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 겉 표지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 겉 표지
ⓒ 한길사

관련사진보기


네 번 만난 인연

나의 학창시절과 젊은 날에는 해마다 이맘때면 '가을은 독서의 계절' '등화가친의 계절'이라는 말을 귀에 익도록 들으며 지냈다. 그러다 그 언제부터인가 그 말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몇 해 전 세계 최고의 독서 국가라는 일본을 방문하여 교토에서 도쿄까지 신간선을 탔다. 그런데 교토 역 대합실에도 신간선 열차 안 승객들도 책 대신 손 전화를 쳐다보고 있었다.

전업 작가로서 이런 세태에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다. 하지만 역시 책을 많이 읽을 사람이 앞서가고, 그런 독서인이 많은 국가일수록 선진국임에는 부인할 수가 없는 사실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앞서가고 그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기 마련이다.

이 만추의 계절, 모처럼 나는 독서삼매경에 빠졌다. 문학평론가 유성호 교수(한양대)가 묻고, 임헌영 선생이 답하는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의 드넓은 광장에서 며칠을 유영(遊泳)했다. 나는 임헌영 선생을 세 번 만난 걸로 기억을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네 번 만난 걸 확인하고서 첫 만남의 상황을 전화로 말씀드리자 내 기억력에 놀랐다.

임헌영 선생은 경북 의성 출신이고, 나는 바로 인접한 선산군 구미 출신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60년 전인 1961년 3월 3일, 나는 그 전날 구미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고교로 진학하고자 새끼 멜 방으로 이불보따리를 등에 지고 서울행 완행열차에 올랐다.

다행히 3등석에 자리를 잡고 보니 앞자리에 두 대학생이 앉아 있었다. 서울까지 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바 있다. 그 학생들은 대구에서 열차를 탔다고 하면서 나에게 이것저것을 묻기에 나는 장차 대학 국문과로 진학하려고 한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의성 출신이라는 한 학생이 자기가 그해 입학한 중앙대 국문과로 진학하라는 권유를 했다. 그분은 그해 중앙대에 진학한 임헌영 대학생이었다.

이후 나는 다른 대학 국문과에 진학하여 대학 선후배 연은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문청시절 한국문학전집을 읽으면 작품집 뒤에 임헌영, 염무웅, 이어령, 김병익, 김현 등의 평론가 해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작품집에 그분들의 해설을 실은 책을 내는 게 꿈이었다. 다행히 얼마 전에 펴낸 <전쟁과 사랑> 장편소설에는 염무웅 선생의 추천사가 든 작품집을 냈다. 하지만 임헌영 선생의 옥고가 든 책은 여태 내지 못해 아쉽다.

2000년 이후 임헌영 선생님과 나는 세 번 만났다. 그 첫 번째는 시인 이기형 선생 고희연 때였고, 그 두 번째는 선생이 민족문제연구소장으로, 친일인명사전 모금운동을 한창 펼칠 때 나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인터뷰를 한 바 있다. 그 세 번째는 2005년 7월 하순, 남북작가대회 때 평양, 묘향산, 백두산을 동행하면서 한 밥상에서 함께 식사도 했다.
  
남북 작가대회 때 평양에서(2005. 7. 왼쪽 임헌영 오른쪽 필자).
 남북 작가대회 때 평양에서(2005. 7. 왼쪽 임헌영 오른쪽 필자).
ⓒ 박도

관련사진보기

 
부끄러운 내 인생역정

책 리뷰를 쓰면서 군말이 길었다. 이제는 책 이야기로 들어가겠다. 며칠 전, 택배로 온 책 포장지를 뜯자 분홍빛 바탕에 일러스트를 곁들인 표지가 보였다. 꼭 어린이 동화책 같은 인상을 받았다. 출판사 측에서 상당히 장정에 고심한 것 같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어쩌면 케케묵은 꼰대 같은 이야기로 비칠 수 있기에 아마도 최신의 신선한 감을 주고자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아무튼 모던한 장정이라는 걸 느끼며, 나도 이런 장인이 만든 책을 내고 싶은 충동도 일어났다. 이 시대는 책을 짤 쓰기도 해야 하지만 잘 만들어야 독자들에게 선택받나 보다.

