 브랜드 공간을 구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전과는 달리 독특한 곳에서 스토어를 오픈한 브랜드가 더욱 많아지는 이유다.

낡은 아파트의 변신 
 
대림맨숀의 오래된 복도를 걷다 보면 어느새 '논픽션'의 쇼룸이 나타난다.
 대림맨숀의 오래된 복도를 걷다 보면 어느새 "논픽션"의 쇼룸이 나타난다.
ⓒ 이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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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을 기반으로 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논픽션'의 두 번째 쇼룸은 이런 변화를 몸소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이들의 쇼룸은 코스메틱 제품숍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네모반듯한 상업건물이 아닌,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오래된 아파트 '대림맨숀'에 자리하고 있다. 쇼룸을 알리는 입간판은 어디에도 없지만, 소비자들은 각자의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며 매장을 찾아온다. 아는 사람들만 올 수 있는, 그래서 더 재미난 공간이다.

'대림맨숀'은 1975년에 지어진 거주 공간이다. '맨숀'이라는 표기에서부터 세월이 느껴진다(규범 표기는 '맨션'이지만, 이 아파트는 처음 지어질 때 표기인 '맨숀'으로 여전히 불리고 있다). 아파트 복도에서부터 정감 있는 옛날 아파트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데, 입구 한 편에는 논픽션 쇼룸 위치에 대한 설명이 붙어있는 안내문이 보인다. 실제 입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으니 방문 시 유의해달라는 내용이다. 조심스레 복도를 걸으며 3층에 위치한 쇼룸으로 걸어가다 보면, 매장이 아닌 누군가의 집에 놀러 가는 기분이 든다.
 
1975년에 지어진 부산 해운대의 아파트 '대림맨숀'의 현판.
 1975년에 지어진 부산 해운대의 아파트 "대림맨숀"의 현판.
ⓒ 이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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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입주민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므로 소음에 주의해야 한다.
 실제 입주민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므로 소음에 주의해야 한다.
ⓒ 이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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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은 2019년 런칭 초기부터 주목을 받은 브랜드다. 아티스트 그룹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이끌던 차혜영 대표의 이력과 다양한 크리에이터들의 뜨거운 반응이 어우러져 소비자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여러 아티스트들과 협업한 비주얼 화보 등에선 향이라는 무형의 소재를 시각화하려는 노력도 돋보였다. 향기의 비주얼라이징에 집중하는 브랜드인만큼 부산 쇼룸에선 오래된 집만이 줄 수 있는 아늑함을 향기에 덧입히려는 시도가 느껴진다.

맨숀 내부에는 총 두 개의 쇼룸이 존재한다. 한 곳에는 점원이 상주하고 있으며 다른 한 곳은 무인으로 운영 중이다. 쇼룸에 들어서면 집의 거실을 개조한 아담한 공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식물과 카페트, 그리고 나무의 적절한 조화가 작은 쇼룸을 더욱 포근하게 만든다.

백화점과 같은 정형화된 공간과는 다르게, 이곳에서는 친구의 집에 놀러온 것처럼 편안하게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그리고 공간이 가진 독특한 분위기는 향에 새로운 질감을 부여한다. 느긋한 마음으로 시향을 하면서 핸드크림이나 향수 등의 제품을 경험할 수 있다.

공간의 전복 
 
'논픽션' 부산 쇼룸의 내부는 아파트의 거실을 개조한 공간이다.
 "논픽션" 부산 쇼룸의 내부는 아파트의 거실을 개조한 공간이다.
ⓒ 이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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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집 사이에 위치한 쇼룸은, 공간의 활용성을 전복했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오래된 아파트를 또 하나의 매장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새롭다. 같은 것을 바라보며 다른 것을 떠올리는 순간 아이디어가 시작되는 것처럼, 같은 공간 속에서 다른 가능성을 찾아내는 순간 새로운 브랜딩이 태어난다.

가구 제조 브랜드 '이케아' 영국에서는 "THE BIG SLEEP OVER"라는 캠페인을 진행한 적이 있다. 100명의 소비자를 초대해 이케아 매장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게끔 한 이벤트였다.

사람들은 이케아의 침대에 누워 매장에서 숙면을 취했고, 수면 관련 가구들의 편안함을 독특하게 알릴 수 있었다. 매장을 침실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캠페인이었다. 공간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브랜드에겐 그만큼의 참신함이 따라온다.
 
▲ IKEA BIG Sleepover
ⓒ IKEA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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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맨숀'은 논픽션의 쇼룸 말고도 다른 브랜드들의 팝업 스토어 등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낡은 아파트 속에서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매장의 인테리어가 공간의 내피라고 한다면, 매장의 입지는 공간의 외피와도 같다.

어디에서 우리 브랜드를 경험하게 할 것인지를 정하는 건, 브랜드에게 어떤 옷을 입혀줄지를 고민하는 일과도 비슷하다. '대림맨숀'은 어느새 트렌디한 브랜드들을 품어주는 근사한 옷이 되었다.
 
논픽션 쇼룸이 있는 부산 '대림맨숀'. 입주민들의 주거지와, 브랜드 쇼룸이 섞여있다. 우측 하단, 창문에 하얀 원형의 로고가 새겨진 곳이 논픽션 쇼룸이다.
 논픽션 쇼룸이 있는 부산 "대림맨숀". 입주민들의 주거지와, 브랜드 쇼룸이 섞여있다. 우측 하단, 창문에 하얀 원형의 로고가 새겨진 곳이 논픽션 쇼룸이다.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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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의 브랜드명은 '허구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뜻한다. 이들의 부산 쇼룸은 아파트 속에 숨겨진 매장을 만들어보자는 소설적 상상력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표현된 공간처럼 느껴진다.

입주민들이 사는 곳에서 다양한 제품을 살 수 있는 곳. 새로운 향기가 오래된 주거지를 감싸고 있는 곳. 그렇게 부산의 '대림맨숀'은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seung88)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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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 술 마시며 시 읽는 팟캐스트 <시시콜콜 시시알콜>을 진행하며 동명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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