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푸른 호수> 포스터. 오른쪽 인물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각본을 쓴 저스틴 전 감독이다.

영화 <푸른 호수> 포스터. 오른쪽 인물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각본을 쓴 저스틴 전 감독이다. ⓒ 푸른호수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가운데, 한인 2세 감독 저스틴 전이 제작하고 주연을 맡은 영화 <푸른 호수>가 칸 영화제에 이어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됐다. 하지만 미 현지에서는 영화의 주제가 되는 입양인들이 오히려 영화 불매 운동에 나섰다. (관련 기사 : 한국계 할리우드 영화 '푸른 호수' 사례 도용 논란... 보이콧 움직임도)

먼저 2016년 미국에서 추방된 한인 입양인 아담 크랩서(한국명 신상혁)는 지난달(9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는 수익이나 수상, 눈물을 짜내기 위해 만들어진 할리우드 캐릭터가 아니다"라며 저스틴 전이 영화 제작을 위해 자신에게 접근했고 자신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영화화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저스틴 전 감독 측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영화 <푸른 호수>는 한 사람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어 미 현지에서 입양인 시민권 획득을 위한 입법 활동을 벌이고 있는 입양인 단체 '정의를 위한 입양인(Adoptees For Justice)'도 지난달 29일 "영화 주인공 안토니오가 입양된 나이, 추방 당시 아내가 임신했던 사실, 양부모의 폭력 등 아담 크랩서의 삶과 자세한 사항까지 닮아 있다"며 "누군가의 이야기를 허락 없이 사용한다는 것은 무례하고 착취적이다"라며 영화 상영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의 입장을 듣기 위해 지난 15일 '정의를 위한 입양인'의 한인 활동가들과 화상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에 참여한 베키 벨코어는 정의를 위한 입양인의 활동가이자 이민법 개혁 운동을 펼치고 있는 미주한인교육단체협의회(NAKASEC) 사무국장이다. 1973년 1세 때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백인 가정으로 입양됐다. 어떻게 입양됐는지 생물학적 부모가 누구인지에 관한 기록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입양인 태니카 제닝스는 1985년 청주에서 태어나 생후 3개월 때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뉴저지에 있는 백인 가정으로 입양됐다. 3~4년에 한 번씩 한국을 방문하고 있으며 한국어를 읽을 줄 몰라 충주를 청주로 알고 방문했었다고 한다.

"저스틴 전과 포커스 피처스 대응 방식 잘못돼"
 
 입양인 권익 단체 '정의를 위한 입양인'이 이달 초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한 영화관 앞에서 영화 <푸른 호수> 불매 운동을 벌이고 있다.

입양인 권익 단체 '정의를 위한 입양인'이 이달 초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한 영화관 앞에서 영화 <푸른 호수> 불매 운동을 벌이고 있다. ⓒ 황상호

 
- 영화 <푸른 호수> 불매운동은 왜 하는 것인가.
베키 벨코어 : 영화 주인공 안토니오와 추방 입양인 아담 크랩서의 이야기는 매우 닮았다. 주인공 안토니오가 한국계 입양인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이민세관국이 개입할 당시 아내가 임신했던 사실, 배우자의 전 남편의 첫째 딸을 친자식처럼 아낀 점, 범죄 여부, 양부모의 폭력 등 아주 자세한 사항까지 닮아있다. 저스틴 전 측은 영화 제작 전 아담 크랩서에게 접근했지만 아담 크랩서는 영화 제작에 동의한 적 없다. 이미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의 이야기를 동의 없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 불매 운동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나.
베키 벨코어 : 영화 <푸른 호수>가 입양인 아담 크랩서의 이야기를 도용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두 번 발표했다. 이달 초 시카고에 있는 영화관에서 한 차례 피켓 시위를 했다. 지난달 20일에는 제작사 포커스 피처스와 한 차례 회의를 했다. 영화 끝에 '정의를 위한 입양인(Adoptees for Justice)'이 영화를 지지하고 있다고 크레딧이 있어 그것을 지워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추가적인 조치를 기대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다. 다른 입양인 그룹에서 영화 상영 중단을 위한 온라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한인 입양인 베키 벨코어다. 입양인 권익단체 '정의를 위한 입양인' 활동가이자 이민자 권익 활동을 하고 있는 미주한인교육단체협의회 사무국장이다.

