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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4대강 사업으로 새롭게 정비된 이포보는 예전 조선의 4대 나루터인 이포나루가 있었을 정도로 번성했던 곳이다. 현재 그 흔적은 오간데 없다.
▲ 이포보의 풍경 현재 4대강 사업으로 새롭게 정비된 이포보는 예전 조선의 4대 나루터인 이포나루가 있었을 정도로 번성했던 곳이다. 현재 그 흔적은 오간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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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를 설명하는 여러 키워드 중, 자연지리를 이야기할 때 한강은 빠지지 않는다. 그 한강 덕분에 수운은 물론 기름진 옥토를 만들었으며 고려, 조선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었다. 

하지만 삼국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이 일대를 차지하기 위한 삼국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를 증언하듯 한강, 특히 남한강변 일대에 수많은 성벽이 아직도 남아있다. 여주 역시 마찬가지다. 남한강변 이포나루가 가장 잘 보이는 파사산 꼭대기에 성벽을 쌓아 예나 지금이나 여주의 초입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여주에 가장 북쪽에 위치한 파사성을 가기 위해서는 거진 양평의 남한강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 주가 될 것인데 가을의 절정이 머지않은 덕분인지 길가에 코스모스가 아름답게 피어있다. 순간 1년 전 가을에 지나갔던 파주 임진강가의 코스모스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이 시리즈가 무사히 끝날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어느덧 책도 출판하고 31개 도시 중 남은 도시가 몇 개 되지 않는다. 이런저런 상념에 잠기다 보니 여주를 알리는 입간판이 등장하고 근처 관광지를 가기 위한 차들로 무척 붐빈다. 이 일대는 막국수로 유명한 마을인 천서리 막국수 단지는 물론 드라이브 명소와 자전거 일주 길로 유명한 이포보가 있다.

남한강과 아름다운 금수강산 풍경
 
파사성이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임란 전후 전국각지의 성벽을 보수하면서 부터다. 조선 후기에도 수차례 보수를 거쳐 지금의 성벽이 만들어졌다.
▲ 파사성의 육중한 성벽 파사성이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임란 전후 전국각지의 성벽을 보수하면서 부터다. 조선 후기에도 수차례 보수를 거쳐 지금의 성벽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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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필자의 첫 목적지 파사성도 SNS를 타고 전망 맛집이라는 소문이 나서 그 풍경을 찍기 위한 출사지로 각광받고 있다. 화물차가 제법 주차되어 있는 파사성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오솔길을 따라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 본다.

설화에 의하면 신라 파사왕(80~112) 때 축성하여 파사성이라는 명칭이 생겼으며, 산도 파사산이라 이름 짓게 되었다는데 당시 신라의 국력으로 이곳까지 영향력이 닿긴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또 다른 설로는 삼한시대 소국 가운데 하나인 파사국의 옛터라 전해지나 명확한 근거는 없다. 삼국시대부터 존재하던 파사성은 임진왜란 시기에 들어와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유성룡의 건의로 승군장 의엄이 승군을 동원하여 둘레 1100보의 석성을 수축했으며, 조선 후기에 걸쳐 여러 차례 수리한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다.     

산길을 20분쯤 올랐을까? 고개 위로 제법 육중한 자태의 성벽이 덩그러니 모습을 드러냈다. 방금 전까지 울창한 나무숲이 시야를 가렸지만 정상부에 올라오니 가리는 것 없이 사방이 트여있다. 시야를 방해하는 것은 하늘 위에 떠 있는 강렬한 햇살뿐이다. 

