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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김제 하얼빈역 모형 건물
 전북 김제 하얼빈역 모형 건물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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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처단 거사 바로 전날인 1909년 10월 25일 밤,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의사는 '장부가(丈夫歌)'라는 제목의 시 한 수를 지었다. '장부가'의 문구는 기록한 사람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거사 112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읽어본다(관련 기사: 26일, 안중근 의사 의거 112주년 기념식 열려).

丈夫處世兮 其志大矣
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
時造英雄兮여 英雄造時
시대가 영웅을 지음이여! 영웅이 시대를 만들도다.
雄視天下兮 何日成業
영웅이 천하를 바라봄이여! 어느 날에 사업을 이루리오.
朔風其凉兮 我血則熱
삭풍의 차가움이여! 나의 피는 뜨겁도다.
慷慨一去兮 目的其達
비분강개하여 한 번 가서 목적을 달성하리라.
對彼鼠賊兮 豈肯比命
저 도적을 대함이여! 어찌 목숨을 보존하리오.
同胞同胞兮 速成大業
동포여 동포여! 속히 대업을 이루소서.
萬歲萬萬歲 大韓獨立
만세여! 만만세여! 대한독립이로다.


우덕순(禹德淳, 1876?∼1950) 의사가 이토 처단 거사 동지였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가 안 의사의 '장부가'에 아무 반응도 일으키지 않고 그저 묵묵부답이었을 리는 없다. 우덕순은 '화답가'를 지어 안중근 의사와 거사를 앞둔 결의를 더욱 굳게 다졌다.
    
逢兮逢兮 逢爾仇兮
만났도다 만났도다! 너 원수 만났도다!
我欲逢爾 水陸萬里
내가 너를 만나고자 강과 육지 만리를
或於火車 或於輪船
혹 기차 타고 혹 수레와 배 타고
坐也禱 立也禱
앉을 때도 기도하고 섰을 때도 기도하였으니
監之監之 我救主監
살펴주소서 살펴주소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여 살펴주소서.
東半島大韓國 從我願而救之
동쪽의 반도 대한국 나의 원함을 따라 구원하소서.


안중근 의사는 이토를 처단한 후 뤼순 감옥에 갇혔다가 이듬해인 1910년 2월 14일 사형 선고를 받고, 3월 26일 오전 9시 30분에 순국했다. 1907년 해삼위(海蔘威: 블라디보스톡)에서 안중근, 이범윤과 함께 의병을 양성해 두만강 너머 경흥과 회령 일대에서 왜군과 격전을 벌이다가 7년형을 받았던 우덕순 지사는 이토 처단 거사 때 다시 3년형을 살았다.

중국 정치 최고 지도자들, 안중근 의사 찬양 시 지었다

당시 대한민국 사람들만이 아니라 중국 최고 정치 지도자들도 안중근 의사의 이토 처단 거사를 찬양해 시를 지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있던 중국인의 심사를 대변한 창작이었다. 쑨원(손문), 위안스카이(원세개), 장제스(장개석)의 시가 가장 널리 알려졌는데, 그 중 위안스카이의 '안중근 의사 애도시'를 읽어본다. ('장부가'와 '화답가'는 구본욱 번역, 위안스카이 시는 이은상 번역)

平生營事只今畢
평생에 벼르던 일 이제야 끝냈구료
死地圖生非丈夫
죽을 땅에서 살려는 건 장부 아니고.
身在三韓名萬國
몸은 한국에 있어도 이름은 만방에 떨쳤소
生無百歲死千秋
살아선 백 살이 없는데 죽어 천년을 가오리다.

 
대구가톨릭대 안중근연구소가 2019년12월 20일에 발간한 <새로 발굴한 도마 안중근 의사 추모시>(번역 구본욱)의 표지. 새로 발굴된 안중근 추모 한시 19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대구가톨릭대 안중근연구소가 2019년12월 20일에 발간한 <새로 발굴한 도마 안중근 의사 추모시>(번역 구본욱)의 표지. 새로 발굴된 안중근 추모 한시 19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 대구가톨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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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원, 위안스카이, 장제스의 안중근 추모시는 익히 알려져 있다. 그에 비해 한국인들이 쓴 안중근 추모 한시는 거의 알려지지 못한 채 묻혀 왔다. 