한인 입양인 베키 벨코어다. 입양인 권익단체 '정의를 위한 입양인' 활동가이자 이민자 권익 활동을 하고 있는 미주한인교육단체협의회 사무국장이다. ⓒ 황상호

 
- 저스틴 전 감독은 이번 문제가 촉발되기 전, 미국 언론에 아담 크랩서의 이야기를 참고했다고 몇 차례 인터뷰했다. 하지만 이번 이슈가 터진 뒤, 현재 저스틴 전 감독은 다른 입양인들과 단체, 변호사에게 컨설팅을 받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태니카 제닝스 : 저스틴 전과 포커스 피처스의 대응 방식은 아주 잘못됐다. 우리는 대화를 요구했지만 제대로된 응답이 없었다. 대신에, 우리가 영화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자 그들은 다른 몇몇 입양인과 컨설팅했다고 반박했다. 그 입양인들은 괜찮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런 방식은 옳지 못하다. 우리는 수 년 동안 아담 크랩서와 같이 시민권이 없는 입양인이 시민권을 받을 수 있도록 입법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제기한 문제에 대한 사과 없이 오히려 입양인 단체를 갈라놓고 있다. 우리끼리 싸움을 붙이고 있다. 이것은 아주 해로운 방식이다.

- 일각에서는 과정에 일부 문제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입양인의 부당한 처우를 알리는 계기가 된 것 아니냐고 반론한다.
베키 벨코어 : 물론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뭘 위한 영화인가. 이 영화가 실패했다고 보는 이유는 관람객들이 집에 돌아간 뒤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우리 입양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화 끝에 자막으로 실제 추방당한 사람의 사진과 수치 등을 보여준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관람객이 입양인을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알려달라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슬라이드 하나만 넣어주면 된다.

- 특정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 살해 문제를 다룬 영화 <윈드리버>에서도 마지막에 자막을 이용해 현 실태를 고발했다. 그 영화에서도 관람객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행동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주 크게 와닿았다.
베키 벨코어 : 아메리칸 원주민 커뮤니티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그들도 커뮤니티가 파괴되고 있고 보호받아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사회 구조적인 피해를 당한 소수계 커뮤니티의 이야기를 다룰 때는 영화 제작자가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관해 관심을 가질 책임이 있다. 그게 아니라면, 왜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가? 영화의 목적이 뭐냐, 목표가 뭐냐?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제시해야 할 것 아닌가.

나는 저스틴 전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어서 전국적인 관심을 받고 아카데미상을 받고 싶어 하는 거라고 본다. 이 영화는 입양인에게 어떤 실체적인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오로지 저스틴 전만을 위한 영화다.

저스틴 전은 입양인이 아니다.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거라면 뭘하든지 상관 없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빌렸다. 미국의 잘못된 제도 때문에 가족과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사람들이다. 아담 크랩서는 이미 많은 고통을 겪었고 그의 사연은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여러 입양인이 언론에 노출된 뒤 좋거나 나쁜 반응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저스틴 전은 레드카펫을 밟고 아시아 유명인들과 시간을 보내며 유명해졌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저스틴 전 사과해야"

- 저스틴 전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베키 벨코어 : 좋은 사례가 있다. 지난 6월 뮤지컬 해밀턴의 영화 버전인 <인 더 하이츠(In The Heights)>가 상영된 뒤, 영화제작사는 유색인종 커뮤니티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제작자가 커뮤니티에 있는 아프리칸 라티노계를 고려하지 않고 밝은 톤의 피부색을 가진 배우만 출연시켰기 때문이다. 이에 공동제작자인 린 마누엘 미란다는 잘못을 인정하고 즉각 사과했다. 

저스틴 전도 사과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럴 때 가장 좋은 것이 잘못을 인정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저스틴 전은 자신이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게 더 큰 실수다.

- 영화를 떠나, 입양인으로서 자신의 이야기가 도용된 적이 있나.
태니카 제닝스 : 주류 백인 미국 부모들은 한인 입양아에 대해 가난 때문에 부모의 버림을 받고 고아가 됐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사랑스러운 크리스찬 미국 가정으로 입양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고정된) 이야기를 이용해 입양 단체를 통해 우리를 입양하고, 미국 정부는 이 이야기를 이용해 입양을 촉진한다. 모든 입양인이 영화 같은 삶을 살지는 않지만 우리의 동의 없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는 한다. 그런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영원히 바꿔 놓게 된다.
 
