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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핫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꼽으라면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수많은 화제를 낳고, 수많은 덕후와 이야기를 양산한 프로그램으로 주변에서도 '스우파'에 열광하는 분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러나 조금 다른 오디션 취향을 가진 나와 초등학생 5학년 딸아이는 이제 막 막을 내린 클래식 오디션, 쇼팽콩쿠르에 열광했더랬다. 올림픽도 4년에 한 번 열리고, 월드컵도 4년 만에 열리지만 전 세계 음악인들이 기다리는 이 쇼팽콩쿠르는 5년에 한 번씩 열린다(코로나19로 지난해 열리지 못해, 6년 만에 열렸다). 오랜 기다림이다.

지난 2015년,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를 가린다는 그 명예로운 쇼팽콩쿠르에서 당당히 1위 입상을 한 피아니스트 조성진. 그 덕분에 올해 쇼팽의 고향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2021 18th 쇼팽콩쿠르'를 유난히 관심 있게 지켜보게 되었다.
 
코로나19로 6년만에 열린 2021 쇼팽콩쿠르.
 코로나19로 6년만에 열린 2021 쇼팽콩쿠르.
ⓒ Chopin Institute 유튜브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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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콩쿠르의 일정은 10월 2일 '오프닝 콘서트(Inaugural Concert)'를 시작으로 10월 3일~7일(본선 1차), 10월 9일~12일(본선 2차), 10월 14일~16일(본선 3차), 10월 18일~20(결선), 10월 21일~23일 우승자 갈라쇼(Prize / Winner's concert)로 진행되었다. 

2021년 대회의 포문을 연 것은 지난 대회 우승자 조성진의 오프닝 무대였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Beethoven Piano Concerto No.3 in C minor, Op.37 연주. 조성진의 연주 실황을 유튜브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워서, 그렇게 유튜브를 싫어하던 엄마도 열혈 유튜브 애독자가 되었다.

유튜브로 연주 실황을 본다는 것은 '클알못'(클래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단언컨대, 클래식을 즐기기 참 좋은 방법인 것 같다. 클래식 음악은 좋은 오디오를 통해 즐기는 연주라고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영상과 함께 보는 연주가 즐거움을 느끼는 데 더욱 효과적이었다.

연주자의 표정과 건반 위에서 움직이는 손가락을 보고 있노라면 음악에 훨씬 더 몰입되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올해 쇼팽콩쿠르의 유튜브 실황중계는 환상적인 음향 전문팀 덕분에 최상의 사운드를 만들어냈다고 하니, 클래식 오디션을 즐기는 눈과 귀가 제대로 호강을 했다. 정말이지 방구석 살롱이 따로 없었다.

홀을 감싸는 음악과 소리로 전율하는 것은 아니지만, 클로즈업으로 잡힌 피아니스트의 묘하게 떨리는 손가락을 볼 때는 내 마음도 떨려오고(실제로 우리나라 연주자의 1라운드 연주를 들을 때, 마음 졸여서 끝까지 못 본 연주도 있다), 단단하게 건반을 짚으면서도 흐르듯 소리를 만드는 손가락을 보면서는 감탄을 거듭하게 되었다.

건반을 다루는 손의 모양에 따라 음악이 부드럽게도 강인하게도 경쾌하게도 애잔하게도, 애잔함을 넘어 슬프게도 느껴졌던 것을 보면 이 피아노 음악이 단순히 듣는 음악이 아닌 보는 음악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이번 콩쿠르에서 또 하나 눈여겨 보게 된 것은 다양한 피아노의 등장이었다. 쇼팽 콩쿠르는 전 세계 피아노 애호가의 관심 속에 열리기 때문에 피아노 브랜드로서는 흔치 않는 홍보의 기회가 된다고 한다.

콩쿠르 본선 진출자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스타인웨이 피아노뿐만 아니라 야마하, 파지올리, 시게루 가와이 피아노 중 하나의 피아노를 고를 수 있어서 각자 본선 1라운드 전에 선택한 피아노로 파이널 무대까지 연주하게 된다. 각 브랜드 피아노의 선율을 구분할 수 있는 귀는 없지만, 생소한 피아노를 보는 재미는 쏠쏠했다.
 
한국 진출자 중에서도 가장 어린 피아니스트 이혁은 파이널라운드까지 올랐지만 아쉽게 순위 안에는 들지 못했다.
 한국 진출자 중에서도 가장 어린 피아니스트 이혁은 파이널라운드까지 올랐지만 아쉽게 순위 안에는 들지 못했다.
ⓒ Chopin Institute 유튜브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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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콩쿠르 우승자인 브루스 리우(Bruce Liu)가 선택한 피아노 '파지올리'는 1978년 이탈리아의 파올로 파지올리에 의해 창립된 비교적 역사가 짧은 피아노이다. 가구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로시니 음악원 출신의 피아니스트로 가업과 전공을 접목해 명품 피아노 브랜드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얼마 전 전 세계 피아노 애호가들을 안타깝게 했던 안젤라 휴이트의 파손된 피아노도(페달이 4개 달린 세계 유일의 피아노) 파지올리였다고 하니 더욱 그 피아노에 관심이 갔다. 파지올리 피아노, 아마도 이번 기회에 어마어마한 홍보의 기회를 누리지 않았을까.

코로나 때문에 5년이 아닌 6년 만에 열린 이번 18번째 쇼팽콩쿠르엔 한국에서 7명의 피아니스트가 본선 진출을 했다. 한국 진출자 중에서도 가장 어린 피아니스트 이 혁은 파이널라운드까지 올랐지만 아쉽게 순위 안에는 들지 못했다.

하지만 1차 라운드에서부터 파이널까지 귀를 호강시켜준 피아니스트 이혁의 연주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요즘 아침저녁으로 즐기는 나의 최애 음악이 되었다. 일찌감치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난 이 음악 천재는 체스와 컴퓨터 프로그래밍에도 탁월하다니, 재능을 몰아 가진 이 피아니스트를 알게 된 것만도 아깝지 않은 수확인 것 같다.

이제 길었던 쇼팽콩쿠르가 막을 내렸다. 나에게는 수없이 돌려볼 수 있는 보물 같은 영상들이 수북이 쌓여있으니 콩쿠르가 끝났지만 아쉬움보다는 즐거움이 많이 남아있다. 피아노 음악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다는 쇼팽의 음악들로 나의 남은 가을과 겨울이 행복할 것 같은 이 든든함, 아마도 '내 귀의 월동준비' 쯤 되겠다.

덧붙이는 글 | 추후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쇼팽콩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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