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검은 태양>.

MBC 드라마 <검은 태양>. ⓒ MBC


MBC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검은 태양>에서 한지혁(남궁민)과 백모사(유오성)의 마지막 대결이 그려졌다. 지난 23일 방송한 <검은 태양> 최종회(12회)에서 한지혁은 백모사의 테러를 저지했고, 동료를 죽인 죗값을 치르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지난 회에 이어 한지혁은 행사장에서 김영철을 사살하지만 그가 몸에 폭탄을 장착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다급해진 한지혁은 온몸을 날려 폭발 피해를 최소화 막으려 했다. 하지만 정작 타임오버가 되었음에도 폭탄은 터지지 않았다. 대신 백모사의 전화가 걸려와 "내 계획은 곧 실현될 거고 너는 그걸 지켜보게 될 것"이라며 한지혁을 조롱한다.
 
백모사는 여의도 일대에서 EMP 폭탄을 터뜨려 모든 통신과 전산시스템을 일시 무력화시킨다. 국내 최대은행인 한민은행 데이터센터에 침투하여 모든 금융기록을 파괴하려는 목적이었다. 한지혁과 유제이가 도착하지만 이미 백모사 일당이 은행을 장악한 뒤였고 차단문을 내려 출구를 봉쇄시킨다.

백모사는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하여 대국민 방송을 진행한다. 직접 모습을 드러낸 백모사는 은행 직원들을 인질로 삼고, 은행의 금융기록과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한다. "묻고싶다. 이 숫자들을 구할 것이냐. 아니면 여기 보이는 서른세 명의 생명을 구할 것이냐. 여러분의 국가와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여러분들의 생명에 얼마나 가치를 매기고 있는지"라고 말했다.
 
국정원장 방영찬은 도진숙에 지시를 내려서 '인질보다 EMP 폭탄을 우선적으로 제거하라'는 명령을 하달한다. 부당한 지시에 반발하는 강필호(김종태)가 "우리에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적으로 지키는 게 원칙"이라고 항변하자, 도진숙은 한민은행 규모가 국내 전체의 1/4에 이른다는 사실과 사회적 파장을 경고하며 "우리는 다수의 안전과 이익을 따라서라면 윤리와 도덕을 넘어서는 결정을 해야 한다. 설사 손에 피를 묻히더라도 피해선 안 된다"고 반박했다.
 
한지혁과 유제이는 EMP 폭탄을 찾아내지만 폭탄이 가짜라는 걸 알게 된다. 한지혁은 비로소 백모사의 진짜 계획을 알게 된다. 처음부터 은행 데이터가 목표가 아니라 인질들을 죽일 생각이었던 것. 백모사는 정부가 인질들을 선택하지 않을 거란 걸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나중에 EMP 폭탄이 가짜이고 은행의 데이터를 위해 인질들을 모두 희생시켰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국민들에게 국가에 대하여 지울 수 없는 불신을 심으려고 했던 것.
 
한지혁과 유재이는 옥상으로 이동하며 모스 부호로 본부에 사실을 전한다. 그러나 방영찬은 도진숙의 보고에도 확신할 수 없는 일에 도박을 걸수 없다며 EMP 위치 정보나 확보하라며 고집을 꺾지 않는다. 결국 도진숙은 방영찬의 명령을 거부하며 인질 확보를 위한 독자적인 작전을 하달했다.
 
한지혁과 유재이는 백모사를 유인해낼 계획을 꾸민다. 방송실로 이동한 두 사람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유재이에게 자주 들려주던 음악을 틀어서 반응하는 인질들의 위치를 파악해내고, 옛 기억이 떠오른 백모사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한지혁은 백모사의 부하들을 사투 끝에 하나씩 제압하고 인질들이 갇힌 방까지 접근하지만 문은 이미 봉쇄되어 있었다. 백모사가 무전기로 연락하여 방안에 폭탄이 설치되어있다고 밝힌다. 한지혁은 백모사에게 기폭장치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두 사람은 옥상에서 마침내 조우한다.
 
