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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자들은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
 책 <여자들은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
ⓒ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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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 원 세대'를 필두로 세대 담론이 회자되었다. '88만 원 세대'론의 경우, 임금으로 세대를 나눌 수 있는지도 회의스럽지만, 성별 격차는 아예 고려되지도 않았다. 청년 세대의 주거난이 심각하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하지만 여기서의 '청년'에 여성 청년의 자리는 지정되었을까? 유행처럼 이름을 바꾸어가며 청년 세대를 거론하지만, 이 담론에서 청년이란 대체 누구일까? 경남대 미디어 영상학과 장민지 교수는 단지 계급만을 가시화하는 청년 세대 담론이 젠더를 누락시키고 있음을 문제시하면서, 책 <여자들은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를 시작한다.

저자 장민지는 대학 진학 때문에 서울로 이주한 여성 청년이었다. 진학과 취업 등으로 20년 정도 부모님 집을 떠나 살면서 이주민으로서의 감각을 키우게 되었다. 이주한 낯선 곳의 이질감이 차차 친숙함으로 변해가는 자신의 '장소화'("인간이 낯선 공간에서 일상적이거나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안정감, 친밀감, 소속감 등을 만들어가는 장소 생산 과정") 경험을 통해 여성 청년의 이주 담론을 탐색하게 되었다.

그는 고향 집을 떠나 독립 주거 경험이 있는 20~30대 여성 12명을 인터뷰하고, 이들의 경험을 통해 여성 청년에게 집이란 어떤 곳인지, 집이 어떻게 친밀한 장소가 되는지, 그리고 이들의 이주와 정주에 젠더와 미디어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탐구한다.

여성 청년, 이주민이 되다

지역에서 나고 자란 여성 청년들에게 미디어를 통해 접한 서울은 이주에 대한 열망을 키우게 했다. 변변한 콘서트나 전시 등을 접할 수 없는 지역의 낮은 문화 인프라는 핫한 영 문화에서 배제되었다는 소외감을 키웠다.

공장 근로자가 되기 위해 아버지 집을 떠난 앞선 세대의 여성 청년과 달리, 치열한 입시전을 치르고 입성하는 딸들에게 아버지는 자립과 성공이라는 미션을 부여했다. 고학력을 통한 자기계발 신화는 가부장의 그늘을 벗어날 유효한 도구로 기능하며 서울로의 이주를 정당화해주었고, 이로써 이주 젠더 격차가 낮아지는 효과를 낳았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집을 떠난 딸들의 이주 감정은 어땠을까? 낯선 곳에 자신의 뿌리를 이식해야 하는 탐색 시기엔 해방감만큼이나 외로움, 긴장감, 두려움이 공존했다. 이주 초기엔 고향 집을 자주 방문하며 이주지에서의 외로움을 회복시키려 하지만, 이 시기를 거치고 나면, 자신만의 공간이 열어주는 독자성과 친밀감으로 이주지의 집을 자신의 집(방)으로 정체하게 된다. 이렇게 '장소화'된 자신의 집을 인터뷰어는 "이제는 이 집이 더 우리 집"같다고 여기거나, "나는 거기(고향집)를 '엄마 집'이라 얘기"하게 된다.

"가부장적 질서의 감시를 탈주해 자신의 공간을 소유하거나 부여받은" 이주 여성 청년은 고향 집의 억압적 여성관을 탈각하며, 행위적, 공간적, 시간적 자율성을 획득해 나갔다. 딸에게 부과되었던 가사노동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이 되었고, 간섭이나 감시의 눈초리가 사라지자 취향을 억압 없이 즐길 수 있었고, 좀 더 나아가 연인과의 성적인 공간이라는 특별한 장소로 구성할 수 있었다.

이주 여성 청년들이 집을 '장소화'하는 기반에는 소비가 공고히 떠받치고 있는데, 다른 어떤 주체성보다 소비 주체로서의 면모가 가장 먼저 발현되었다. 부모에게 생활비를 보조받는 이주지에서의 생활이라도 소비 생활은 스스로 규모 있게 꾸려가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행위 주체성"을 키워갈 수 있었다. 그러나 견제 없는 소비주체성은 때론 일탈적으로, 때론 심리적 위안을 얻기 위한 도구로 왜곡되기도 했다.

집은 해방이었고 동시에 억압이었다

산업화 시대 공장 근로자가 되어 아버지의 집을 떠난 여성 청년은 '버린 몸'이라는 혐오의 시선을 감당해야 했다. 이들의 이주는 가난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였지만, 집을 떠난 이들의 몸은 종종 성적으로 타락한 존재로 대상화되고 통제되었다. 그렇다면 어언 반세기가 넘어서고 있는 지금, 이주 여성 청년은 '집 떠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감시하던 집요한 눈초리에서 벗어났을까?