성벽 위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도도히 흐르는 남한강과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과연 고려 말의 이색과 조선의 유성룡이 시로 남겼다는 경치가 이런 것이구나 감탄이 절로 나온다. 사방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지점에 위치한 덕분에 파사성을 점령하는 것만으로 중부내륙의 수운과 육로를 통제하는 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파사성을 점령하면 이 일대의 수운과 육로교통을 장악할 수 있을 정도로 요충지였다. 백제를 비롯해 삼국의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장소다.
▲ 파사성에서 바라본 이포보와 남한강 파사성을 점령하면 이 일대의 수운과 육로교통을 장악할 수 있을 정도로 요충지였다. 백제를 비롯해 삼국의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장소다.
ⓒ 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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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성에서는 이포보의 거대한 수문이 눈길을 끌고 있다. 예전 번성했던 나루터의 흔적은 오간데 없고, 물은 예전처럼 흐르지 않고 막혀있다. 오직 이곳을 지나가는 수많은 자전거 여행객들만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재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이포나루는 남한강에서 가장 큰 규모의 나루터로 예전엔 '배나루' '베개 나루' '천양 나루'등의 명칭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 지역 주민들은 이 나루터를 이용해서 이천, 저 멀리 서울까지 갔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 붐볐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1991년 천서리로 바로 건너가는 이포대교가 건설되면서 이포나루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아무리 이포보 주변을 찾아봐도 그때 그 시절을 알려주는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그 아쉬움을 달래려고 이포보 바로 옆의 당남리섬을 찾아가 메밀꽃, 코스모스, 핑크 뮬리 등 가을을 알려주는 꽃들을 마음껏 감상해본다. 당남리섬은 여주시에서 남한강변의 경관을 아름답고 쾌적하게 만들기 위한 농업 경관단지로서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들의 향연을 즐길 수 있는 장소다.

그 맞은편에는 경기도에서 막국수로 가장 이름난 천서리 막국수 촌이 있다. 원래는 이포루를 지나는 뱃사공들의 쉼터였던 주막거리였지만 '강계 봉진 막국수'를 시작으로 '홍원막국수' 등 유명한 막국수 집이 속속 생기면서 그 명성이 여주를 넘어 전국으로 퍼져가게 되었다.    

여주의 대표 음식? 당연히 막국수죠
 
이포보와 마주보고 있는 천서리는 현재 막국수집이 몰려 있는 마을로 유명하다.
▲ 천서리 막국수 촌의 풍경 이포보와 마주보고 있는 천서리는 현재 막국수집이 몰려 있는 마을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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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는 당시 강원도에서 경기도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어서 메밀을 들어오기 수월했던 위치에 있었고, 막국수 집을 최초로 열었던 주인이 이북 출신이라 고향의 음식을 바탕으로 천서리의 명물을 만들게 되었다.

막국수의 베레이션이 워낙 넓기 때문에 고장마다 집마다 스타일이 천차만별이다. 요즘은 용인 고기리의 들기름 막국수 스타일이 널리 퍼져 어디서든 먹을 수 있고, 양주 용암리 막국수는 평양냉면 못지않게 메밀의 비율이 높다. 여기 천서리 강계 봉진 막국수의 특징은 비빔막국수가 엄청 매운맛을 자랑하고, 동치미 육수가 베이스라 뼛속까지 시원함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사람마다 입맛이 달라 감히 이곳이 맛집이라 함부로 평하지는 않겠지만 여주를 설명해주는 음식의 첫머리를 꼽자고 하면 당연 천서리 막국수라 할 수 있겠다. 어느덧 해는 서쪽으로 넘어가고 고운 자태의 보름달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여주의 아이덴티티를 찾아 남한강을 거슬러 여주시내로 이동해 보도록 하자.     

덧붙이는 글 | <우리가모르는경기도 : 경기별곡> 1편이 전국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서 절찬리 판매중입니다. 다음 브런치, 오마이뉴스에서 연재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 했고, 사진자료 등을 더욱 추가해서 한번에 보기 편해졌습니다. 경기도 여행은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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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현재 각종 여행 유명팟케스트와 한국관광공사 등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편> 저자. kbs 경인 <시사인사이드> 경인방송 <책과 사람들> 출연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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