기폭장치를 손에 든 백모사는 "아쉽네, 너라면 날 이해해줄 알았다."며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한지혁은 "뭘 이해한다는 거지? 우리 둘다 동료를 죽인 적이 있다는 거? 난 당신과 다르다. 난 내 과오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하지만 당신은 아직 동료를 죽인 죄책감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외부에서만 찾고 있다. 그래서 나를 지켜봤고 나도 당신과 똑같은 괴물로 변하기를 기대한 것"이라고 백모사의 속내를 꼬집는다.

백모사는 폭탄을 터뜨리려고 하지만 인질들이 있는 방안을 촬영하는 전광판 대형 화면에서 돌연 유재이의 모습이 등장한다. 한지혁이 테러범들을 상대할 동안 유재이는 직원인 척 위장하고 일부러 잡혀서 인질들이 있는 곳에 숨어들어갔던 것. 딸의 모습을 보고 전직 국정원 요원이자 유재이의 아빠였던 유준만으로서의 기억이 돌아온 백모사는 고통스러워한다.
 
그 틈에 한지혁이 달려들어 백모사를 제압하고 총구를 겨눈다. 한지혁은 백모사에게 정신차리라고 설득하지만 백모사는 이성을 잃은 듯 떨어뜨린 기폭장치를 잡으려고 달려들다가 한지혁의 총을 맞고 쓰러진다. 백모사는 피를 흘리면서 폭탄은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터지도록 세팅되어 있었고, 백모사가 들고 있었던 장비는 기폭장치가 아니라 폭탄을 멈추는 타이머였다고 뒤늦게 고백한다.
 
한지혁은 백모사의 말이 진실인지 알 수 없어 혼란에 빠진다. 화면으로 지켜보던 본부는 한지혁이 기폭장치를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보고 당황해한다. 한지혁은 "백모사안에 조금이라도 아빠가 남아있기를. 그게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던 유재이의 말을 떠올리고 버튼을 누른다. 동시에 저격수의 총탄이 한지혁의 팔에 명중한다. 다행히 폭탄은 멈췄고 백모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한지혁은 죽여달라는 백모사의 부탁을 거부하고 자리를 떠난다. 인질들이 모두 구출되고 옥상으로 올라온 유재이는 백모사를 만난다. 백모사는 유재이의 품안에서 세상을 떠나고 유재이는 아빠를 부르며 오열한다. 한지혁은 부상을 입은 채로 카메라 앞에 서서 아직 진행중이던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하여 국민들에게 국정원 사조직인 '상무회'의 존재와 자신이 저지른 잘못까지 모든 진실을 폭로하고 쓰러진다.
 
세월이 흘렀다. 관련자들은 모두 처벌을 받았다. 유제이는 여전히 국정원에서 일하고 있었고, 하동균, 도진숙 등도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강필호는 교도소에서 참회의 시간을 보냈다. 생존한 한지혁도 동료를 죽인 모든 죗값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지혁은 유재이의 전화와 편지를 받고 감회에 젖는다. 그리고 한지혁이 수트를 차려입고 총을 점검하며 국정원으로 복귀한 것을 암시하는 장면을 끝으로 드라마는 막을 내린다.
 
<검은 태양>은 제작비만 약 150억 원이 들어간 대작으로 박석호 작가의 2018년 MBC 드라마 극본 공모전 수상작이다. 일 년 전 실종됐던 국정원 최고의 현장 요원이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내부 배신자를 찾아내기 위해 조직으로 복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국내 최대의 정보기구인 국정원이 실제 조직명 그대로 등장하며 핵심배경으로 조명된다는 점이나 국가 안보 상황과 정서를 반영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현실적인 고증을 강화했다는 점으로 더 화제가 됐다. <아이리스> <배가본드> 등에 이어 모처럼 등장한 정통 첩보액션 장르라는 희소성, 지상파의 수위를 뛰어넘는 강렬하고 화려한 총격전과 카체이싱 등 19금 액션의 완성도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스토브리그> <김과장>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이제는 믿고 보는 배우라는 평가를 받는 남궁민이 주연을 맡아 비밀에 휩싸인 첩보원의 입체적인 내면을 잘 표현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지혁이라는 인물은 고도의 훈련을 받은 특수요원이라는 설정상 액션의 난이도가 무척 높은 데다, 과묵한 캐릭터였기에 대사보다는 때로는 눈빛과 미세한 표정변화만으로 감정과 상황을 설명해야하는 연기력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궁민이었기에 어려운 캐릭터에 설득력을 부여할수 있었다는 평가였다.
 
