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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무한도전>은 결혼을 개그 소재로 자주 사용했다.
 MBC <무한도전>은 결혼을 개그 소재로 자주 사용했다.
ⓒ MBC<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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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지금도 수많은 '짤(사진)'을 남긴 인기 프로 <무한도전>에서 출연자들이 '결혼은 미친 짓인가?'를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당시 유일하게 결혼을 하지 않았던 노홍철은 운명적인 상대를 만나면 결혼을 할 수 있겠지만, 혼기에 쫓겨 의무적으로 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이 말에 대해 박명수는 "쫓겨서 하지 마"라며 결혼 전 인생을 즐기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당일의 토론은 압도적으로 결혼을 한 멤버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리고 모든 논의가 토요일 황금 시간대에 전 국민에게 방영되는 프로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가정을 꾸리고 2세를 가지는 것의 행복감에 대한 이야기로 끝이 났다. 그러나 당일의 프로그램의 웃음 포인트가 '잡혀 사는 남편'과 방송을 보고 있을 '아내의 눈치를 보는 남편'을 재현하는 데 있었다는 사실은 모두 다 알았을 것이다.
 
MBC <무한도전> 의 장면
 MBC <무한도전> 의 장면
ⓒ MBC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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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도 지금도 결혼은 예능 프로그램의 빠지지 않는 감초였다. 결혼이 워낙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일이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내 몰래 게임기를 사다 걸려 아내에게 혼난 이야기, 집안일을 안 해서 '바가지' 긁혔던 이야기, 말로는 결혼 생활이 너무 좋다고 하지만 화면에 다소 어두운 표정을 비추는 행위 등은 철없는 남편의 귀여운 투정으로 받아들여졌다.

결혼이 자유의 무덤인 것처럼 여겨지고 묘사되는 건 재미있는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아내가 겪는 어려운 지점들은 절대 예능이 될 수 없었다. 독박돌봄, 남편의 외도, 경력단절 등은 개그가 아닌 다큐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일명 '알파 남성'이 아닌 남성들을 묘사한 캐릭터는 10년 전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의 개막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이러한 캐릭터의 전성기는 지금까지 내려와서 기안84 등의 캐릭터가 활약하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이는 다만 예능에서만의 일은 아니었다. 꽤 많은 남성들이 '남초 커뮤니티'로 불리는 사이트에서 열심히 '마이너' 감성을 공유하고 생산했다.
 
그러나 '철없는' 남성들의 행위가 귀엽거나 현실적인 면모로 받아들여져서 사랑받는 것과 다르게 여성의 '철없는' 행위는 그렇게 되지 못했다. "남성은 커서도 애"라는 말은 있지만 "여성은 커서도 애"라는 말은 없다. "남성은 커서도 애"라는 말은 남성의 잘못과 무신경함을 정당화하는 간편한 말이 되었고, 여성으로 하여금 남성을 끊임없이 돌보아야 한다는 메시지로 정착했다. 그 속에서 "(나보다 '어른스러운') 아내 말은 모두 다 들어야 해"라는 메시지는 가정 내에 여성이 쥔 권력이 아주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숨기는 말로 기능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오래된 개그이자 현실은 '설거지론'이라는 말로 재탄생했다. '설거지론'은 여성을 그릇으로, 기혼 남성을 퐁퐁으로 비유한다. '설거지론'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여성은 결혼하기 전까지 음식물을 묻히며 '즐기다가' 결혼하게 된다. '즐길 것을 다 즐긴' 여성은 이후 결혼을 선택하게 되는데, 이때 그 여성과 결혼한 남성은 퐁퐁이 되어 더러워진 그릇(여성)을 닦는 역할을 맡는다.

나무위키에는 "연애 경험이 없거나 적은 사람이 성적으로 문란하게 놀았던 상대방과 결혼해서 같이 사는 것을 마치 음식은 남이 먹고 자신은 그저 다 먹고 더러워진 그릇을 설거지만 한다는 것"이라고 '설거지론'을 설명한다. 이 설명을 모두 들은 후 엉뚱한 질문이 떠올랐다.
 
'그래서 진짜 다들 집에서 설거지는 하고 사나?'
 
'설거지론', 남성들의 비혼 담론?

