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 6개월 전에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홀로 지내는 이웃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손에 쓰레기 집게가 들려있습니다. 아마 노인일자리사업에 다녀오시는 모양입니다.
 
할머니랑 나는 큰 나무 그늘에 앉았습니다.
 
"할머니, 독감 예방접종은 하셨어요?"
"그럼. 코로나도 두 번 맞고, 그것도 엊그제 맞았지!"
"어디 편찮으신 덴 없죠?"
"나이 먹을 만큼 먹어서 여기저기가 시원찮아!"
"얼굴은 좋아 보이시는데요, 뮈."
"그래 보여? 다행이구먼!"

 
할머니 말동무가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옆에 앉아서 말을 거는 내가 좋은 표정입니다.
 
영감님께서 평생 농사만 짓다 세상 뜨신 뒤로 할머니는 그 힘든 농사를 접었습니다. 집에 딸린 남새밭만 가꿉니다. 올해 여든을 넘기셨는데 동네에선 건강하신 편에 속합입니다. 정부에서 주는 기초연금을 타고 노인일자리사업에 나가 용돈 벌이도 합니다. 도회지에 나간 자식들도 내로라하고 사니 큰 걱정 없이 지냅니다.
 
할머니께서 은근슬쩍 자식 자랑을 합니다.
 
"우리 애들 말이야, 한 달에 꼬박꼬박 내게 용돈을 부쳐주네. 지그들 살기도 힘들 텐데, 뭔 용돈이냐고 하면 노인은 '돈심'으로 산다며 통장에 꼭꼭 넣어줘. 글구 보일러 기름도 넉넉히 채워줬어. 올겨울도 뜨뜻하게 지낼 것 같어. 막내 딸애는 자기랑 같이 살자고 자꾸 그래!"
 
내가 할머니 말끝에 물었습니다.
 
"그럼 딸내미랑 같이 지내시지?"
"말이야 고맙지! 그것도 아들 두고 딸내미 집에 가는 것도 남세스러워! 우리 사위도 착하고 내게 잘하기는 히지만."
"글면 아들집에 가면 되잖아요!"
"그야 그렇지. 근데, 우리 아들 며느리가 손주를 봤어. 아기 본다고 옴짝달싹을 못해! 내 가면 공연히 짐만 될 거 아냐!"

 
할아버지와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데, 이 집을 남한테 넘기고 낯선 도회지로 가는 게 마땅찮은 것 같아요. 작은 텃밭 정도는 일굴 힘이 되고, 또 거둬들인 것을 자식들과 나누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합니다.
 
"이젠 집에서 쉬시지 집게는 왜 드셔?"
"일자리 고거? 거기 가면 사람들 만나서 좋아! 아무것도 안 하고 방안퉁수가 되면 사람 꼴새가 말이 아니지."
"돈도 좀 주죠?"
"그럼. 척척 월급으로 주잖아!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노인들한텐 그 돈, 큰돈이야!"

 
이어서 마음에 있는 말씀 하나 꺼내십니다.
 
"그런데, 일을 시키려면 똑바로 시켰으면 좋겠어! 돈 주고 시키면서 보람도 느끼도록 말이야. 우리 동네는 관광지라 해서 쓰레기 줍는 게 전부지만, 난 분리수거 같은 거 잘하도록 했으면 좋겠어. 아무렇게나 버린 재활용품을 우리가 제대로 쓰게끔 손보면 보람 있잖아!"
 
일자리사업에 나가서도 할머니는 꾀부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당신 천성이 원래 그래 먹었기 때문에 대충대충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화제를 슬쩍 바꿨습니다.
 
"할아버지 보고 싶지 않으세요?"
"뭔 보고 싶어! 그래도 계실 때만 못해. 허전하고!"
"왜요?"
"왜긴 왜야! 혼자 사는 게 다 그렇지! 다 알면서!"

 
우리 영감님이 불쌍하게 세상 떴다면서 말씀이 흐려집니다. 몹쓸 암에 걸려 제때 치료를 못 받고 가신 게 맘에 걸리신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사람이 얼마나 아프면 죽을까?" 하면서 혀를 찹니다.
 
소매 끝으로 눈가를 훔치면서 말을 잇습니다.
 
"우리 영감님 마지막까지 정신을 잃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해. 내 손 붙잡고 미안하다고 하대! 먼저 간다면서!"
 
할머니께 앞으로 뭐가 걱정이냐고 물었습니다.
 
"내 걱정 없어! 근데, 죽는 날까지 정신 줄 놓지 않았으면 좋겠어. 치맨가 뭔가 있잖아? 그것만 나한테는 제발 오지 않았으면..."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씀드렸습니다.
 
"보행기에 의지하여 걷는 분들 많은데, 할머닌 그런 거 필요 없잖아요. 얼마나 좋아요. 지금부턴 하루에 동네 한 바퀴 걸으세요. 제가 걸어보니까 한 2000보 되더라구요. 그 정도 걸으시면 밥맛도 좋아지고 치매 같은 거 오다가도 도망갈 거예요!"
 
할머니는 내 손을 꼭 붙잡으십니다. 말동무해줘서 고맙다고!
 
처음 뵐 때보다 할머니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핍니다.
 
"이따 우리 집에 와. 올핸 대추나무에 사랑 걸리듯 달려 따 놓은 게 많아!"
 
가을 들어 주렁주렁 달린 대추. 할머니께서는 '대추나무에 사랑 걸렸다!' 라고 하십니다.
 가을 들어 주렁주렁 달린 대추. 할머니께서는 "대추나무에 사랑 걸렸다!" 라고 하십니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