솔직히 한 문인의 인생역정 700여 쪽이나 토로한 것을 짧은 리뷰에 담기란 불가능하다. 이 책을 보면서 나의 지나온 삶과 유사한 점도 많이 발견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매우 부끄러움을 느꼈다. 임 선생님 선친과 나의 선친은 해방 직후 대구 경북지방의 10. 1항쟁에 연루됐다. 그리하여 임 선생님의 인생역정은 그 아버지에 그 아들로, 그야말로 형극(荊棘), 가시밭길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가시밭길을 마치 피구(避球)하듯이 요리조리 피하거나 슬쩍슬쩍 장애물을 요령 좋게 뛰어넘은 것 같아 책을 읽는 내내 무척 부끄러웠다. 이 책에 등장하는 무수한 인명 중에는 내가 아주 아는 인물도, 친밀감을 가졌던 분도 적지 않았다.

박상희 신문사지국장, 부인 조귀분 여사는 고향마을 이웃집으로 그분들 얘기는 어려서 할머니한테 이불 속에서 귀에 익도록 들었다. 한때 두 집안이 다 몰락하여 구미면 원평 6동(각산) 초가에 살면서 금오산에 같이 나무를 하러 갔던, 관포지교의 관계로, "사람 팔자 알 수 없다"는 말을 절감케 했다. 왜바지 차림에 나뭇짐을 지던 아낙네가 하루 아침에 대통령 형수에 국무총리 장모가 된 걸 봤기 때문이다.

제5대 대통령 선거판을 요동치게 했던 황태성 밀사는 나의 외가 이웃마을인 금릉군 청리 태생이기에 내가 가장 존경했던 외삼촌과는 잘 아는 사이요, 임 선생님 안동사범 재학 때 멘토였던 국어교사 나동성 선생은 나를 오산중학교 교사로 채용해준 분이었다. 당신은 오산중고 교장으로 경기도 하남에서 양계를 하면서 스쿨버스로 출근하는, 간디와 같은 그 근검 청빈 정신에 매료, 나는 모나게 모교(중동고) 교단을 뛰쳐나와 오산학교를 두 번이나 부임했고, 결혼식 때 주례를 해주신 분이시다. 

그리고 <분지>의 작가 남정현 선생은 집안 형님처럼 지냈던 분이시고, <그를 버린 여인>을 쓴 이병주 선생은 박학다식한 작가로 문청시절 나의 멘토였다. 또 함석헌 선생은 오산학교 출신으로, 원고청탁 때문에 원효로 자택을 여러 차례 드나들면서 그분과 수차례 악수를 나눈, 당신 모교의 훈장이라고 내 어깨를 두드려 주시면서 격려하셨던 분이시다. 이밖에도 이 책에 서술한 김영삼, 김대중, 박석무, 고은 선생 등도 이런저런 인연으로 개인적인 친교가 있어 더욱 친밀감이 갔다.
  
안흥 집 마당 화단에서 무서리를 맞고 핀 오상고절의 황국화.
 안흥 집 마당 화단에서 무서리를 맞고 핀 오상고절의 황국화.
ⓒ 박도

관련사진보기

 
'오상고절(傲霜孤節)'

임 선생은 1941년 생으로 이제는 희수(喜壽)를 넘기신 희수(稀壽)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당신 인생역정이 마치 온갖 시련을 겪고 곱게 물든 이즈음 단풍잎처럼 단아하고 황홀 찬란함을 느꼈다. 당신 삶은 문인의 길만 걸은 게 아니라, 폭넓게 한국 진보 지식인의 정도(正道)를 꼿꼿이 걸어온 표상으로, 책 장을 넘길수록 옷깃을 여미게 했다.

선진국, 특히 영국 사람들은 역사를 매우 사랑하며 존중한다고 한다. 그들은 개인의 역사까지도 매우 사랑한다. 그들은 "체험은 최상의 스승이다(Experience is the best teacher)"고 하여, 기성세대의 체험담을 귀중한 자산으로 여기며, 거기에서 교훈을 배운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공부하는 사학도, 문학을 공부하는 문학도들이 꼭 읽어야 하는 필독서라고 추천한다. 선생의 80 평생은 우리 근현대사(한국 문단사 포함)를 가로지른 대장정으로, 아마도 선생이 걸어온 길에서 새로운, 바른 길을 찾으리라 의심치 않는다.

'오상고절(傲霜孤節)' '설중매화(雪中梅花)'란 두 한자 말로 선생의 발자취를 축약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33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어린이 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등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