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29 13:06최종 업데이트 21.11.0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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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전투의 주역 홍범도 장군이 8월 15일 광복절에 귀향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방현석 소설가의 '홍범도 실명소설 <저격>'을 주 2회(화요일, 금요일)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15

백무현을 병영성 밖에 묻고 한양으로 돌아온 나는 허깨비가 되었다.


내 손가락에 끼워진 그의 반지 두 개가 하루에도 수십 번 백무현을 떠올리게 했다. 빼고 싶었지만 잃어버릴까봐 그럴 수도 없었다. 이것마저 잃어버리고 주인을 찾아주지 못한다면 나는 정말 사람이 안 될 것만 같았다.

한양의 우군영으로 복귀한 다음 날 또 다른 죽음이 나를 기다렸다. 이흥완.

갑신정변의 현장에서 청나라 원세개 군대의 칼을 맞고 죽은 홍영식의 겸종 이흥완의 죄명은 모반대역부도죄였다. 모반대역부도죄의 형벌은 하나뿐이었다. 산 채로 사지를 토막내 천천히 죽이는 능지처사. 잘린 이흥완의 팔과 다리, 몸통은 전국으로 흩어질 것이다. 칠패시장 앞에 내걸린 이흥완의 머리를 보고 나는 먹은 것을 모두 토하고 말았다.

세도번환, 세상의 질서를 뒤집어 바꾸는 세도번환이 일어날 것이라고 들떠있던 이흥완의 머리는 시커멓게 변한 채 매달려 있었다. 능력만 있으면 상놈도 관직을 할 수 있고, 실력만 있으면 병졸도 무관이 될 수 있는 세상... 그가 그런 세상을 누린 것은 단 하루였다. 그 하루와 바꾼 그의 머리가 바람에 흔들렸다.

그의 머리를 차마 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돌아서는 눈앞에 청나라의 방이 붙어 있었다. 조선왕실의 재정 고문 진수당 명의의 방에는 '청국의 속국인 조선'이라는 구절이 버젓이 들어있었다. 이흥완이 그렇게 믿고 자랑하던 일본군이 청나라 군대와 싸우지도 않고 도망친 다음, 개화파의 세상은 단 하루로 끝나고 한양은 다시 청나라 세상이 되었다.

다음 날에는 차이경이 참형을 당했다. 차이경은 이흥완보다 두 단계 낮은 지정불고죄, 현륙이었다. 목을 베어 죽이고 시체는 거리에 내걸렸다. 군영의 병사들은 농민을 가장 많이 야비하게 살육한 공적으로 특진을 한 박민규를 따라 남대문에 내걸린 차이경을 보러 몰려갔다. 나는 가지 않았다. 어제 본 이흥완의 머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났다.

구라파에 가서 영국과 덕국, 법국의 말을 공부하고 싶어 했던 차이경에게 갑신정변의 그 하루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열다섯 사미승에게 공부를 시켜주겠다며 머리를 기르고 겸종이 되게 만든 그의 주인들은 왜 일본으로 도망가면서 그를 데리고 가지 않았을까.

"홍범."
넋을 놓고 군막에 혼자 처박혀 있는 나를 부른 건 박한 초관이었다.

"정말 평양으로 돌아갈 거야?"
"네."
"거기 가서 할 거 없잖아?"
"여기서는 있나요?"
박한 초관은 시큰둥하게 되묻는 내 얼굴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백무현이 때문에 그러냐?"
"..."
"그 자식이 그렇게 맥없이 가버릴 줄 알았으면 내가 그날 미리 네놈들 다리 몽댕이를 부러뜨려놓는 건데..."

"저 때문이에요."
"웃기지 마. 누구 때문에 사는 놈은 있어도 누구 때문에 죽는 놈은 아무도 없어. 그래도 백무현이 때문에 그 무지렁이들 절반은 살았을 거야...너 차이경이랑 동갑이지, 한 번 봐."
박한 초관이 던져준 것은 차이경의 심문 결정문이었다.

대역죄인 차이경, 18세.
문: 죄인은 본시 이와 서캐같이 더럽고 천한 자로 부모를 잡아먹는 짐승같이 흉악한 성질을 타고 났다. 중이 된 다음에는 어린 나이에 간특하게도 역적의 무리와 어울려 옥균을 따라 함께 배에 오르고, 등촉을 들고 역적 무리를 안내하여 앞장서 궁궐에 들어갔으니 과연 악독하다. 궁궐에서 칼을 휘두르는 흉포한 생도와 상한들을 지켜보고 도우며 역모에 가담한 전후 사정이 이처럼 명명백백함에도 어찌 시종일관 잡아뗀단 말이냐. 이미 지은 죽을 죄에 다시 죽을 죄를 더하지 말고, 이실직고 낱낱이 실토하여라.
답: 저는 본래 사미승으로 절에서 살던 중에 약수를 마시러 온 김옥균과 알게 되었는데, 김옥균이 개척사로 일본 가는 길에 따르라 하여 모름지기 공부가 하고 싶은 욕심에 따라나서, 동경을 오가는 내내 밥 짓고 반찬 만드는 시중을 들었습니다. 나중에는 서재필이 집에 와 머무르라고 하여 역시 공부가 하고 싶어 따라 들어갔습니다. 경우궁에는 서재필을 따라 등촉을 들고 따라갔다가 이튿날 이른 새벽에 나왔습니다.

