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블을 노리던 울산 현대는 일주일 사이에 다시 떠올리기 싫은 악몽을 두 번이나 꿨다. 일주일 전에는 동해안 더비로 열린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4강 게임에서 라이벌 포항 스틸러스에게 승부차기로 무너졌고 이번에 열린 FA(축구협회)컵 4강에서는 2부리그 전남 드래곤즈에게 발목을 잡혔다. 호랑이굴에서 열린 홈 게임이었지만 거짓말처럼 울산 출신 두 선수(이종호-장순혁)에게 나란히 골을 내주며 2010명 홈팬들이 분루를 삼켰다.

전경준 감독이 이끌고 있는 K리그 2 전남 드래곤즈가 27일(수) 오후 7시 울산 문수경기장에서 벌어진 2021 FA컵 울산 현대(K리그 1)와의 준결승전을 2-1로 이기고 결승전에 올라 홈&어웨이 일정으로 대구 FC(K리그 1)를 만난다.

4년만에 보는 이종호의 호랑이 세리머니

8강 토너먼트가 열린 날이 8월 11일이었으니 꽤 오랜만에 FA컵 준결승전이 이어졌다. 당시에 전남 드래곤즈는 광양에서 포항 스틸러스의 발목을 잡아채며 1081일만에 강철 더비 승리의 감격을 누리고 올라왔다. 그 덕분에 호랑이굴(울산 문수)에서 강팀 울산 현대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게임 홈 팀 울산 현대가 최근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 오래지 않아 체감하기 시작했다. 울산이 이번 시즌 트레블(K리그 1, AFC 챔피언스리그, FA컵 세 대회 우승)까지 노렸지만 일주일 전부터 휘청거린 여파가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20일(수) 전주성에서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 연장 이후 승부차기(4-5) 패배 충격이 예상보다 컸고 나흘 뒤 이어진 K리그 1 정규라운드 성남 FC와의 어웨이 게임까지 1-2로 지는 바람에 K리그 1 꼭대기 순위까지 다득점 차이(1위 전북 58골, 2위 울산 54골)로 뒤집히고 말았다. 

울산 선수들에게 세 마리 토끼를 다 놓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한 듯 바로 이 게임도 흔들렸다. 22분에 전남 드래곤즈에게 먼저 골을 내준 것부터 큰 충격의 연속이었다. 김현욱이 왼발로 올린 오른쪽 코너킥 세트 피스 기회에서 주장 완장을 찬 골잡이 이종호가 기막힌 헤더 슛을 성공시킨 것이다.

2017~2018년에 울산 유니폼을 입고 37게임을 뛰며 8득점 3도움을 올렸던 이종호는 4년 전처럼 호랑이의 포효 세리머니를 펼치며 동료들과 기쁨을 나눴다. 2017년 이 대회 울산 유니폼을 입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당시에 이종호에게 붙은 별명이 바로 '이종호랑이'였으니 지금 울산의 호랑이굴이 더 크게 흔들리는 것은 숨길 수가 없었다.

전남 드래곤즈는 후반전 시작 후 4분도 안 되어 추가골을 터뜨리며 울산 선수들을 호랑이굴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추가골까지 울산 현대 출신 선수가 넣었다. 49분, 울산 선수들이 수비쪽에서 공을 잘못 돌리다가 내준 골이어서 그 충격은 더 컸다. 주장 완장을 차고 중원을 책임지던 수비형 미드필더 신형민이 위험 지역에서 공을 빼앗기며 방향을 바꾼 공이 그만 전남 드래곤즈 장순혁에게 굴러가는 바람에 비교적 쉬운 오른발 슛을 성공시킨 것이다. 

전남 드래곤즈의 멀티 플레이어 장순혁은 2016년에 울산 유니폼을 입고 프로 무대에 이름을 올렸지만 공식 게임에는 기회를 얻지 못했고 2군리그(R리그) 10게임 1득점 기록만 흐릿하게 남아있는 선수이기에 이 짜릿한 결승골은 더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울산 현대 출신 두 선수에게 두 골이나 얻어맞은 이 게임 홈 팀은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홍명보 감독은 하는 수 없이 58분에 두 장의 교체 카드를 한꺼번에 꺼내들었다. 가운데 미드필더 둘(김성준, 신형민)을 빼고 공격형 미드필더 이동경과 골잡이 오세훈을 들여보낸 것이다. 시작부터 뛰고 있던 골잡이 김지현과 새로 들어간 오세훈이 투 톱 역할을 맡아 곧바로 효과를 드러냈다. 66분에 오세훈의 날카로운 오른쪽 컷 백 크로스가 김지현의 오른발 슛으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전남 드래곤즈의 베테랑 골키퍼 박준혁은 슛 방향을 예측하고는 자기 왼쪽으로 몸을 내던져 김지현의 유효슛을 쳐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울산 현대는 또 다른 악재를 만났다. 70분에 이루어진 전남 드래곤즈의 역습을 막기 위해 빠르게 뛴 수비의 핵 불투이스가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들것에 실려나가야 했다. 72분에 김지현이 뛰어난 집중력을 발휘하며 오른발 밀어넣기를 성공시켰지만 야속하게도 부심의 오프 사이드 판정 깃발이 올라가기도 했다. 그로부터 2분 뒤에는 윤일록의 오른발 발리슛마저 크로스바를 때리고 넘어가는 불운에 시달렸다.

그나마 울산 현대는 78분에 윤일록이 오른쪽 측면 크로스로 페널티킥을 얻어내 바코가 따라붙는 1골을 성공시켰다. 이후 후반전 추가 시간 6분까지 포함하여 약 16분 가량 시간이 더 있었지만 울산 현대 2010명 홈팬들이 간절하게 바라는 동점골은 끝내 터지지 않았다. 후반전 추가 시간 5분만에 왼쪽 풀백 홍철의 날카로운 왼발 대각선 슛이 전남 드래곤즈의 골문을 위협했지만 박준혁 골키퍼가 침착하게 각도를 잡아 그 공을 막아냈다. 이로써 울산 현대가 노리던 우승 트로피가 일주일 사이에 두 개나 사라졌고 이제 K리그 1 우승 도전만 남았다.

결승에 오른 전남 드래곤즈는 1997년, 2006년, 2007년에 이어 통산 네 번째 우승 트로피를 노릴 수 있게 됐다. 전남 드래곤즈는 2021 K리그 2 리그 순위에서도 4위에 올라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따내면서 더 높은 곳을 노리고 있다. 오는 31일 오후 3시 광양 홈에서 안산 그리너스와 정규리그 마지막 게임을 펼친다.

반면에 분루를 삼킨 울산 현대(2위)는 10월 마지막 날 오후 4시 30분 수원 FC(4위)를 상대로 파이널 라운드 A그룹 첫 게임을 치르며, 다음 달 6일(토) 오후 7시 전주성에서 전북 현대(1위)와의 더비 매치를 통해 16년만에 K리그 1 우승 트로피를 노리게 된다.

2021 FA컵 준결승 결과(27일 오후 7시, 울산 문수)

울산 현대 1-2 전남 드래곤즈 [득점 : 바코(80분,PK) / 이종호(22분,도움-김현욱), 장순혁(49분)]

★ 강원 FC 0-1 대구 FC [득점 : 라마스(59분,도움-이근호)]

◇ 2021 FA컵 결승전 일정
1차전 11월 24일 광양 전용 ☆ 전남 드래곤즈 - 대구 FC
2차전 미정 DGB 대구은행파크 ☆ 대구 FC - 전남 드래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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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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