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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이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는 중이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어귀 즈음에서 고성들이 오가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장면을 보아도 이제 놀라지는 않는다. 흔히 벌어지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아기를 키우면서 아파트를 피해 주택에 살기로 선택한 이후에, 솔직히 이런 장면을 자주 마주했다. 보아하니 또 고양이로 인한 다툼이었다. 그만큼 주택가에는 고양이도 많고, 이 아이들을 돌보는 캣맘도 많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이른바 캣맘이시다. 집에 고양이 밥을 항상 구비하고, 아픈 고양이는 더욱 신경 써서 챙기신다. 참치 캔까지 사서 주시는 걸 몇 번이나 보았을 정도로 정성이 대단하신 분이다.

문제는 아주머니의 이런 행동을 주위 이웃들이 반기기만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고양이 때문에 언성이 높아졌다
 
캣맘 아주머니의 사료통이 보인다
▲ 사료 캣맘 아주머니의 사료통이 보인다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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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가끔 한 번씩 이웃 간 충돌이 일어난다. 특히 아기가 있거나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들께서 더 많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비단 우리 가정도 예외는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고양이 덕분에 이런저런 스트레스와 피해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아줌마, 고양이 밥 주지 마시라고 했잖아요. 옆집인 우리 집까지 고양이들이 모이잖아요. 여기저기 똥 싸놔서 유모차 바퀴에 묻고 신발에 밟히고 산책할 때 갑자기 고양이가 나타나서 아기 울고... 어휴 그것만 있는 줄 아세요? 쓰레기봉투 물어뜯고 몰려다니면서 싸워서 시끄럽게 해서 애기 깨고... 다 아줌마가 밥 주시니까 고양이들이 모여서 그런 거잖아요."

"내가 밥을 주지 않으면 이 고양이들은 누가 챙겨요. 그래도 불쌍한 아이들이잖아요."


한동안 말싸움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결국 언제나 그렇듯이 봉합이 되지 않은 채로 이웃의 마음만 갈라놓고 의미 없이 끝나 버렸다. 싸움의 주인공이신 분들의 얼굴을 안다. 마주치면 간단하게 목 인사를 건넬 정도다. 특히 고양이 문제로 다툼을 벌인 아기 엄마와는 조금 각별한 사이였다. 

그런 거 있지 않은가. '힘든 시기'에 아기를 기르고 있으니 꼭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응원하는 감정들이 오고 가는 사이. 비슷한 시기에 아기를 낳고 기르고 있는 입장에서 말이다. 호의적인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가끔 육아에 관한 덕담과 격려를 전하는 사이였다. 이 육아맘은 이 동네에 몇 안 되는 아기 엄마 중에 한 분이셨다. 돌이 채 되지 않은 아기와 세 살이 되는 어린이, 두 아기를 키우는 엄마셨다. 

우리 집의 경우, 아기 한 명을 돌보면서도 아기 엄마가 고양이로 인해 힘들어하는 것을 보았는데 둘을 키우는 엄마는 오죽할까. 게다가 다투시던 아기 엄마는 돌 전의 아기를 업은 상태였다. 오죽 화가 나셨으면 이럴까? 이해가 되면서도 동시에 답답하기도 했다. 왜 길고양이는, 그리고 캣맘은, 육아맘들의 미움의 대상이 되었을까?

다툼을 바라보며 누구 한쪽의 말과 입장이 맞다고만 할 수가 없었다. 아기를 기르는 입장에서 고양이로 인해 정말 많은 피해를 본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캣맘님의 입장과 말씀도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헤아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집에 자주 놀러 오는 고양이다
▲ 고양이 집에 자주 놀러 오는 고양이다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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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로 인해 처음 피해를 본 것은 울음소리 때문이었다. 고양이가 교미 상대를 부르는 소리인 콜링(calling)은 특히 아기의 울음소리와 정말 비슷했다. 지금이야 구별이 가능하지만 아기가 먹고 잠자고 깨기를 반복하던 신생아 때는 우리도 서툴고 서툰 초보 엄마 아빠였다. 안 그래도 교미 시즌인 봄을 맞아 미친 듯이 울어대는 고양이 소리와 아기 소리를 한 번씩 착각할 때가 있었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나면 아기 소리라고 착각해 아기방으로 달려가고는 했다.

위의 아기 엄마 말씀처럼 다른 피해의 경험도 있었다. 아기 기저귀가 들어 있던 비닐봉지를 고양이가 뜯어버려서 동네를 헤집고 다니며 쓰레기를 주운 적도 많다. 고양이 똥을 밟거나 배설물이 아기의 유모차 바퀴에 묻어 피해를 본 적 또한 있다. 유모차로 아기와 산책하다가 싸우는 고양이들을 만나거나, 갑자기 고양이가 튀어나와 아기가 놀라 울어버린 적도 당연히 있었다.