문: 궁궐에서 한 짓이 무엇이냐?
답: 아궁이에 불 때는 일만 했습니다.

문: 본 것은 무엇이냐?
답: 불을 때다가 내시가 죽는 것을 보고, 무서워서 서재필에게 부탁해 궁궐에서 나왔습니다.

문: 포도청에서는 네가 역모에 가담하고, 여러 죄행을 지켜보았다고 진술했으면서 왜 여기서는 없다고 발뺌하느냐?
답: 무서워서 시키는 대로 말했던 것이며, 실로 아는 바가 없습니다.

문: 죄인은 가사를 입고 옥균의 배에 따라 타고, 나중에는 재필에게 의탁하여 등촉을 들고 재필을 궁궐로 안내했다. 중의 무리와 역적의 무리 사이를 해괴하게 출몰하며 역모에 참례하기를 즐거이 하였으면서도 어찌 아는 바가 없다고 잡아떼느냐. 매질을 하여라.

이날 매질을 다섯 차례 하고 더 엄한 형벌로 범죄를 자백토록 상신하여, 윤허를 받았다. 이에 따라 서캐와 같이 천하고 이와 같이 간특한 죄인 차이경을 네 차례 엄한 형벌로 취조하여 마침내 자복을 받았으니 법전이 정한 대로 현륙을 시행한다.

"차이경은 정말 이보다 못한 인간이었을까요?"
나는 문서를 박한 초관에게 돌려주며 물었다.

"그렇다고 나와 있지 않느냐?"
"걔는 정말 공부를 하고 싶어 했어요. 그건 제가 알아요. 공부를 하고 싶어했던 그의 꿈도 서캐같은 것이었을까요?"

"내가 이걸 왜 보여준 것 같아?"
나는 비로소 박한 초관을 마주 바라보았다. 그는 대답을 원하는 것 같지 않았다.

"처음 한양에 왔을 때 파총님이 뭐라고 했어? 눈 깜빡하면 코 베어 간다고 한 말 기억 나? 깜빡 한 발만 잘못 디디면 이렇게 되는 거야."

박한 초관이 손에 쥔 문서를 흔들어 보이고는 돌아서며 말했다.

"평양으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한양에 있기에는 네 피가 너무 뜨거워."

박한 초관이 남기고 간 말을 되씹으며 나는 죽은 자들을 생각했다. 나의 칼에 죽은 농군들, 농군의 창에 죽은 백무현, 산 채로 사지가 잘린 이흥완, 목이 달아났을 차이경...
한양을 떠나는 날 이흥완의 능지처사된 시신도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떠났다.

나는 정태신 파총에게 인사를 가지 않았다. 나는 그를 어떤 눈빛으로 쳐다보아야 할지 알지 못했다. 박한 초관은 작별인사를 간 내게 독수리 깃털 하나를 빼주었다.

"두 개 중에 하나니까, 절반을 주는 거야."
그의 군모에 언제나 부적처럼 꽂혀있던 검은독수리 깃털이었다.

"이걸 저에게 주셔도 됩니까."
나는 그가 이 검은독수리 깃털을 얼마나 아끼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제 내가 우리 막내를 하늘에서 떨어뜨리는데, 혼자서 날아가려면 깃털 하나는 있어야지. 힘이 들면 말야, 이 독수리가 상승기류를 타고 아무도 닿을 수 없는 높이로 올라가 날개를 펼치고 밤새 홀로 활공하는 걸 상상을 해봐. 그러면 외로움도 두려움도 없어질 거야."

알 듯 모를 듯한 그의 말에 나는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박한 초관이 독수리 깃털을 꽂아준 군모를 쓰고 정문 위병소 옆에 있는 견사에 들렀다. 진돗개 다섯 마리가 펄쩍펄쩍 뛰며 반겼다. 나는 한 번도 녀석들을 예뻐한 적이 없었는데 녀석들은 이상하게 내가 지나갈 때마다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다. 산돌이를 배신하는 것 같아 한 번도 정을 주지 못했던 녀석들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번씩 쓰다듬고, 안아주었다.

