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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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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서 한국발 '오징어 게임' 열풍이 불고 있다. 이를 두고 '한국의 어두운 자화상'이라는 해외 일각의 평가가 있지만, 그보다는 자본주의와 인간 본성의 모순을 다룬 소재에 전세계 사람들이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현실판 '오징어 게임'이 꿈틀대고 있다. 그 게임의 다른 이름은 바로 '재개발 사업'이다.

요즘 부동산 기사들을 보고 있으면, 20년 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일으켰던 뉴타운 사업의 광풍이 떠오른다. 대규모 철거 재개발을 통해 '강북을 강남으로' 만들어주겠다던 뉴타운 사업은 한때 서울시 전체 면적의 10%를 차지했으나, 결국 10년도 되지 않아 상당수 지역에서 시행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면서 해제 절차를 밟았다. 헌 집을 헐고, 새 집을 지어 상당한 이익을 낳는 것이 당연한 것 같은 재개발 사업, 이 사업이 좌초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바로 헌 집에 살던 사람들은 새 집에 들어갈 수 있는 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래 주민들은 대부분 조합원 부담금을 납부하지 못하고 임대아파트도 들어갈 형편이 못 되어 80% 이상이 떠나게 된다.

길음 뉴타운의 경우 재정착한 주민은 집주인과 세입자를 다 합쳐도 17.1%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10만 가구가 살고 있던 35개 뉴타운이 그대로 추진됐을 경우에 이 수치를 적용해 계산해보면, 무려 25만 7천명(8만여 가구)이 살던 마을을 떠나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경향신문, "뉴타운은 허울, 서민만 쫓겨나…원주민 재정착률 불과 17%" 2008.04.28.).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새 아파트를 분양 받으려면 기존 집주인 조합원들도 조합원 분담금을 내야 한다. 보통 조합원 분담금이란 분양가의 80% 수준으로 책정되는데, 시가가 아닌 공시지가 수준에서 가치를 평가받는 기존 주택의 보상금으로는 부담할 수 없는 금액이다. 결국 이렇게 주택을 가진 집주인도, 세들어 살던 세입자도 함께 마을을 등지게 된다.

현실판 오징어 게임, 재개발 사업

여기까지는 그래도 잘 알려진 이야기다. 재개발 사업의 과정과 현장에서 주민들이 겪는 일상은 오징어 게임과 비견될 만하다. 재개발이 추진되는 동네에 살아본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사업 초기 단계, 재개발에 대한 찬반에 따라 오랫동안 친밀한 공동체로 살아온 이웃들 사이에서 갈등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들은 차츰 사업 추진 측과 반대 측으로 편을 가르고 헤쳐 모이면서 생존을 건 줄다리기가 펼쳐진다. 치열한 줄다리기 끝에 외지인의 가세로 사업 추진 측이 이기면, 비로소 재개발 사업이 진행된다. 그 후 다시 분담금을 낼 수 있는 자와 낼 수 없는 자 사이의 개인전이 벌어지고, 여기서도 끝까지 남는 소수는 새 집을 얻고 지역에 남는다.

이 오징어 게임에서 주민들이 잃는 것은 무엇일까? 이들이 잃는 것은 집과 재산 상의 손해만은 아니다. 가까운 이웃 간의 갈등과 다툼에서 인간에 대한 깊은 배신감을 겪게 되며, 강제로 진행되는 사업 과정에서 우리 사회와 공공에 대한 신뢰도 잃어가게 된다. 남는 자는 마을과 이웃을 잃고, '새 집'을 전리품으로 얻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남는 자도 떠나는 자도 사람과 사회에 대한 말 그대로 '불신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서울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서울은 지금 코로나19 이후 K-문화의 수도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 앞에 서있다. 역사와 문화를 비롯한 도시의 다양성을 다듬어 지속가능한 세계도시로 나아가야 할 지금, 서울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이런 오징어 게임이 반복되는 도시, 행정이 이런 오징어 게임을 유도하고 조종하는 도시는 과연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세계도시가 될 수 있을까? 지금 이대로라면, 서울은 한국을 찾는 세계인들에게 우리 시민 간의 무한 갈등과 승자독식을 빚어내는 현실판 오징어 게임을 보여주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도시가 되지 않겠는가?

작년부터 유휴 자본이 주식과 금융권보다 높은 수익률을 찾아 부동산 시장으로 대거 몰리자,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재개발의 망령이 다시 고개를 들어 헌 집을 새 집으로 바꾸는 놀라운 마술을 보여주겠다며 손짓하고 있다. 물론 서울에는 신규 주택도 필요하다. 아파트에 살아 보고 싶다는 우리 소시민들의 희망도 나쁜 건 아니다. 그러나 우리 서울과 서울시민들은 10여년 전 용산 참사에서 귀중한 생명을 대가로 얻은 소중한 교훈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 많은 이에게 일확천금의 환상을 안겨주는 재개발 사업은 대다수가 희생되고 마는 '오징어 게임'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서울의 미래는 어떻게, 무엇으로 준비해야 하는가? 사실 오세훈 시장의 전 임기였던 10여 년 전부터 서울은 이미 고민하고 있었다. 다음 글에서는 오징어 게임을 넘어 가장 살기좋은 도시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던 우리 서울의 도전과 시민들의 새로운 시도를 다룰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창신숭인도시재생협동조합 이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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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숭인 도시재생 협동조합 이사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도시설계학 박사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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