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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의 중심 봉우리 중봉에서 바라보는 무등산 정상의 모습. 왼쪽이 북봉, 가운데가 천·지·인왕봉, 오른쪽이 서석대
 무등산의 중심 봉우리 중봉에서 바라보는 무등산 정상의 모습. 왼쪽이 북봉, 가운데가 천·지·인왕봉, 오른쪽이 서석대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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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부터 시작된 가을이 남으로 남으로 내려오고 있다. 하루 약 20km의 속도로 설악과 속리, 내장을 거쳐 '무등'으로 남하하고 있다. 이는 땅으로부터 시작된 봄꽃이 북상하는 속도와도 같다. 자연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하다.

설악과 내장이 울긋불긋 오색의 고운 단풍으로 물드는 10월 하순. 무등의 가을은 어떤 색일까. 가을을 이기지 못한 몇몇 나무는 벌써 붉고 노란 옷으로 갈아입고 있지만 대부분 나무들은 아직 푸르름을 유지한 채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무등산의 단풍은 11월 초순이 되어야 절정에 이르지만 속살 깊은 곳에는 이미 가을의 전령 은빛 억새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억새 하면 영남 알프스나 전남 장흥의 천관산, 포천의 명성산, 정선의 민둥산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이제부터는 무등산 억새도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10월 하순. 무등의 나무들은 아직 푸르름 유지한 채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10월 하순. 무등의 나무들은 아직 푸르름 유지한 채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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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품처럼 산새가 유순한 무등산의 억새 산행은 오르는 길에 따라 다양한 코스가 있다. 증심사 지구에서 출발해 새인봉과 중머리재를 거쳐 중봉에 이르는 코스와 반대편 무등산장 원효사 지구에서 신선대 억새 평전을 지나 장불재로 오는 코스가 있다.

무등산의 9부 능선에 위치한 장불재 일대는 억새들이 군무를 펼치는 주무대가 된다. 장불재를 중심으로 중봉과 화순의 안양산으로 이어지는 백마능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입석대와 서석대 부근의 억새는 10월 중순부터 11월 초순까지 무등산의 주연이라 할 수 있다.

평생을 무등산 사랑에 몸 바친 향토 사학자 고 박선홍 선생(1926~ 2017)은 무등산 억새를 보며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임을 기다리는 젊은 여인의 기나긴 옷고름이 바람에 하늘거리는 것과 같다. 아득한 옛날부터 적막을 그대로 간직한 이 넓은 평원에서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억새꽃뿐"이라고 찬탄했다.
 
약사사에서 바라본 새인봉. 봉우리가 임금님의 옥새를 닮았다 해서 새인봉 또는 인괘봉이라 부른다
 약사사에서 바라본 새인봉. 봉우리가 임금님의 옥새를 닮았다 해서 새인봉 또는 인괘봉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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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 옥새와 스님 머리를 닮은 '새인봉과 중머리재'

불현듯 배낭을 꾸리게 된 것은 박선홍 선생 때문만은 아니다. 잠시 잠깐 동안 피었다 사라지는 게 어디 억새뿐이랴마는 짧아서 아름다운 순간의 기억들을 긴 여운으로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마음 탓일 것이다.

오늘의 억새 산행은 산봉우리 형태가 임금님의 옥새를 닮았다는 새인봉과 스님의 머리를 닮았다는 중머리재를 거쳐 주인공 격인 중봉에서 머물다 원효사로 하산하는 코스를 선택했다.

증심사 상가지역 끝 지점에 조금 못 미쳐 우측으로 오르면 새인봉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잘 정리된 데크 계단을 오르면 울창한 숲길이 시작된다. 10월 하순이지만 나무들이 아직 푸르름을 지니고 있는 까닭에 한낮인데도 숲 속은 어두컴컴하다.
 
새인봉은 단 칼에 잘린 듯 10여 m의 아찔한 수직 절벽을 이루고 있어 암벽등반 훈련장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새인봉은 단 칼에 잘린 듯 10여 m의 아찔한 수직 절벽을 이루고 있어 암벽등반 훈련장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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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엄쉬엄 사철 푸르른 신우대 숲길과 암릉을 지나 약 1시간 만에 새인봉에 도착했다. 약사사 남서쪽에 우뚝 솟아 있는 두 개의 커다란 바위가 새인봉이다. 뱃머리를 닮았다는 선두암과 감투바위다.

멀리서 보면 정상의 바위가 마치 임금님의 옥새와 같다 하여 새인봉(璽印峯) 또는 인괘봉(印掛峯)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선두암은 단 칼에 잘린 듯 10여m의 아찔한 수직 절벽을 이루고 있어 암벽등반 훈련장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새인봉을 뒤로하고 중머리재로 향한다. 올라왔으면 내려가야 하는 게 세상 이치다. 이곳부터 중머리재까지는 급한 내리막과 오르막의 연속이다. 하지만 너무 염려 마시라. 잘 정비된 데크 계단을 따라 약 40여분을 오르다 보면 하늘이 열리고 넓은 개활지가 나온다. 중머리재다.
   