구한말 유학자들의 개인 문집에 수록되어 전해진 안중근 추모 한시는 현재 19편이 발견되었고, 2019년 12월 20일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소장 박주)가 <새로 발굴한 도마 안중근 의사 추모시>라는 책을 펴낼 때 구본욱의 번역으로 처음 소개되었다. 

나라 잃은 백성이 자결 전에 남긴 안중근 추모시

서한기(徐翰基, 1857∼1926)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었을 때 음독 자결한 송병선 선생의 제자로, 대구 달성군 가창면 단산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제에 항거하여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여러 차례 일제 경찰에 연행되어 고문을 당했지만 "조선인인 내가 왜 너희 일본인들에게 세금을 바치느냐?"라며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1919년 고종이 타계하자 3년간 상복을 입었고, 급기야  1926년 9월 29일 못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후손들은 그의 관 위를 덮은 명정에 '조선유민 치재처사 서공지구(朝鮮遺民 癡齋處事 徐公之柩)'라고 썼다. 조선유민은 멸망한 조선국의 백성이라는 뜻이다. 그가 남긴 시 '의사 안중근을 추모함(挽義士 安重根)'을 읽어본다.

黑雨蕭蕭白日冥
검은 비가 쓸쓸히 내려 흰 해를 가렸는데
萬人叢裏一身挺

만인 가운데 한 사람이 빼어났네.
釰筑寒於燕易水
검축(釰筑)에 노래하니 역수(易水)는 차가운데
山河異似晉新亭
산하가 진나라 신정(新亭)과 같이 달라 보이네.
太冬風雪孤松碧
한 겨울 풍설에도 고송(古松)은 푸른데
長夜乾坤獨炬明
긴 밤과 같은 세상 홀로 횃불 밝혔네.
金櫃將書忠義字
실록에 장차 충의(忠義)의 글자를 쓰고
史官持筆淚先橫
사관이 붓을 잡고 먼저 눈물을 흘리리라.


시의 3행은 이른바 '역수한풍(易水寒風)'의 고사를 원용하고 있다. 전국 시대의 형가(荊軻)가 연 나라 태자 단(丹)의 부탁을 받고 진왕(秦王)을 죽이려고 출발할 때 역수 물가에서 축(筑, 타악기의 일종)의 명인인 고점리(高漸離)의 반주에 맞추어 "바람은 쓸쓸하도다. 역수 물 차가운데, 장사 한번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라는 노래를 불렀다. 
 
경북 경산시 옥곡동 삼의정 경내에 건립되어 있는 정기연 '안의사 중근이 이등박문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聞安義士 重根 殺伊藤博文)' 시비
 경북 경산시 옥곡동 삼의정 경내에 건립되어 있는 정기연 "안의사 중근이 이등박문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聞安義士 重根 殺伊藤博文)" 시비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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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젊은이 있어 큰 손을 펼쳤다"

역시 송병선의 제자인 정기연(鄭璣淵, 1877∼1952)도 안중근 의사의 쾌거를 듣고 감동하여 시를 썼다. 경북 경산시 옥곡동에서 태어난 정기연은 임란 당시 왜적에 대항하여 싸운 정변함(鄭變咸)·변호(變頀) 형제와 종제 변문(變文) 의병장의 후손이다.

그가 남긴 시는 세 의병장을 기려 세워진 삼의정(三義亭) 경내에 시비로 만들어져 건립되어 있다. 시 '안의사 중근이 이등박문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聞安義士 重根 殺伊藤博文)'를 읽어본다.

封狐渡海禍俱臻
간악한 왜놈 바다를 건너 와 화(禍)가 이르렀는데
抱釰躕躇幾箇人
칼을 품고 고뇌한 사람 몇이었던가?
有一少年伸大手
한 젊은이 있어 큰 손을 펼쳤으니
東天快嘯動西隣
우리나라 쾌재를 부르고 서쪽 이웃 감동케 하였네.


