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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1호선 도원역에서 내려 얼마쯤 걸어가다 만난 '배다리'는 지명부터 호기심을 불렀다. 과거 인천항에서 멀지 않은 이곳으로 수로를 통해 작은 배들이 드나들면서 생긴 지명이었다. 일제가 높은 곳에 형성된 개항장을 빼앗자, 조선인들은 낮은 지역인 이곳에 마을을 만들었다. 해방 후에는 이곳을 중심으로 책방들이 들어서 지금도 헌책방들이 곳곳에 있다.
 
과거 인천항에서 수로가 이어져 배가 다니던 길이라 이런 지명이 생겼다
▲ 인천 배다리 마을  과거 인천항에서 수로가 이어져 배가 다니던 길이라 이런 지명이 생겼다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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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민 사진전이 열리는 스페이스빔은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다. 전시장 이름 대신에 '인천문화양조장'과 '책방 커넥더닷츠'라는 간판만 보였기 때문이다. 입구에 전시 포스터가 붙어 있었지만 홍보물 정도로 생각했다. 책방거리에는 이상하게 외국인들이 많았다. 코로나로 입국하는 이들도 많지 않을텐데, 그곳을 서성이는 모습이 생경했다.

길을 헤매도 찾을 수 없자, 나는 다시 지도프로그램을 확인했고, 지나쳤던 그곳이 스페이스빔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간 안으로 들어가져 사진 전시가 펼쳐졌다.

전시의 이름은 '부재의 초상'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리다'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애매한 말이다. 제목을 보고 나는 법정 스님의 책 '텅빈 충만'을 생각했다. 그리고 반야심경의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오온이 다 공함을 비추어보고)라는 부분도 생각났다.

사진가가 무엇을 그리고 싶었는가는 전시장에 들어가자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옛날 양조장을 활용해 만든 전시장은 그 자체가 시간을 품고 있었다. 낡은 이층집 구조, 뒤뜰로 난 어지러운 공간, 방치된 자전거, 공간을 뛰어다니는 고양이들까지 그랬다. 전시장은 조용했다.
 
양조장 건물을 활용한 2층 건물은 민운기 관장이 공간을 보는 눈을 잘 살린 공간이다.
▲ 인천 배다리 스페이스빔 양조장 건물을 활용한 2층 건물은 민운기 관장이 공간을 보는 눈을 잘 살린 공간이다.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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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안에 배치된 사진은 온통 회색톤으로 쉽게 죽음을 생각나게 했다. 낡은 벽에 천을 치거나 둘러서 서른 개 남짓한 크고 작은 사진을 전시해 두었다. 화분에서 말라가는 식물, 줄에 매달은 피사체들, 캔에 액체로 작업한 사진들이 그 공간 자체와 호흡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도록의 시작을 보자 작업은 더 쉽게 이해됐다. '몇 해 전에 아이를 잃었다. 아이의 죽음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 무엇도 내게 위로가 되지 않았고, 그들의 저녁 식탁 얘깃거리로 내 아이의 죽음이 오르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라고 작가는 밝혔다. 

아울러 전시가 자신의 아이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작가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우리 전부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 말함으로 떨쳐내지 않고 더욱 공고히 곁에 두고 함께 가고자 한다'라고도 적었다.
 
작가는 롤랑 바르트가 사진작업과 죽음이 닮아있다는 생각으로 죽은 식물들을 선택했다
▲ 전시회 표제작으로 있는 사진은 첫 단계인 사진작업과 죽음 작가는 롤랑 바르트가 사진작업과 죽음이 닮아있다는 생각으로 죽은 식물들을 선택했다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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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포스터 표제작인 말라죽은 식물이 있는 유리화분 사진부터 다른 사진 속 식물들 모두 말라서 생명력이 없는 것들이었다. 작가는 생활에서 만난 죽은 식물들을 통해 작업을 했다고 한다. 나 역시 죽은 화분을 아파트 화단에 버린 기억이 있다. 그때의 심경도 떠올랐다.

작가는 작품을 세 단계로 명확히 분류해 이해를 쉽게 했다. 첫 번째는 죽음 혹은 부재에 관한 것이다. 그 발상은 사진 장치가 죽음과 닮아 있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진에서 생생하게 살아있게 나올 수 있지만 이미 죽은 상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의 사망 1년 후 사진을 통해 이미 죽었으나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재현하려는 열망하는 자세에서 설명한다. '결국 모든 사진은 삶과 죽음의 사이에 존재한다'는 말을 공감한 것이다.

