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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의 고민을 씁니다. 이번 주제는 '50대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계절은 가을인데 때이른 한파가 왔다. 베란다 식물 중 하나가 하룻밤 새 제 빛을 잃고야 말았다. 멋진 화분 받침대를 구매해서 실내에 들여놓고 근사하게 꾸미고 싶었지만 일단 급하게 빈 공간 여기저기에 들여놓았다. 구석을 채우니 그런 대로 초록빛의 실내가 싱그러웠다.

식물과 뒤늦게 친구가 되어가고 있지만 사실 나의 유일하고 독보적인 친구는 남편이다. 남편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나의 가려운 구석을 귀신같이 알아챈다. 답답하다고 느낄 때면 밖으로 나가자고 해 답답함을 풀어준다. 생각에 빠져 있을 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조용히 물어온다.

부부는 의리와 우정으로 산다는 말을 오래전 방송에서 처음 들었다. 장난과 조롱이 섞인 표현처럼 느껴져 불쾌했던 기억이 있다. 마치 부부라는 관계를 형편없이 망가뜨리는 것 같았다.

짧디 짧은 사랑의 시간이 지나면 결국 둘의 관계가 무너지고 훼손될 수밖에 없는가 싶어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니 지금은 그 표현이 어느 정도는 맞다고 느낀다. 다만, 의리와 우정만이 아닌 애정과 우정 사이 어디쯤이 아닐까 싶다. 

오십을 넘어 달라진 남편과의 여행
 
나이 쉰을 지나며 여행을 통해 비로소 서로의 모습을 제대로 마주한 것 같다.
 나이 쉰을 지나며 여행을 통해 비로소 서로의 모습을 제대로 마주한 것 같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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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된 남편과 부담 없이 여행을 즐겼다. 쉰 고개를 막 넘으며 시작된 둘의 첫 여행은 해외 패키지여행이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촘촘한 일정 중에도 남편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고 내 손을 이끌고 이곳저곳을 다녔다.

가이드가 허락한 30분 정도의 짧은 자유시간에도 낯선 길을 부지런히 찾았다. 눈으로 담고 사진으로도 남겼다. 외국이라기보다는 처음 와 보는 국내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듯 남편은 주위의 다국적 얼굴들과 그들의 시선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여행을 계기로 남편과의 여행을 편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낯선 나라의 지도를 펴고 긴 여행의 여정, 예산이나 티켓팅, 숙소 예약과 하루에 하나 굵직한 일정을 계획하고 예약하는 것까지는 나 혼자 준비했다.

하지만 막상 현지에서는 남편의 손에 이끌려 다녔다. 출발 전까지 계획하고 고민하는 것은 내 몫이었지만, 여행지에서의 모든 일은 남편의 몫이었다. 박물관에서는 가이드를 대신했고, 낯선 길에서 소통을 맡은 것도 남편이었다. 

남편은 길눈도 밝았다. 지도를 한번 훑어보면 단번에 그 장소를 찾았고, 지하철 노선을 머릿속에 그렸다. 필수 일정을 포함한 하루의 코스를 정하는 것도 남편이었다. 최적의 경로를 선택했고 시간도 적절히 배분했다. 숙소로 돌아오면 꽉 찬 일정에 뿌듯해 했고 그날의 피로를 풀 수 있도록 맥주 한 잔을 챙기는 것도 남편이었다.

솔직히 쉰 이전의 여행에서는 특별한 감흥이 없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온 가족이 여행을 다녔다. 달갑지 않은 표정의 아이들을 이끌고 학습을 위해 유적지와 박물관을 코스에 꼭 넣었다. 차 안에서 내내 자던 아이들을 깨워 비석이며 안내문을 꼼꼼히 읽어주고 역사적 배경까지 상세히 덧붙였다.

하지만 우리 부부가 한 모든 말은 튕겨나왔고, 다음 코스에서는 아예 차에서 내리지 않고 자고 있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끼니 때만 겨우 눈을 떴고, 운전하며 부지런히 움직인 남편의 보람은 하나도 없었다. 서로 마음이 좋을 수 없었다. 여행의 분위기를 살리려고 아이들과 남편 사이의 중재를 도맡았던 나는 돌아올 때까지 양쪽의 마음을 살피며 여행 아닌 고행을 했더랬다.