 입양인 권익 단체 '정의를 위한 입양인' 활동가 태니카 제닝스다. 1985년 생후 3개월 때 충북 청주에서 미국 뉴저지로 이민했다.

입양인 권익 단체 '정의를 위한 입양인' 활동가 태니카 제닝스다. 1985년 생후 3개월 때 충북 청주에서 미국 뉴저지로 이민했다. ⓒ 황상호


베키 벨코어 : 태니카가 말한 것처럼 우리 이야기는 입양 단체, 한국 정부, 미국 정부, 입양인 부모에 의해 전해지고는 한다. 그건 정확하지도 않다. 그들은 입양을 아름답고, 완벽하게 아름다운 일처럼 보이게 하며, 우리가 운 좋게 살아남은 것처럼 묘사한다. 하지만 나는 얼마나 많은 입양인이 입양 부모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많은 불합리한 점이 왜곡된 이야기에 의해 덮여진다.

- 2001년 2월 기준, 만 18세 이상인 입양인의 경우 부모가 시민권을 주지 않으면 합법 체류 신분 없이 살아가야 한다. 이를 개혁하기 위한 법이 의회에 몇 차례 올라갔지만 무산됐고, 다시 진행되고 있다.
태니카 제닝스 : 현재 '2021년 입양인 시민권 법안(H.R.1593. Adoptee Citizenship Act of 2021)'이 연방 하원에 올라가 있다. 입양 확정 시점과 관계 없이 일정 요건을 갖추면 입양인에게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도록 하는 법이다. 현재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 의원들에게 지지를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양당 하원 의원으로부터 53명의 지지를 받았다. 우리는 범죄 경력이 있는 입양인도 시민권을 받을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이것이 난관이다. 하원을 통과하면 상원 통과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 미주 한인 또는 한국에서 거주하는 한국인이 도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태니카 제닝스 : 미주 한인들께서는 해당 법안이 연방 하원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연방 하원 의원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운동에 동참했으면 좋겠다. '입양인 시민권을 위한 연합' 웹사이트(www.allianceforadopteecitizenship.org)에 들어가서 간단한 인적 사항만 기록하면 거주지 연방 상원의원 2명과 하원의원, 연방 상원 법사위원회 의장 딕 더빈에게 각각 편지가 전송된다. 1분이면 된다.

한국인들에게는 해외에 있는 입양인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하고 싶다. 나도 국제 입양인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1980년대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됐다. 여전히 미국에서는 불합리한 제도로 인해 입양인이 가족과 뿔뿔이 흩어지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기부(adopteesforjustice.org)도 좋은 방법이다. 

- 마지막으로 할 말은.
베키 벨코어 : 영화 <푸른 호수>는 피해 당사자를 고려하지 않고 만든 영화다. 이 영화의 목적은 오로지 저스틴 전 자신만을 위한 것이다. 영화를 보지 말아달라. 저스틴 전과 포커스 픽처스는 반드시 사과해야 한다. 

태니카 제닝스 :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 이러한 이슈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피해 당사자는 어마어마한 상처로 고통받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인들은 그것을 상업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 커뮤니티는 판매용이 아니다.
 
 2019년 10월 이민법 개혁을 요구하는 한인 이민자들이 미국 동부 뉴욕에서 워싱턴 DC까지 18일 동안 도보행진을 했다. 한인 입양인들도 이민법 개혁을 요구하며 함께 행진했다.

2019년 10월 이민법 개혁을 요구하는 한인 이민자들이 미국 동부 뉴욕에서 워싱턴 DC까지 18일 동안 도보행진을 했다. 한인 입양인들도 이민법 개혁을 요구하며 함께 행진했다. ⓒ 미주한인교육단체협의회

푸른 호수 입양인 저스틴 전 BLUE BAYOU 포커스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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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트레블러17 대표 인스타그램 @rreal_la 전 비영리단체 민족학교, 전 미주 중앙일보 기자, 전 CJB청주방송 기자 <오프로드 야생온천>, <삶의 어느 순간, 걷기로 결심했다>, <내뜻대로산다> 저자, 르포 <벼랑에 선 사람들> 공저 uq26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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