롤랑 바르트가 <온실사진>을 통해 '과거에 거기 있었다'라고 한 명제는 지금 없다는 사실 하나만 제외하면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는 명징한 사실을 확인해준다. 오철민 작가의 사진 죽은 식물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바르트는 '부재에 대한 인식'을 통해 광기와 연민에 빠져들고, '없다는 지금의 상황'이 유령처럼 사람들을 맴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즉 작가도 아이와 함께 한 선명한 기억으로 슬픔이 발생한다고 파악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두 번째 단계로 나간다. 작가는 '일반적으로 삶과 죽음은 반대되는 것으로 삶 뒤에 죽음이 온다고들 하지만, 삶과 죽음은 인과의 법칙에서 벗어난 우연과 불확정성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에 경계는 모호하고,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에게 기대서 함께 작동한다'라고 본다. 이 작업으로 선택한 것이 구부러진 캔을 연유 같은 액체를 담갔다가 올려서 찍은 시리즈다. 사진 속 액체는 캔에 붙어있기도 하고, 막 떨어지는 모습도 있다.
 
두번째 찌그러진 캔을 통해 형상화는 것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모습이다
▲ 두번째 단계. 죽음과 삶의 공존 두번째 찌그러진 캔을 통해 형상화는 것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모습이다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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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작가는 가장 큰 반향을 한다. 우리 사회가 죽음에 대한 언급을 터부시하고, 남겨진 이들의 슬픔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여기지만, 실제로 그것은 만져질 듯 항상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다.

사진의 세 번째 단계는 죽음과 애도의 초상이다. 죽음 혹은 부재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으며, 그것들이 남겨진 이에게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사진으로 형상화하려는 작업이다.
 
세번째 단계는 데리다의 애도를 공감하는 작업이다. 얼음이 녹으면 액자속 추모는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 세번째 데리다의 애도 세번째 단계는 데리다의 애도를 공감하는 작업이다. 얼음이 녹으면 액자속 추모는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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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선택한 것은 끈으로 그 대상들을 묶어 달아놓음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끈으로 묶은 대상은 아이가 공부하던 의자, 가지고 놀던 인형, 큐브퍼즐, 공과 운동화, 베개 등이다. 마지막은 얼음으로 묶은 초상화인데, 시간이 지나면 그 아이의 얼굴이 곧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여기서 상실로 인한 슬픔을 애도작업으로 극복하려는 프로이트를 선택하지 않는다. 자크 데리다는 타인과의 만남 자체를 애도의 시작으로 보고, 애도 자체를 거부한다. 대신에 데리다는 친구 폴 드 만의 추도사에서 그렇듯이 죽은 이에게 말을 하라고 요구하는 무모하고 비현실적인 애도를 선택한다. 오철민 작가도 사진을 통해 끝날 수 없는 슬픔에 대한 애도 대신 데리다와 같이 불가능함을 선택하는 것이다.

사진을 통해 작가가 만들어낸 형상이 얼마 만큼 관람자에게 전달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질펀한 술냄새가 자욱했을 공간에 구현된 이번 전시는 만나는 이들에게 독특한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제 배다리의 옆으로도 아파트숲이 들어서는 모습이 압도적이었다. 결국 땅에서 살아가던 영매(靈媒)들이 살아갈 공간은 갈수록 즐어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공간을 간직하고 운영하는 민운기 관장의 역할이 대담함을 느꼈다.

사진가 오철민은 성균관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한 후 미디어오늘 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다가, 독립 사진공간을 녹두를 꾸렸고, 지금은 중앙대 일반대학원에서 사진전공 박사과정을 밟으며, 작업과 전시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스페이스빔(인천 서해대로 513번길 15 인천문화양조장)에서 10월 31일(일)까지 진행된다.
 
공간에 첫을 덧대여 작품들을 형상화시키는데 공을 들였다
▲ 전시된 사진 모습 공간에 첫을 덧대여 작품들을 형상화시키는데 공을 들였다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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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 시민소통담당관. 저서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5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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