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푸른 호수> 스틸컷

영화 <푸른 호수> 스틸컷 ⓒ 유니버설 픽쳐스

 
미국으로 입양됐다 추방 당한 한인 2세 이야기를 그리며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영화 <푸른 호수> 관련 '사례 도용'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해당 이야기의 모티브로 추정되는 당사자가 직접 나서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한 제작사 측 입장을 재반박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2일과 23일에 걸쳐 한국계 입양인 아담 크랩서(한국 이름 신상혁)씨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담 크랩서는 지난 9월 20일 SNS를 통해 "할리우드 야망을 위해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이용하지 말라"며 <푸른 호수> 제작사인 포커스 픽처스와 저스틴 전 감독을 비판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한국계 할리우드 영화 '푸른 호수' 사례 도용 논란... 보이콧 움직임도)

한국계 미국인이자 배우 겸 감독으로 활동 중인 저스틴 전 감독의 신작인 <푸른 호수>는 제74회 칸 영화제 및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초청 후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영화 속 안토니오 사례 겪은 유일한 한국인"
 
아담 크랩서는 미국에서 2016년 추방된 후 한국에 머물다가 현재는 멕시코로 터전을 옮긴 상태다. <푸른 호수>의 중심 줄거리가 한국계 입양인이 백인과 결혼 후 30년 넘게 미국에서 살다가 단속국에 걸려 미성년 딸과 임신한 아내를 두고 한국으로 추방 당하는 건데, 아담 크랩서의 삶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아담 크랩서는 "영화 속 주인공인 안토니오와 같은 요소를 가진 한국 입양인은 나뿐"이라면서 "이미 미국 언론에서도 영화와 제 삶의 유사성을 보도한 바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 NBC 등 유력 언론은 몇 차례 <푸른 호수>와 아담 크랩서 관련 소식을 보도했다.

특히 미국 뉴욕에 기반을 두고 세계 25개국 언어로 서비스되는 < Hyperallergic >은 '실제 아담 크랩서처럼 안토니오는 3살에 입양돼 양부모에게 학대를 당했고, 임신한 아내가 있으며 그 아내의 어린 딸의 계부이기도 하다. 그는 오토바이 등 절도죄로 추방되는 인물'이라며 '안토니오는 베트남 여성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아담 크랩서의 전 부인이 베트남인이었다'고 보도했다. 해당 기사는 실제 인물의 동의 없이 영화를 만드는 이들을 비판하는 취지의 내용이다. (관련 기사 : 'Why Do People Keep Finding Their Lives Onscreen Without Their Consent?')
 
 영화 <푸른 호수>

영화 <푸른 호수> ⓒ 유니버설 픽쳐스

 
저스틴 전 감독이 아담 크랩서를 접촉한 건 약 4년 전이다. 지난 9월 20일 SNS 입장문에서 아담 크랩서는 "접촉 후 연락이 없다가, 2020년 한 프로듀서가 양부모와 내 사진을 요청했다"며 영화화 과정에서 제작사 측의 무성의한 태도를 비판하며 자신의 이야기 활용에 동의한 바가 전혀 없음을 밝혔다.

아담 크랩서는 기자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저스틴 전 감독과 영화 프로듀서가 제게 연락을 한 당사자들이다. 감독은 그저 여러 한국계 미국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영화 속 인물과 같은 상황을 겪은 한국인 입양인은 나밖에 없다"며 "미국에서 추방될 때 미성년 자녀와 분리된 유일한 한국 입양인이고 스스로 내 사건과 싸운 유일한 사람이라 숨길 게 없다"고 강조했다. 

"감독과 얘기해 보려 비용도 대준다고 했는데..."

현재 미국에선 입양인 권익 단체인 '정의를 위한 입양인(Adoptees for Justice)' 측을 중심으로 영화 불매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제작사 측의 무대응을 비판하며 지금이라도 감독과 제작사가 정확한 입장을 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관련 기사 : 한인 입양인 "우리 이야기 판매용 아냐, 저스틴 전 사과해야")

해외 언론을 비롯 국내에서도 <푸른 호수> 사례 도용 논란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일자, 영화 제작사인 포커스 픽쳐스는 "특정인의 이야기가 아닌 여러 명의 이야기를 섞은 결과물"이라며 "'입양인 옹호(Adoptee Advocacy)' 단체와 영화 제작 과정에서 상의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입양인 옹호'는 <푸른 호수> 속 안토니오의 사연을 "일반적인 입양인 출신의 이야기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

하지만 아담 크랩서는 포커스 픽쳐스 측과 저스틴 전 감독의 이런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입양인 옹호'는 공식 ​​조직이 아니다. 공식 등록된 비영리단체가 아니며 대표인 크리스토퍼 리슨(Kristopher Larsen)는 '정의를 위한 입양인'의 전 이사이긴 하지만 그는 한국인 입양인도 아니고 미국에서 추방된 적도 없는 사람이다. '정의를 위한 입양인'은 입양인의 권리를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온 단체이지만 새롭게 등장한 단체인 '입양인 옹호'의 역사는 거의 제로(0)에 가깝다.

크리스토퍼 리슨은 물론이고 '입양인 옹호' 입장문에 서명한 입양인들은 나와 같은 삶의 경험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저스틴 전 감독과 그 단체는 영화 제작에 합의했다는 그 어떤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 단체 서명자들이 실제로 입양된 사람들인지, 그리고 추방된 사람들인지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 아주 소수의 언론만 그 사실을 체크해서 보도하고 있다. 언론사는 사실 확인을 하는 게 기본인 직업인데 왜 다들 확인도 안 하는지 모르겠다."


이어 아담 크랩서는 "감독과 제작사가 실제 인물의 동의 없이 영화화를 진행했다는 것과 미국 내 입양인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공부를 하지 않고, 현실적인 행동을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 않는다는 게 이번 일의 핵심"이라 강조했다.

"2020년 3월 <푸른 호수> 프로듀서가 내 사진 초상권 사용을 요청했을 때 단호하게 거절하며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민권 없는 입양인 문제. 미국 국회에서 계류 중인 법안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한 행동 촉구가 필요한데 저스틴 전 감독이 가장 중요한 그 약속을 어긴 것 같다'고. 게다가 포커스 픽처스는 '정의를 위한 입양인'을 영화 마케팅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단체로 표현하기까지 했다.

사실 개봉 과정에서 난 저스틴 전 감독과 토론하기 위해 그에게 멕시코로 와달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비용을 내가 댈 테니까 와달라고 했는데 제작사나 감독은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이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여러 언론 매체가 그들에게 입장을 요청했는데 거기에 대해서도 묵묵부답인 것 같다. 현재까지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입양인 사례를 조사했고, 몇 명이나 만났는지에 대해 수시로 말을 바꾸고 있다."


계속되는 '사례 도용' 논란 관련, 기자는 지난 10월 10일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진행된 저스틴 전 감독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해당 질문을 주최 측에 전달했으나 끝내 감독의 직접적인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아담 크랩서 인터뷰와 관련해서도 여러 차례 포커스 픽쳐스와 저스틴 전 감독 측의 반론을 요구했으나 이들은 26일 대행사를 통해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 이후 추가 인터뷰나 답변 계획은 없다"는 입장만을 전했다.
 
 9일 오후 부산 해운대 영화의 전당에서 영화 <푸른 호수>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진 저스틴 전 감독.

9일 오후 부산 해운대 영화의 전당에서 영화 <푸른 호수>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진 저스틴 전 감독. ⓒ 이선필

푸른 호수 저스틴 전 오스카 아담 크랩서 ADOPTEES FOR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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