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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태우씨 빈소 모습.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태우씨 빈소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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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란 이리도 얄궂다. 군사독재를 시작한 이와 군사독재의 마지막에 있던 이가 같은 날 세상을 떠나게 됐다. 노태우씨의 죽음 이후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고인의 공과를 논한다. 많은 잘못도 있지만 그래도 말년에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았냐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반성과 사과가 고인이 병환으로 쓰러지고 나서라는 점에서 진정성이 결여됐다고 생각한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 매정하다고 욕해도 좋다. 같이 두 손 꼭 잡고 내란수괴로 판결받은 전두환씨에 비하면 낫지 않냐고 옹호해도 좋다. 그럼에도 나는 고인의 반성과 사과가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10년 전 출간된 고인의 회고록 때문이다.

"12.12사태는 쿠데타가 아니다"

2011년 출간된 노태우씨의 회고록에는 대법원에서 군사반란으로 규정된 12.12 군사반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이 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12·12사태는 국가원수를 시해한 김재규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그 사건에 관련이 있다고 의심되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려다가 일어난 돌발사고였다.

만일 이 사건을 쿠데타로 규정한다면 쿠데타의 '사전계획'이 있었어야 하는데 수사 계획 이외의 말을 어느 누구에게서든지 들어 본 적이 없다. 역사상 어느 쿠데타도 병력을 동원하는 부대장이 부대를 이탈해 지휘할 수 없는 곳에 가 있는 예는 없었다. 다시 말해 쿠데타가 성립될 수 있는 구성요건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고인은 12.12 군사반란이 쿠데타가 아니라고 봤다. 하지만 12.12 군사반란이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이후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철저한 계획 하에 이뤄진 일이라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게다가 고인은 당시 최전방 부대인 9사단의 사단장으로서 진압군이 반란군을 진압하려 하자 전방의 29연대 병력을 동원시킨 바 있다. 이는 전두환씨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닌 고인의 자의적 판단으로, 고인 예하의 병력을 동원한 덕에 12.12 군사반란이 성공할 수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당시 최전방 부대는 한미군사동맹협정에 따라 주한미군 사령관의 허가가 있어야 이동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휴전선을 지키고 국민의 목숨을 지키는 최전방 부대를 멋대로 전용한 이가 바로 고인이었다.

5.18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적 없다
 
1988년 제13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노태우씨가 선서하는 모습.
 1988년 제13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노태우씨가 선서하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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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태우씨는 회고록에서 "광주사태 당시 나는 수도경비사령관으로서 서울지역의 계엄분소장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광주에서 발생한 사태에 대해서는 관여할 입장이 아니었다"며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부정한다. 게다가 고인은 광주에서 시위가 격렬해진 까닭은 시위 진압에 군이 투입됐기 때문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광주는 그동안 크고 작은 소요가 있었어도 대부분 경찰에 의해 진압되고 군이 투입된 적은 없었다. (중략) 군인이 임의로 융통성을 부리는 것을 용납한다면 그 군인은 전쟁터에서 싸울 수 없을 것이다. 국민들도 그런 군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광주처럼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 곳에 군이 투입되었다. 광주시민들은 군을 경찰과 마찬가지로 생각했을 것이다. 군은 후퇴할 줄 모르므로 시민들이 물러서지 않는 한 충돌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처음부터 격렬한 시위가 일어났던 것 같다.

하지만 광주에 공수부대가 투입된 이유에는 고인이 깊숙히 관여하고 있다. 1980년 2월 5일 청와대에서는 '학원 소요사태 대비 군 보고'가 이뤄졌다. 이날 보고에는 주영복 국방장관과 이희성 계엄사령관, 전두환 보안사령관, 그리고 수경사령관이었던 노태우씨가 참석했다. 신군부는 아직 겨울방학이라 별다른 시위가 없었던 이때부터 군을 시위에 투입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2월 18일 육군본부는 느닷없이 휘화 사령관들에게 폭동진압교육훈련(이른바 '충정훈련')을 2월 중 조기 실시해 완료하라고 명령했다. 3월 4일에는 수도경비사령부에서 해당 훈련를 위한 제1차 충정회의가 열렸다. 수경사령관인 고인이 이를 총괄했다.

