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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심판 선고에 앞서 재판관들이
입장하고 있다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심판 선고에 앞서 재판관들이 입장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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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오래 전, 법을 공부하는 선배가 그랬다.

"법이 제일 늦어."

그때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채로 웃어넘겼다. 제법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법을 다루는 사람들과 법을 만지는 사람들과 법 앞에서 무릎 꿇거나 고함을 치는 사람들을 조금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일을 하며 어렴풋이나마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법은 항상 늦었다. 전쟁으로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신원을 회복할 때에도, 노동자들이 불길에 몸을 던지고 공권력에 맞서 싸우며 땀의 권리를 외칠 때에도, 성소수자들이 있는 그대로의 삶을 존중받기 위해 거리로 나섰을 때에도, 법은 단 한 번도 먼저 그들의 손을 잡아준 적 없다. 헌정 사상 첫 법관 탄핵이 끝내 불발된 날, 다시 한번 "법이 제일 늦다"는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법은 또 한 번 늦었다.

다만 법이 어렵게 어렵게 그 문턱까지 온 사람들이 다음으로 나아갈 작은 징검다리가 돼준 순간들은 있었다.

법이 또 늦었지만...

나는 2021년 10월 28일 유남석·이석태·김기영 세 헌법재판관이 남긴 소수의견도 그런 징검다리라고 믿는다. 이들은 탄핵심판의 성격은 '공직 강제 박탈'에서 그치지 않고 "헌법질서의 회복과 수호"라는 막중함도 띄고 있다면서 임성근 전 판사의 현직 여부를 떠나 그의 재판개입이 헌법 위반인지 아닌지 따져야 하며, 결론적으로 "중대한 헌법위반행위"라고 했다.

특히 김기영 재판관은 보충의견으로 사법농단을 합리화하며 재판 독립의 본질을 훼손하는 이들에게 헌법재판소가 헌법수호기관으로서 명확히 경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사건에서 피청구인(임성근 전 판사)은 수석부장판사의 지위에서 소속 법원 판사들의 재판에 개입한 것을 선배 법관의 조언이라 합리화하고 있는데, 이는 사법권의 독립에 관한 본질적 영역의 보호와 이를 침해하는 행위 사이의 규범적 경계가 설정되어 있지 않음을 반증한다. 따라서 이 사건은 반드시 본안에 나아가 피청구인의 행위가 갖는 헌법적 의미를 확인하고 해명해야 할 필요성이 인정된다.

비록 '각하' 의견이었지만, 이미선 재판관이 바라보는 법관탄핵심판의 본질도 비슷했다. 그는 "우리 헌법이 탄핵심판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은 위헌·위법행위를 저지른 고위공직자의 공직 박탈 그 자체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국민의 대표자인 의회의 탄핵소추와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통하여 행정부와 사법부가 법치주의 원리 하에 운영될 수 있도록 견제하고, 공직자의 헌법적 책임을 추궁함으로써 헌법의 규범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데 있다"고 짚었다. 

그런데 <중앙일보> 28일 보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은 헌재 결정 후 "지금 생각해보면 탄핵안 의결은 피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법원 내부 사정을 제대로 아는 의원이 없는 상황에서 이탄희 의원의 열변에 끌려간 측면이 있다"고도 평가했다.

사실 헌법재판소는 2020년 2월 법원이 임성근 전 판사의 재판개입이 형사법상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지만 '반헌법행위'라고 선언한 것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하지만 법관 탄핵 소추가 늦어지고, 결국 '임성근은 현직 판사가 아니라 공직 파면이 불가능하다'는 형식논리가 다수의견이 된 데에는 국회 책임이 크다. 

입법부는 헌법기관임에도 '균형과 견제'라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몰각하고, '사법의 독립'이 아닌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허상을 꿰뚫지 못하고 끌려간 측면이야말로 법관 탄핵 추진이 지지부진했던 이유 아닌가. "헌법을 준수한다"던 국회의원 선서는 잊고, 헌재 결정을 단지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로 인식하는 강박관념에 끌려간 측면이야말로 법관 탄핵 기각 결정을 낳은 원인 아닌가.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이탄희 의원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심판 선고 직후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임 전 판사는 탄핵 각하 결정이 내려졌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이탄희 의원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심판 선고 직후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임 전 판사는 탄핵 각하 결정이 내려졌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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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정치가 더 늦었다

약자 보호를 강조하던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의 말대로 "시대의 기후"를 감지해야 하는 법은 늦다. 반면 "그날그날의 날씨" 같은 민의를 감지해 국민을 대변해야 할 정치는 빨라야 한다.

대중에 영합하라는 말이 아니다. 정치권, 특히 집권여당에겐 '판사는 신인가'라는 국민의 의문을 토대로 헌법 수호와 재판 독립이라는 문제의식, 180석의 권한과 책임이란 현실감각을 바탕으로 국민보다 반 발짝 앞서가며 사회 현상을 풀어나갈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국민이 정치에게 권한을 위임한 까닭은 권력놀음을 하라는 게 아니다. 세력마다 고유한 철학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청사진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도록, 그 실천의 토대를 다질 수 있도록 '느린 법'을 조금이나 바꾸기 위해 빨리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잠시 맡겼을 뿐이다. 그 책무를 함께 나눠지지 못할 망정 '이탄희에게 끌려갔다'고 말하는 정치인은 정말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현실은 법도 느리지만, 정치는 더 느린 것 같다. 언젠가 그 선배를 만나면 이렇게 말할 참이다.

"선배, 법보다 정치가 더 늦던데요."

[관련기사]
재판관 3인의 소수의견 "임성근 재판 개입, 면죄부 안돼" http://omn.kr/1vrjh
법관 탄핵 가결, 판사가 드디어 인간이 됐다 http://omn.kr/1rz5k
현직 판사들 "왜 지금 탄핵이냐가 더 정치적" http://omn.kr/1rwr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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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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