여러 분야를 두루 아는, '박학다식'한 남편의 지식과 유머, 대화의 코드도 아이들에게는 맞지 않았다. 아이들이 흥미를 잃을수록 이야기는 길어졌고 목소리도 높아졌다. 듣는 것을 좋아하는 나도 그런 식의 대화 방식은 힘들었다. 여행을 할 때마다 피곤이 덕지덕지 묻은 채로 돌아왔고 이후 며칠은 냉랭했다. 우리는 패잔병 같았다. 이후로 남편과의 여행은 부담스러웠고 우리의 가족여행은 멈췄다. 

둘의 시간에 우리는 진심입니다
 
여행이 중단된 지금은 서로의 마음을 여행하는 중이라 여긴다.
 여행이 중단된 지금은 서로의 마음을 여행하는 중이라 여긴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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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역할과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은 그 사람의 본 모습도 변형시키는 것 같았다. 아이들과 학습의 의미를 뺀 둘의 여행에서 남편의 '박학다식'은 빛을 발했다. 재미도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남편은 원래 다른 사람을 웃게 하는 말재주를 가졌더랬다. 거기에 중년 이후로 조급함은 한결 누그러졌다. 가끔 얘기를 거들면 대화는 더 풍부해졌다. 평범한 길과 사람 사는 모습에서도 의미를 찾았고, 지식의 충족 없이도 감동이 있었다. 

지난 2년간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어려웠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는 국내의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국내 여행은 마음부터 푸근했다. 어느 날은 용문사 쪽으로 코스를 잡아 떠났고, 어느 날은 대둔산에 가서 정상을 밟고 서해의 낙조를 보고 왔다.

아무 준비 없이도 새벽같이 출발해서 부산과 포항을 거쳐 동해를 돌아 2박의 일정을 가뿐하게 소화하기도 했다. 예약도 없이 떠났지만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날이 저물면 하루 더 보내고 돌아와도 걱정할 일이 없었다.

온전히 내 것을 누리는 느낌이었다. 느긋함과 여유를 맛본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 둘만의 여행에 이미 익숙해졌다. 새벽에 말없이 떠나 낮시간쯤 단톡방에 사진을 올리며 여행을 통보하거나, 여행을 공표하고 나섰다가 당일 밤늦게 불쑥 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도착해야 할 날짜에 오지 않아도 아이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통보만 해 주면 스스로 밥도 챙기고 집도 챙겼다.

우리의 잦은 여행을 두고 딸은 둘의 합이 잘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딪히는 대목 없이 활발하게 소통하는 상황을 신기해 하기도 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언젠가부터 긴 대화도 피곤하지 않았고 눈치를 보며 조심할 필요도 없었다.

가치나 지향도 비슷했다. 어쩌다 상대의 말에 엉뚱한 첨언을 해도 가볍게만 받지 않았고 다른 생각도 가능한 세계를 열었다. 부부생활 30년의 내공이라고 딸에게는 간단히 정리했다. 가고 싶은 곳이 생각나면 지체 없이 실행했다. 다음 주, 다음 달로 미루지 않았다. 불가능한 조건이나 떠나지 못할 이유가 없었고 둘의 생각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오십 이전까지 투닥거리며 힘들었던 시간만큼 오십 이후로 의견의 조율은 빨라졌고 둘이 함께 하는 시간에 정성을 다한다.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요즘이다. 말하자면 둘의 시간에 우리는 진심이다. 

지금은 딸도 우리 사이를 부부의 연을 맺은 '찐친'으로 이해한다. 부부관계란 원래 그런 것일까 궁금해 하지만, 서로 흉허물 없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우리는 나이 쉰을 지나며 여행을 통해 비로소 서로의 모습을 제대로 마주한 것 같고, 그런 서로를 열심히 돌보는 중이다. 지난 시간을 용서도, 응원도 하면서.
 
남편이면 용서할 수 없는 일도 친구라면 용서할 수 있다.
아내라면 응원할 수 없는 일도 친구라면 응원할 수 있다.
그런 사람도 많지 않을까?
- 요시토모 유미, <오십부터는 우아하게 살아야 한다> 중

얼마전 갑작스러운 남편의 병으로 우리의 여행은 잠시 중단되었다. 지금은 잠시 이 계절의 다른 면을 보는 시간이고, 서로의 마음을 여행하는 중이라 여긴다. 여행이 아니어도 우리의 일상과 대화는 여전하다. 서로의 독특함을 확인하고 확인받으며. 그리고 내년 봄이면 다시 여행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태그:#50대의 여행, #남편과 여행하기, #남편과 친구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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