또한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는 타 지역에 비해 유별나게 무자비한 진압을 행했다. 타 지역의 시위를 보면 공수부대가 진압 후 연행한 뒤 경찰에 인계했는데 광주만 그렇지 않았다. 5월 18일 오후 서울에서는 성균관대 학생이 공수부대원에 의해 구타를 당하자 학생 구타 금지 명령이 내려졌을 정도였다. 하지만 광주에서는 "최후의 1인까지 추격하여 타격 및 체호"라는 강력한 조치가 공수부대원들에 의해 실행됐다. 공수부대 일반이 무자비한 진압을 했다는 고인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또 고인은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모욕했다.
 
광주사태의 진범은 유언비어였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악랄한 유언비어가 광주 시내를 뒤덮었다. (중략)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들은 광주시민들은 치를 떨면서 '저들을 보고 과연 우리 군대라고 할 수 있는가! 저들은 국민의 군대라기보다 차라리 적'이라며 적개심을 불태우고 이들 중 일부는 '우리도 맞서 싸워야 한다'면서 무기고를 습격하고 군 장비를 탈취해 군과 대항하게 된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진범은 유언비어가 아니라 신군부의 잔학무도한 진압임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고인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이런 망언을 한 것이다.

이외에도 고인은 대통령 시절인 1988년, 13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5.18 관련 자료를 수집·검토하고 육군에 불리할 수 있는 자료를 조작하는 '5.11 연구위원회'를 조직해 5.18 관련 자료들을 조작, 은폐, 왜곡한 바 있다.

이러한 회고록의 내용에 대해 고인의 아들인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은 지난해 6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회고록이 이미 출판이 된 부분이라 어쩔 수 없지만 만약에 다시 출판하게 되는 계기가 있으면 개정을 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다"며 "회고록을 마지막으로 정리할 때 아버님의 진심이나 의도가 제대로 저는 반영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이 된다. 그런 상태에서 이렇게 아주 부분적인 시각, 또 왜곡된 시각이 회고록에 그대로 나온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회고록을 출간하기 전 이런 부분에 대한 검토조차 없었다는 점에서 과연 고인의 진심이나 의도가 반영이 안 됐다고 말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변하지 않는 사실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유학성 전중앙정보부장(앞줄 오른쪽부터) 피고인이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12.12. 및 5.18사건 선고공판에서 기립해 있다. 1996년 8월 26일.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유학성 전중앙정보부장(앞줄 오른쪽부터) 피고인이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12.12. 및 5.18사건 선고공판에서 기립해 있다. 1996년 8월 26일.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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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경선 예비후보는 전두환씨에 대해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고 발언했다. 지난 27일 문재인 대통령은 노태우씨에 대해 "5.18 민주화운동 강제진압과 12.12 군사쿠데타 등 역사적 과오가 적지 않지만, 88올림픽 성공적 개최와 북방정책 추진·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등 성과도 있었다"고 평가했다.

한 쪽은 뭇매를 맞고 다른 한 쪽은 비교적 잠잠하다. 윤석열의 발언은 "쿠데타와 5.18만 빼면",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과오가 적지 않지만"이라는 표현상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전체적 맥락에서 살펴볼 때 두 발언은 크게 다르지 않다.

비록 노태우씨가 말년에 아들에 의한 반성과 사과를 했다고 하고, 유족이 공개한 유언에 따르면 노태우씨는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으로 인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린 피해자들의 삶은 오랜 세월 고통으로 점철돼왔다. 생전의 행실이나 회고록 등에 비춰봤을 때 노태우씨는 군사반란과 끔찍한 강제진압에 관여한 인물, 살아생전에 자신이 직접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은 인물임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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