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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작가의 소설집 <반반 무 많이>라는 책 제목을 보면서 치킨을 떠올린 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책을 펼치는 순간 고구마, 유엔탕, 떡라면, 떡볶이 등의 음식이 보였다. 1950년대 한국전쟁 때 피란 길에 극심한 허기를 달래주는 고구마 이야기를 시작으로 1960년대 의정부 부대찌개와 관련된 이야기가 이어진다. 

음식과 떠나는 현대사 여행은 감칠맛만 나진 않는다. 피란길에서 보여주는 장면은 의식주에 대한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해준다. 갈 곳 없는 여성이 조카를 데리고 무작정 찾아간 의정부에서의 생활 역시 녹록지 않다. 식당에서 일하기 싫던 여성은 폼나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우연히 지인을 만나 미군에서 흘러나온 물품을 판매하며 살아가는데, 내부고발로 인하여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된다. 전후 생필품이 부족하던 시절에 대한 묘사가 풍요의 시대에 살아가는 시점에서는 낯설다. 

남은 음식을 이용해서 끓여 먹던 유엔탕은 부대찌개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시대상을 들여다보는 것 이외에도 배고픔에 관한 생각을 해볼 수 있다. 비만이 걱정인 시대에 배가 고파서 굶던 시대를 상상해보며 하루 정도 단식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어머! 이게 다 뭐야?" 냄비 안에는 햄과 소시지, 김치와 파가 고춧가루에 범벅인 채로 김을 무럭무럭 내고 있었어. 김과 함께 내 콧속으로 찔러 들어오는 마력의 냄새가 굶주린 창자를 뒤집어 놓았지. 유엔탕은 첫눈에 봤을 때는 김치찌개 같기도 하고 육개장 같기도 했지만 한 숟가락 떠먹어 보니 완전 다른 맛이었지.
- '준코 고모와 유엔탕' 중에서

세 번째 이야기는 1970년대의 청계천 의류 공장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청년 전태일이 생각나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가사가 생각나는 이야기다. 희망을 찾아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 먹고살기 위해 고된 노동을 견뎌야 했던 사람들의 피로를 달래주던 라면은 눈물겹다.

지금은 사람의 일을 기계가 대체하고 있다. 과거사를 들여다보는 것은 유쾌하지만은 않다. 눈부시게 발전한 경제와 현대화의 이면엔 불편한 진실도 있기 마련이다. 고된 노동에 시달려 파김치가 된 순간 끓여 먹는 칼칼한 라면은 한숨과 함께 하루를 버틸 힘을 주지 않았을까.
 
김소연 작가 <반반 무 많이>
 김소연 작가 <반반 무 많이>
ⓒ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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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네 떡볶이라 불리는 포장마차는 1980년대에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뽑기, 달고나, 어묵, 떡볶이, 쫄쫄이 등을 팔며 배고픔을 달래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쏠쏠한 재미를 주기도 했다. 잘게 썰린 밀떡에 파가 살짝 말려 있으면 감칠맛이 난다. 포장마차 한쪽 구석에서 달고나를 녹여 먹고, 국자에 물을 끓여 먹던 기억 이면에는 민주화 운동의 치열함이 있었다는 사실을 성희와 비슷한 또래였던 나는 알지 못했다. 

데모에 참가해서 경찰서에 잡혀가는 삼촌과 데모를 말리는 엄마 사이의 이야기는 당시에는 흔한 풍경이었으리라. 동네의 대학생 형들에게 '너 데모 같은 거 하지 마라'라는 말이 아줌마들의 인사였던 시기로 기억한다. 어린 시절 데모라는 말과 함께 따라다니던 것은 최루탄이었다. 골목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게 했다. 누군가 소리쳤다. '절대 눈을 비비면 안 돼! 비비면 더 아파!' 찬물을 틀어 놓고 얼굴을 씻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다.

마지막 이야기는 1990년대에 찾아온 IMF 금융 위기에 관한 이야기다. 열심히 일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회사에서 잘리고, 잘 나가던 회사가 문을 닫고, 돈이 없어서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 빚에 허덕이다가 끝내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가 자주 들렸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상황이 생생하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금을 모았다. 팔 수 있는 금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내쉬던 어머니의 모습. 

이야기 속 현식이와 진우는 지금은 성인이 되어 어딘가에서 열심히 살고 있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과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데,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을 동시에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플레이션이 위협하는 지금은 또 어떤 위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나라가 저 모양인데 치킨 시켜 먹을 맛이 나겠어." 현식은 1년 가까이 잊고 살았던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드는 걸 느꼈다. 치킨집은 절대 망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가 또 실패를 맛보아서는 안 된다. 이번에 무너지면 아버지는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지도 모른다. 현식에게 남은 가족이라고는 아버지가 전부였다.
- '반반 무 많이!' 중에서

<반반 무 많이> 속에 들어 있는 다섯 편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사랑받는 음식과 함께 현대사를 돌아볼 수 있다.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은 무엇이고,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일까? 앞으로는 어떤 음식이 우리의 피로함을 달래줄 수 있을까. 2000년대와 2010년대의 이야기도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https://brunch.co.kr/@yoodluffy/150
이 글은 브런치에도 중복 게재했습니다.


반반 무 많이

김소연 (지은이), 서해문집(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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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에 회사에 다니고 주말에 글을 쓰는 주말작가입니다.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좋은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https://brunch.co.kr/@yoodluf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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