<검은 태양>은 23일 방송된 최종회가 8.8%(닐슨코리아)를 기록하며 최후의 옥상 대결 장면에서는 순간 최고 시청률 11.4%까지 치솟으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검은 태양>은 방송내내 8-9%의 시청률을 거뒀는데, 최근 몇 년간 평균 3~4% 이하에 그친 작품들이 수두룩했던 MBC로서는 모처럼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엄청난 제작비와 기대치에 비하면 만족하기에는 아쉬운 성적이기도 하다. 동시간대 SBS <원더우먼>이라는 경쟁작이 등장하며 시청층이 분산됐고, 시종일관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 과도한 반전 남발과 복잡한 구성으로 초반부터 보지않으면 새로운 시청자들이 유입되기 어려운 구성이 단점으로 작용하며 시청층 확장에는 실패했다.
 
특히 하이라이트가 되어야할 마지막 2회는 그야말로 용두사미라는 이야기가 나올만큼 맥빠진 전개가 두드러졌다. 중반까지 카리스마 넘치는 흑막으로 백모사는 정체를 드러낸 이후 점점 전형적인 '말 많고 실속없는 악당'으로 전락했다.

나름 국가의 모순을 폭로하겠다던 백모사의 최종계획이라는 것이, 고작 중2병 걸린 관종을 연상시킬 만큼 무모하고 현실성도 없다는 것은 그동안 진지하게 이야기를 따라왔던 시청자들을 허탈하게 한다. 그토록 냉정하고 치밀하던 백모사가 뜬금없는 '딸바보' 속성 때문에 마지막에 갑자기 감정적으로 흔들리며 무너지는 신파도 '캐릭터 붕괴'에 가깝다.
 
또한 인질구출을 둘러싼 강필호와 도진숙의 대립, 백모사와 한지혁이 대치하며 주고받는 대사들은 전형적인 1990년대 액션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진부한 장광설로 손발이 오글거리게 만들었다. 사실상 남궁민이 연기한 한지혁의 원맨쇼만 지나치게 돋보이고 정작 주변 조연들이나 국정원 조직은 끝까지 인상적인 활약이 거의 없다. 히로인인 김지은과 중도에 퇴장한 박하선이 미스캐스팅 논란에 휩쓸리며 비판을 받은 것은, 배우들의 연기력 문제를 떠나 캐릭터의 당위성과 설득력을 납득시키지못한 대본의 한계가 가장 컸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검은 태양>이 결국 기존 첩보물의 설정들을 이리저리 끌어와 재탕한 진부한 구성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최종보스의 정체가 국가에 배신당하고 복수를 꿈꾸는 전직요원이라는 설정에서부터, 주인공의 기억상실, 조직 내부의 정치적 갈등 등 <007> <제이슨 본> 시리즈, <개와 늑대의 시간> 등 익숙한 영화-드라마들이 기시감이 수시로 중복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필요 이상으로 잔인한 연출, 일관성없이 오락가락하는 캐릭터들, 거창하게 등장했다가 목적성을 잃고 뒤로 갈수록 황당해지는 악당들에 대한 묘사 등은 <검은 태양>이 '고유한 한국적 설정을 살려낸 첩보물'로서의 매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아쉬운 모양새로 막을 내리게 된 한계로 작용했다.
검은태양 남궁민 유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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