고양이가 밖에 놓아둔 유모차에 앉아서 햇볕을 쬐며 털을 묻혀 놓거나 오줌을 싸서 유모차를 세탁한 적도 있다. 어느 날은 고가의 유모차를 발톱으로 뜯어버려 눈물을 머금고 유모차를 절단하고 새로 사야 했던 적도 있다. 고양이들이 아기 방 앞에서 몰려다니며 싸우고 큰소리를 내서 아기가 잠을 깬 적도 물론 있었다. 아기의 잠을 깨우거나 유모차를 박살을 내어놓았을 때, 아기를 달래고 아기의 유모차를 분해해서 버리면서 솔직히 화가 끝까지 차올랐던 것을 고백한다.

이 분노가 수그러들게 되었던 데에는 두 가지 사건이 있다. 아픈 고양이를 보았던 사건과, 집 앞에 고양이가 죽어 있던 일이다. 아픈 고양이는 검은 털을 가지고 있는 고양이였는데, 볼 때마다 입에 침을 흘리고 있었고 한쪽 눈을 다쳐 있는 상태였다.

이 아이를 캣맘 아주머니가 어김없이 돌보셨다. 매일 밥을 주고 영양을 줄 수 있는 식품들을 제공했다. 이 아주머니의 지극정성으로 고양이가 치료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고양이도 보호받아야 할 생명이구나' 새삼스레 자각하는 시기를 거쳤던 것 같다.
 
많이 호전되었지만 아픈 고양이
▲ 아픈 고양이  많이 호전되었지만 아픈 고양이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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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느 날엔 한 고양이가 집 앞 전봇대에서 죽어 있었다. 아내와 상의를 했다. 처리 방법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슬픔을 느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충격적인 내용이 있었다. 고양이 사체를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버려도 된다는 것이었다. 이미 숨을 거뒀지만, 그래도 하나의 생명인데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면 된다'는 현실이 너무 슬펐다.

결국 환경신문고에 전화를 했고, 구청에서 나오셔서 처리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마음이 조금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길고양이들의 마지막을 보면서 가엾고 불쌍하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 것 같다. 

오늘도 출근길에 동네 고양이들을 관리하시는 캣맘님의 정성스러운 손길을 보았다. 아침부터 고양이들의 밥을 주시고 관리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경험해 본 바, 아기를 키우는 입장에서 고양이는 미운 존재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제 아이 엄마도 고양이들과의 슬기롭게 공생하기 위한 방법들을 찾아가고 있다. 거창한 수준은 아니다. 예전에 고양이에게 당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게 방지책을 마련하는 수준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길고양이들, 그리고 캣맘들에게로 향하는 비난과 미움도 조금은 걷어 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오늘 퇴근길에는 따뜻한 커피 두 잔을 테이크 아웃해야겠다. 마음이 다친 캣맘님과 아기 엄마에게 선물해야겠다. 그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추위를 녹이듯 상한 마음도 녹여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결국, 사람의 문제  
 
고양이랑 친숙해지라고 아기 엄마가 아기에게 선물한 바람개비
▲ 고양이 바람개비 고양이랑 친숙해지라고 아기 엄마가 아기에게 선물한 바람개비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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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9월 자료에 따르면, 서울에만 11만 6000마리 이상의 길고양이들이 있다고 한다. TNR(Trap-Neuter-Return; 포획-중성화-방사)의 과정으로 관리를 한다고는 하지만 겪어본 바로는 모든 도시의 길고양이들을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내가 사는 부산 지역의 경우, 주위에 고양이들이 많아서 쉽게 확인이 가능했다. 중성화 중인 고양이는 귀를 조금 잘라서 표식을 남긴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본 수십 마리의 동네 고양이들 중 귀가 잘린 고양이는 한 마리, 단 한 차례 밖에 보지 못했다.

퇴근하는 길, 바로 이 글을 쓰기 전에도 수많은 고양이를 보았다. 없앨 것이 아니라면 슬기롭게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고양이와 관련한 문제를 더는 묻어 두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효율적인 방안이나 위생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아이디어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고양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많아진다면 큰 일이고 줄어들 수 있다면 다행이다. 고양이들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자신들 생활에 방해가 되는 귀찮고 불편한 존재일 것이다. 고양이들이 스스로 상생의 방법을 제안해 올 수는 없다. 결국 사람들의 몫인 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추후 기자의 브런치에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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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자영업자님들을 컨설팅하며 요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현재는 콘텐츠 디자이너이기도 합니다. TV에 출연할 정도로 특별한 아기 필립이를 '밀레니얼 라테 파파'를 지향하며 '감성적인 얼리어답터 엄마'와 하필 이 미칠 코로나 시대에 키우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와 관련한 분야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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