 
16

백무현의 여동생은 찾을 필요도 없었다.
"무현 형은 어떻게 된 거야?"
평양군영에서 내게 백무현의 일을 제일 먼저 물은 것은 달음이었다.
"갔어."
"농군들 따위에 당할 무현 형이 아닌데, 어떻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나 대신 옆에 있던 남창일이 백무현의 최후를 설명했다. 달음이는 남창일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한숨을 몰아쉬며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육시랄 놈들."
우리가 평양군영을 떠나 있는 사이 달음이도 말투만큼은 완전히 군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죽일 놈들은 따로 있는데 왜 착한 무현 형을 죽여..."
"쌈꾼이 뭐가 착해. 네가 형의 뭘 알아?"

나는 다른 사람들이 무현형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것이 싫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다들 거친 그를 피했으면서 이제 와 아는 체하고 친했던 것처럼 추억했다. 그에게 제대로 한 번 까불며 어깃장 놓고, 대들고, 엉겨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운 나는 백무현의 이름을 쉽게 입에 담는 녀석들이 불편했다.

"내가 제일 잘 알지. 무아는 인제 어떻게 하라고..."
"무아가 누군데?"
"무현형 여동생."
"네가 여동생을 알아?"
"그럼, 알지. 백무아."

평양군영 본대의 전령인 달음이는 한 달이 멀다 하고 한양에 다녀갔다. 삼군부에 보고서를 올리고 전통을 수발해가는 길에 잠시라도 우영에 들러 우리를 보고 갔다. 달음이가 그때마다 백무현이 준비해두었던 작은 선물을 받아 여동생에게 전해주었다는 사실을 나는 처음 알았다. 정혼자에게 줄 거라고 허풍을 떨며 산 댕기와 노리개의 임자가 다 여동생이었던 것이다. 병사들이 모두 외출을 나가는 날에도 손사래를 치며 혼자 군영에 남곤 하던 백무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귀찮다. 난 잠이나 푹 잘란다."
어쩌다 외출을 나가서도 남들한테 얻어먹었다. 그렇게 쓰지 않고 모은 돈의 행방을 이제야 나는 알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백무현이 가족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마저 싫어할 만큼 백무현이 아낀 여동생이 어떤 처녀일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럼 이거 좀 전해 줘."
나는 새끼손가락과 약지에 끼고 있던 반지를 차례로 뽑았다.

"내가 왜? 네가 직접 전해 줘."
달음이는 손사래를 쳤다.

"난 못해. 무현 형 죽었다는 얘기 난 못해."
달음이는 눈앞에 백무현의 여동생이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두 눈을 질끔 감고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들었다.

"예뻐?"
철딱서니 없이 불쑥 끼어드는 남창일을 내가 째려봤다. 달음이는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무서워."
"여자가?"
"그냥 여자가 아니고, 백무현 동생 백무아."

남창일은 달음이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눈을 껌뻑였다. 여자 백무현이 잘 그려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네가 갈래?"
내가 손에 든 반지를 남창일에게 내밀었다. 잠시 눈동자를 굴리던 남창일이 고개를 저었다.

"안 예쁘다니까 나보고 가라는 거잖아."
달음이가 남창일을 향해 손바닥을 내저었다.

"내가 언제 안 예쁘다고 했어. 예뻐."
"무섭다면서?"
"예쁘고 무서워."

남창일은 예쁜 것과 무서운 것이 합쳐진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지, 아니면 예쁜 것과 무서운 것 중에서 어느 쪽이 우세한지 가늠이 되지 않는지, 미간을 찡그리며 몇 번이나 갸웃거리던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난 무서운 거 싫어. 받은 사람이 가."
"너도 받았잖아."

나는 턱으로 남창일의 양손에 들려있는 칼을 가리켰다. 남창일은 백무현이 죽은 다음 날부터 그의 쌍검을 챙겨 들고 제독검법을 연습했다. 제독검법의 꽃인 쌍검술은 화려한 만큼 고난도의 기술이었다. 한 손만 써온 사람은 양손에 검을 들고 중심을 잡으며 진퇴, 회전하기도 어려웠다. 양손에 칼을 든 남창일도 처음에는 비틀거리기 일쑤더니 이제는 제법 품새가 나왔다.

"이걸 여자한테 줘?"
남창일은 자신의 양손에 들려 있는 검을 내려다보았다.

"여자한테 이건 아니지. 그거나 갖다 줘."
남창일은 눈짓으로 내 손에 들려 있는 반지를 가리켰다.
덧붙이는 글 방현석은 소설가다. 소설집 <사파에서>, <세월>, <내일을 여는 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새벽 출정>과, 장편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십 년간>, <당신의 왼편>이 있다. 산문집 <아름다운 저항>, <하노이에 별이 뜨다> 와, 창작방법론 <이야기를 완성하는 서사패턴 959> 등을 썼다. 신동엽문학상(1991), 오영수문학상(2003), 황순원문학상(2003) 등을 받았다.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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