정기연이 "우리나라 쾌재를 부르고 중국이 감동하였다"라고 말한 마음을 헤아리게 해주는 또 다른 시비가 삼의정 경내에 있다. 나라가 망했을 때 느낀 통탄을 가슴아프게 읊은 내용이다. 한문 전문을 인용하면 너무 긴 까닭에, 한글로 옮겨진 번역시만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나는 어디로 갈꼬 나는 어디로 갈꼬
한강을 차갑고 날은 이미 기운데
망국의 슬픔 안고 길 가면서 울먹인다
수양산 아니면 나는 어디로 갈꼬

누구랑 같이 가리 누구랑 같이 가리
행인을 바라보며 사립문에 기대선다
매화야 국화 날 따른 지 오래구나
너희 버리고 누구랑 같이 가리

어찌 하면 좋을까 어찌 하면 좋을까
차라리 홀로 가지 딴 마음 없건만
이천 만 우리 겨레 왜적에 시달려도
하늘은 무심하니 어찌 하면 좋을까

 
삼의정 경내에 세워져 있는 '탁와 정기연 선생 시비'.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처단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내 창작된 시이므로, 추모시가 아니라 찬양시라는 특별한 장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삼의정 경내에 세워져 있는 "탁와 정기연 선생 시비".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처단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내 창작된 시이므로, 추모시가 아니라 찬양시라는 특별한 장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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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연이 "東天快嘯動西隣(우리나라 쾌재를 부르고 서쪽 이웃 감동케 하였네)"라고 노래하였듯이, 독립지사 김택영(金澤榮, 1850∼1927)도 "未死得聞消息好(내 죽기 전에 좋은 소식 듣게 되니) 狂歌亂舞菊花傍(국화 옆에서 미친 듯 노래하고 춤추네)"라고 기쁜 감회를 격동적으로 읊었다. 

따라서 이영현(李永鉉, 1893∼1975)이 "射殺邦讎眞快濶(나라의 원수를 쏴 죽였으니 진실로 통쾌하고) 頂天蹠地位堂堂(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서 있으니 위풍이 당당하네)"라며 안중근 의사를 현창한 것은 지나침이 없는 표현이었다.  강병민(姜柄旻, 1844∼1828)의 "吾東烈士忠臣輩(우리나라 충신열사들 중에서) 孰是其雌孰是雄(누가 자웅을 겨룰 수 있으리오)"라는 격찬 또한 마찬가지이다.

천년 역사에 대의로 하늘을 놀라게 한 사람

嗟我東方千百年
아! 우리 동방 천 백년에
驚天大義更無前
대의로써 하늘을 놀라게 한 사람 이전엔 없었도다.
乃獨除凶成所志
홀로 흉도(凶徒)를 제거하고 뜻을 이루니
一時肖影萬邦傳
한 때의 모습 만방에 전해지리라.


마지막으로 이지영(李之榮, 1855∼1931) 시 '안의사 응칠 중근을 추모함(挽安義士 應七 重根)'을 소개했다. 지면 사정상 모든 시들을 두루 독자들에게 선보이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다. 자정순국한 서한기 선생이 독립유공자로 아직도 추서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정도 참으로 안타깝다. 중앙 및 지방정부 관련 부처의 좀 더 세심한 조사와 합당한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안중근 의사 추모시를 소개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또 다른 안타까운 마음이 일어난다. "가난과 병마에 시달렸던 삶…안중근 조카며느리 91세로 별세" 식의 제목이 붙은 기사들이 보도되고 있기 때문이다(10월25일자, <연합뉴스>).

그에 따르면 "국내 거주 혈족 중 안중근 의사와 가장 가까운 박태정 여사는 그 동안 보훈수당 50여만 원으로 4인 가족이 임대아파트 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기사 중 "지난 3월에는 딸이 먼저 세상 떠났다"는 내용도 눈물겹다. 의사의 가족들을 우리는 제대로 대우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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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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