결혼 정보업체가 자취나 유학의 경험이 있는 여성 회원의 평가 점수를 감점하기도 한다는 사실은 오래전 집 떠난 여성에게 매달았던 주홍 글씨가 아직 떼어지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 취업 면접에서 혼자 사는 여성은 빈번히 쉬운 여자로 취급되는 성차별과 성희롱을 겪기도 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 이주 여성은 혼자 사는 사실을 숨기기도 한다. 남성 중심적 젠더 규범이 혼자 사는 여성의 몸을 끊임없이 "남성들의 성적 대상이자 임시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상상된 몸"으로 사유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혼자 사는 여성을 노린 성범죄의 급증은 이주 여성의 삶을 '잠재적 피해자'로 축소시킨다. 이들은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혼자 사는 여성임이 드러나지 않도록 고안된 생활 습관을 철저히 몸에 익힌다. 성폭력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지 못하는 공권력의 무능과 부재는 혼자 사는 여성이 "자신의 몸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젠더 규범을 내면화하게 하고, 결국 '내면의 경찰'로 얼굴을 바꾼 가부장이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집 떠난 여성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역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불완전한 주거환경이 만드는 자기 감시와 통제는 이주 여성들의 우울감을 증폭시키며 정신 건강을 위협하기도 한다. 벗어나기 힘든 열악한 주거 환경, 점차 고립되어가는 사회관계와 경제적 빈곤은 '청년 고독사'라는 치명적 상상을 불러들인다. 이는 2011년 병과 가난으로 홀로 죽어간 한 젊은 여성 작가의 충격적인 고독사가 혼자 사는 여성 청년들에게 심리적 내상을 입힌 탓이다.

그렇다면 자기 파괴적 통제와 관리라는 과도한 안전 잠금을 해제하기 위해 이주 여성 청년은 어떤 수행을 해나갈까? 우선 '유사가족 만들기'가 있는데, 타인과의 친밀감을 늘려가며 낯선 곳에 홀로 표류하는 감정을 상당 부분 감소시킬 수 있다. 자신의 집을 정서적 유대의 장으로 열어 놓고 친구나 연인과 공유함으로써 집이 안정된 장소임을 확인해 나가는 과정이다. 집의 안정감은 비단 인간끼리만 가능한 것은 아니어서,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경험으로도 상당한 심리적 지지를 획득한다.

다른 수행으로는, '익숙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있다. 이른바 '단골가게 만들기'인데, 낯선 곳을 익숙한 공간으로 만듦으로써 심리적 지지 기반을 다진다. 단골 목욕탕을 만들고 그곳에서 몸을 이완하며 편안함을 느끼거나, 단골 가게(카페, 식당, 주점 등)를 만들어 그곳에서 가지 치는 인간 관계망으로 고립감을 상쇄하고 소속감과 유대감을 키운다. 이는 "집 이외의 공간에서 발생되는 장소감이 주체의 정체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자아의식"을 형성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이주 여성 청년이 수행하는 가장 강력한 안정감 찾기로는 '미디어 수행을 통한 장소 만들기'다. 손안의 휴대폰으로 언제든 타인과의 시공간을 공유하는 '현존적 참여'가 가능해지자, 미디어로 연결된 가상공간이 가장 쉽게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미디어적 연대감으로 형성되는 '네트워크 사회성'이야말로 살아있고 혼자가 아니라는 가장 생생한 연결감을 준다. 이들에게 일상을 공유하는 미디어란 "친밀한 이미지 축적으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사회적 통화"가 된다.

미디어 행위의 주체가 되어 나누는 미디어적 일상은 미디어에 장소감을 부여함으로써 "미디어가 장소가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감각을 태동시킨다. 미디어 수행은 유사 만남과 유사 소통으로 기능하며, "감정적 연대를 바탕으로 한 가상적인 인간관계를 만들어낸다."

광맥을 찾아내듯 형성되는 연결망은 상호 소속감이나 우정을 형성하며 집이라는 장소가 제공하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경험하게 한다. 저자가 "장소 개념은 경험이자 현상이며 동시에 가상으로 확장될 수 있는 '범위'"임을 강조하며, 미디어를 "새로운 주거 방식의 잠재력"으로 간주하는 이유다.

미디어의 주거로의 기능은 비단 이주 여성 청년에게만 전유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메타버스'라는 가상공간은 이곳에서 어떤 수행도 가능하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으며, 공간을 대체하는 워크숍, 환영회, 공연 등으로 현실에서 이미 적용되고 있다. '메타버스'적 캐릭터와 세계관이 향후 어떻게 교차되며 인간과 사회에 영향을 미칠지 예단할 수 없지만, 사회 구성원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이 가상 세상은 이미 도착해 있다.

미디어 공간이나 가상공간이 장소화되고 이로써 안정감이라는 심리적 장소감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능이 여성 청년들의 현존적 몸이 거해야 하는 집이라는 공간을 현실적으로 안전한 장소가 되도록 도와 긍정적인 공간의식을 형성할지는 담보하기 어렵다.

이들에 대한 세심한 관심과 적실한 지원이라는 정치적 해법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의식주나 유희 등을 미디어나 가상공간에서 수행할 수는 있지만, 실존적 몸이 먹고 자고 씻고 쉬는 행위는 실재하는 공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한 얼마 전 독립 주거를 시작한 조카가 자주 떠올랐다. 적은 종잣돈으로 방이 아니라 집을 구하느라 꽤 발품을 팔았고, 이 과정은 책의 이주 여성 청년과 다르지 않았다. 여성 청년이 맘 편히 살 수 있는 공간을 찾기란 정말 어려웠다.

조카의 이삿짐을 같이 정리해 주다, 이 아이가 얼마나 자주 옮겨 다니며 영혼이 털릴까, 지레 안쓰러웠다. 두루마리 휴지와 세제를 잔뜩 안겨주고는 야무지게 살라고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제발 이 첫 집이 스위트홈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게시합니다.


여자들은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 - 이주한 1인가구 여성청년들이 살아가는 세계

장민지 (지은이), 서해문집(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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