무등산 중머리재.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은 모습이 마치 스님의 머리와 같다 하여 ‘중머리재(僧頭峯)’라 부른다
 무등산 중머리재.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은 모습이 마치 스님의 머리와 같다 하여 ‘중머리재(僧頭峯)’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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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머리재는 무등산의 중심 허브와도 같은 교통 요지다. 무등산 등산객들의 약 7할 정도는 이곳을 거친다. 무등산의 중간 높이에 위치한 이 고개는 바람이 지나는 길목이라 그런지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고 억새와 잡목들만 무성하다. 그 모습이 마치 스님의 머리와 같다 하여 '중머리재(僧頭峯)'라 부른다.

파도는 바다에만 있는 게 아냐... 은빛 물결 일렁이는 '중봉'

새인봉, 용추봉, 중봉,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 등등. 모든 산들이 그러하듯 무등산도 수많은 '봉(峯)'들로 이루어졌다. 각각의 봉우리들은 높고 낮음을 서로 겨루지 않고 하나의 큰 덩어리처럼 평등하게 서 있다. 그래서 '무등(無等)'이고 모두가 '일등(一等)'이다.

오늘의 목적지 중봉(中峯)으로 향한다. 중머리재에서 중봉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용추 삼거리를 거쳐 우회하는 길과 직선으로 곧장 올라가는 길이 있다. 선택은 둘 중에 하나지만 가파른 오르막 계단이 이어지는 직선 코스를 택했다. 힘은 들지만 그 길에 볼거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중머리재에서 중봉 가는 길 바위틈에 서있는 무등산 명품 소나무. 5·18을 소재로 한 독립영화 <기억하라>를 촬영한 곳이다
 중머리재에서 중봉 가는 길 바위틈에 서있는 무등산 명품 소나무. 5·18을 소재로 한 독립영화 <기억하라>를 촬영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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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 하단 삼거리에 있는 용추봉. 삼광대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기암괴석들이 절경을 이룬다
 중봉 하단 삼거리에 있는 용추봉. 삼광대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기암괴석들이 절경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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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숨을 내쉬며 계단과 암릉을 지나 산비탈 바위틈에 위태롭게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를 만난다. 척박한 바위틈에서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도 어떻게 넘어지지 않고 중심을 잡는지 온몸으로 설하고 있다. 무등산의 명품 소나무다. '날이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의 푸르름을 안다' 했던 옛 성현의 말을 실감한다.

중봉을 약 100여 미터 앞둔 하단 삼거리 용추봉에 이른다. 삼광대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기암괴석들이 절경을 이룬다. 괴석들 사이 양지바른 곳에 무덤이 하나 있다. 묘비명도 없는 님은 누구시길래 이 아름다운 곳에서 삶을 완성하였을까.

이윽고 중봉에 도착했다. 무등산의 중심 봉우리에 올라서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고 벌어진 입은 한동안 다물어지지 않는다. 무등산의 정상 천·지·인왕봉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석대와 입석대, 장불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멀리 담양에서 이어지는 절경들은 한눈에 담기지 않는다.
 
무등산의 정상 천·지·인왕봉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석대와 입석대, 장불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무등산의 정상 천·지·인왕봉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석대와 입석대, 장불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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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억새들이 바람에 일렁이며 연신 은빛 파도와 포말을 만들어 낸다
 은빛 억새들이 바람에 일렁이며 연신 은빛 파도와 포말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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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발아래 드넓은 평원에서 은빛 억새들이 바람에 일렁이며 연신 은빛 파도와 포말을 만들어낸다. 파도는 바다에만 있는 게 아나라는 사실을 직접 목도하는 순간이다. 박선홍 선생의 말마따나 이 넓은 평원에서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억새꽃뿐이다.

억새는 바라보는 위치와 시간에 따라 색을 달리한다. 해를 등지고 올려다보는 억새는 갈색을 띤다. 태양을 마주 보는 억새는 은빛으로 빛나고, 석양의 억새는 황금빛으로 부서진다. 중봉에서는 억새의 이 모든 모습들을 감상할 수 있다. 억새 하면 단연코 이곳이다. 앞으로 억새 명소에서 무등산 중봉이 빠진다면 많이 섭섭할 것 같다.
   
억새는 바라보는 위치와 시간에 따라 색을 달리한다. 해를 등지고 올려다보는 억새는 갈색을 띤다. 태양을 마주 보는 억새는 은빛으로 빛나고 석양의 억새는 황금빛으로 부서진다
 억새는 바라보는 위치와 시간에 따라 색을 달리한다. 해를 등지고 올려다보는 억새는 갈색을 띤다. 태양을 마주 보는 억새는 은빛으로 빛나고 석양의 억새는 황금빛으로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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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화재단 문화재 돌봄사업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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