첫 탄생은 달랐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설거지론'을 운운하는 남성들의 많은 수는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동시에 그들 중 많은 수는 연애시장에서 거듭된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릇으로 상징되는 여성뿐만 아니라 그 여성과 결혼한 남성들을 공격하고 있다. 그래서 결혼한 남성들이 결혼하지 않은 (혹은 못한) 남성들을 '도태남'이라 부르며 욕하고, 결혼하지 않은 (혹은 못한) 남성들이 결혼한 남성들을 '퐁퐁남'이라 부르며 싸우는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
 
8년 전, '결혼은 자유의 무덤'이라는 주장은 2021년 '설거지론'이 되었다. 아내가 게임기를 못 사게 하는 것, 집안일을 시키는 것은 이제 '철없는' 남성의 우스꽝스러운 푸념이 아니라 다큐처럼 진지한 일처럼 이야기된다. 문란한 여성들이 '다 즐긴 후' 결혼을 하게 되기에 결혼한 남성도, 여성에게 선택받지 못한 남성도 피해자로 묘사된다. 안 하는 것인지 못 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래서 그들은 열심히 결혼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불편한 진실은 따로 있다. '설거지론'에 묘사되는 기혼 남성인 '퐁퐁남'도, '설거지론' 전파자들도 집에서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 아내가 전업주부임에도 집안일을 하지 않아 집에서 설거지를 해야 한다고 푸념하며 '설거지론'을 사용하는 남성들도 있지만, '설거지'가 집안일을 상징한다면 그 이야기는 크게 설득력이 없다.

통계가 그것을 증명한다. 맞벌이가 베이스가 된 사회에서도 가사노동에 쏟는 시간은 여성이 남성보다 3배 이상 높다. 2021년 6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여성은 아직까지 한 달간 205분 가사노동을 하지만 남성은 64분만 가사노동을 한다. 설거지도 안 하는 남성들이 말하는 '설거지론'은 그래서 '담론'이라 보기는 많이 조악하다.
 
'설거지론'이 남성들의 비혼 장려 '담론'이라면 더욱 문제가 많다. 20대 여성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비혼과 비출산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해오고 있었다. 독박육아와 경력단절, 데이트 폭력과 가정폭력이 이들이 말하는 비혼과 비출산과 함께 나오는 내용들이다. '설거지론'에서 남성들이 호소하는 문제가 애정 없이 결혼하여 섹스리스가 된 미래와 아내의 눈치를 봐야 하는 미래라면 20대 여성이 호소하는 바와 비교할 때 다소 궁색한 감이 있다.
 
뿐만 아니라 '설거지론'은 그 자체만으로도 여성혐오적이다. 문란하게 즐기다가 결혼한 여성의 존재를 그릇으로 비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그릇처럼 찬장에 넣어놓고 소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물건도 아니다. 문란한 여성이라는 말이 얼마나 여성을 비난하기 위해 사용되는지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설거지론'이 얼마나 여성혐오적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 남성은 많은 성경험이 훈장이 되지만 여성이 성행위를 하면 '문란한 여성'이 되는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남성은 정말 설거지를 하고 있을까?

그래서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남성은 과연 어떤 설거지를 하고 있는가? 관계는 쌍방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산물임에도 사랑 없는 결혼을 여성의 탓만 하는 것은 부당하다. '설거지론'은 관계가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케어와 사랑의 제공, 돌봄을 모두 여성이 노력해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표현한다. 케어와 돌봄은 모두 설거지처럼 귀찮은 일이지만 평등하게 나누어가져야 하는 일임에도 말이다.

여전히 관계의 '설거지'를 하지 않는 남성들은 그 탓을 여성에게 돌린다. 여성이 충분히 즐겨서 자신을 케어해주지 않는다고. 그래서 남성은 물리적으로도 집에서 설거지하지 않고, 감정적으로도 집에서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
 
'설거지론'은 부당한 사회 현실을 폭로하는 역할로 기능할 수 없다. 그래도 나름의 의미는 있다. '설거지론'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남성들의 투정을 많이 받아주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커도 애"라는 말이 모든 돌봄을 여성의 것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설거지론'은 물리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설거지하지 않는 남성을 도리어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설거지론'으로 보고 남성의 투정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 대신 더 이상 남성의 투정을 받아주지 않아야 한다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설거지는 혼자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태그:#설거지론, #페미니즘, #여성혐오, #퐁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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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정치에 관한 책 <판을 까는 여자들>과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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