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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월헌과 3층석탑 신륵사 절벽위에 위치한 강월헌은 그 풍광이 아름다워 많은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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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여행작가로 활동한 지 어언 1년 반이 지나가면서 주위 지인들에게 항상 받는 질문이 있다. "경기도에서 어디가 가장 좋습니까?" 사실 경기도에는 바다, 산, 강, 평야 등의 경관이 두루 존재하고 각 도시마다 매력이 다르기에 어느 한 곳을 꼭 집어 말하기가 참 힘들다.

하지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여주의 남한강변 특히 신륵사 주변을 으뜸으로 뽑고 싶다. 강변의 절벽 위 보금자리에 자리 잡은 신륵사의 풍경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보기 힘든 것이다. 신륵사 강헌루에 서서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을 바라보면 신선이 되는 듯한 한가로움이 진하게 다가온다. 실제로 CNN에서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50곳을 선정해서 발표했는데 여기에 여주 신륵사가 들어 있었다.     

여주 시내에서 다리만 건너면 바로 보일 정도로 편한 교통을 자랑하고 산속에 자리 잡은 다른 사찰과 다른 특별한 입지 덕분에 예로부터 많은 문인들이 이 절을 찾았다. 고려말 조선초에 걸쳐 이규보, 이색, 정도전, 권근, 서거정 등 수많은 명인들이 신륵사에서 뱃놀이를 즐기고 아름다운 시를 남기면서 이 절의 명성을 더해갔다. 

에펠탑 안에서 에펠탑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처럼 신륵사를 가장 아름답게 보려면 강 반대편으로 가야만 한다. 캠핑장과 호텔 등 수많은 시설이 들어서 있고, 이 일대를 유람하는 황포돛배도 탈 수 있는 장소다. 여주에서 가장 큰 호텔인 썬벨리 호텔 13층으로 올라가면 레스토랑이 있는데 신륵사와 남한강 일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특히 새벽에는 연무가 뿌옇게 펼쳐지며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그마저도 신비롭게 다가온다. 현재도 여주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꾸준히 사랑받은 덕분에 신륵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거대한 관광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수많은 상점들이 좁은 골목에 번잡하게 배치되어 있다. 정작 주목받아야 할 문화시설인 여주박물관과 여주도서관은 집구석에서 밀려난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불이문 담장 안으로 들어가면 속세의 번뇌는 사라지고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고요함만 공기 중에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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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륵사 조사당에 모셔진 나옹화상과 지공화상 그리고 무학대사 신륵사 조사당 안에는 고려말기의 대선사인 나옹화상을 비롯 지공화상과 무학대사가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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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남아 있는 유물과 기록으로 볼 때 고려시대 창건된 것이 아닐까 한다. 절 이름이 신륵(神勒)으로 정해진 설화가 내려온다. 고려시대 건너편 마을에서 자주 용마가 나타났는데 매우 거칠고 사나워 누구도 다룰 수 없었는데 인당대사가 신력으로 고삐를 잡아 말이 순해져서 말을 다스린다는 뜻의 늑(勒)자가 들어가 신륵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륵사 삼층석탑 비문에 따르면 이색의 부친인 이곡이 절벽의 모양새가 굴레와 비슷하다 하여 신륵이라 했다고 한다. 이런 전설은 여주 앞에 흐르는 남한강을 통칭하는 여강과 연결이 된다. 여주의 옛 명칭 황려를 따서 여강이 되었는데 그 이름은 이 고을의 강가에서 두 마리의 말, 황마와 검은 여마가 나와 황려로 정해진 것이다.      

여주 시내와 가까운 영월루 절벽 아래로 내려가면 마암이라 불리는 장소도 이와 관련이 깊다. 어쨌든 다시 신륵사로 돌아가 이곳이 명성을 얻게 된 이유는 고려의 고승 나옹선사가 여기에서 열반하여 승탑이 세워지면서부터다(나옹선사에 대한 설명은 경기 별곡 양주 회암사지 편에 나와 있다).

신륵사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세종의 영릉을 여주로 천장 하면서 원찰로 지정되었고, 점점 사세를 키워갔다. 사실 경기도에 있는 명찰 대부분이 조선 왕실 원찰로 지정된 덕분에 지금까지 세를 유지하고 있다(화성 용주사, 강남 봉은사, 남양주 봉선사).

강가를 바라보며 차분히 흙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신륵사의 중심 권역에 도달했다. 장엄하거나 웅장한 느낌은 아니지만 전각들의 구성이 깔끔하고 정갈해 보였다. 구룡 루라 불리는 누각을 뒤로하고 대웅보전과 다층석탑이 우리를 맞아준다. 둘 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화려한 다포양식의 지붕과 석탑에 새겨진 꽃무늬와 용무늬가 이 절의 기품을 더해주는 듯하다. 

사실 신륵사의 자랑거리는 대웅보전의 뒤편 구역에 있다. 분명 한 칸짜리 작은 건물인데 지붕이 화려한 다포양식이고, 앞마당에는 나옹화상의 제자인 무학대사가 스승을 추모하기 위해 심은 600년이 넘은 향나무가 기품을 더해주고 있다. 이 건물은 절에서 덕이 높은 승려를 모셔 놓은 조사당이라 불리는 건물로 불단 중앙에는 지공 화상이 모셔져 있고, 그 좌우에는 무학대사와 나옹 화상의 영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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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제존자 석종 보제존자라 불리는 나옹선사가 신륵사에서 입적하고 승탑을 조성하게 되면서 신륵사는 그 명성이 차츰 높아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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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계단을 오르며 언덕 위로 가야지 신륵사에서 가장 중히 여기는 보물을 만날 수 있다. 나옹선사가 신륵사에서 열반에 든 이후 3년에 걸친 공사 끝에 승탑과 이를 지키는 석등, 나옹선사를 그리는 비석이 한 영역에 모셔져 있다. 하나하나 나라의 보물로 지정된 소중한 문화재다. 이제 다시 신륵사 앞마당으로 돌아가 이번엔 신륵사에서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이동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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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존하는 유일한 다층전탑 현존하는 유일한 고려시대 전탑으로 강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등대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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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에서 가장 강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절벽 위에 지어진 정자 강월헌은 나옹 화상의 당호에서 딴 이름이다. 나옹 선사가 신륵사에서 입적한 후 추모의 뜻을 담아 세워졌다고 한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멀리서 굽이쳐 흘러오는 남한강 줄기를 바라보며 저마다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자리에서 좀처럼 떠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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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 조포나루터 여주 조포나루터는 마포,광,이포나루와 더불어 4대 나루터 중 하나였으며, 이 일대는 객주와 주막들이 모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1963년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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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월헌이 있는 신륵사 강변의 절벽을 동대라고 일컫는데, 여기에는 정자뿐만 아니라 아담한 삼층석탑과 높게 치솟은 벽돌탑도 있어 이 구역의 가치를 더해준다. 특히 벽돌로 쌓은 다층전탑은 절집의 랜드마크처럼 강 건너편의 이정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신륵사 관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이포나루와 함께 여주의 큰 나루터였던 조포 나루터 비석의 눈에 띄었다. 그리고 1963년 신륵사 수학여행차 이 나루를 건너다 도선이 침몰되는 사건이 일어나 학생 49명이 침몰되는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 1964년 여주대교가 개통되고 현재 나루는 폐쇄되었다는 사실을 알린 비석만 멍하니 서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많은 이야기와 역사가 담긴 여주 신륵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