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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각종 국가 기구 홈페이지 링크가 열거된 사이트. 한국에선 접속이 차단된 사이트다. 조선민족보험총회사, 조선민족유산보호기금, 조선장애자보호연맹 등의 기구 링크도 등록돼있다.
 북한의 각종 국가 기구 홈페이지 링크가 열거된 사이트. 한국에선 접속이 차단된 사이트다. 조선민족보험총회사, 조선민족유산보호기금, 조선장애자보호연맹 등의 기구 링크도 등록돼있다.
ⓒ 사이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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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일 낮 12시 4분] 

"아마 한국이 전 세계에서 북한 연구가 가장 힘든 곳이 아닐까 싶다." 

독일 청년 마틴 와이저(34)씨는 대한민국 국가보안법의 '피해자'다.

지난 10여년 간 한국에서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치를 공부하고 있는 그는 한국엔 "학문과 언론의 자유가 없다"고 말했다. 

와이저씨는 10여년 전 한국으로 유학을 왔다. 독일 대학을 다닐 때부터 한국 정치를 공부했기에 자연스런 선택이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 대학원에 입학한 그는 2014년 북한의 인권 정책 변화에 대해 석사 논문을 썼다. 졸업 후 지금까지 북한 정치를 공부하는 독립 연구자로 정착해 일하고 있고, 한국에서 가정을 꾸려 생활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 공부하러 왔지만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북한에서 생산된 자료라면 도서관, 대학, 인터넷 등 공간을 막론하고 검열과 통제에 부딪혀 자료 하나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북한 도서 대출 불가능, 복사도 금지 

그는 대학원 시절 힘겹게 공부했던 일화를 꺼냈다.

"첫 번째 걸림돌은 도서관이었다. 모든 도서관은 특정한 허가 절차가 필요한 '특수자료실'에 북한 서적을 두는데 대출이 불가능했다. 특정 도서를 보려고 왕복 2시간이 걸리는 곳을 찾아도 저녁 6시엔 나와야 했다. 공부를 하려면 책을 복사해야 했다. 그런데 일부 대학 도서관은 복사마저 금지했다. 복사본을 2주 안에 돌려줘야 하는 곳도 있었다. 사진을 찍으면 난리가 났다. 몇 년 전까지 서울대학교는 하루에 북한 도서 10권까지만 열람을 허용했다."

더 큰 문제는 온라인 접근권이었다. 북한 도메인 사이트는 일절 차단됐다. 한 사회를 파악하는데 기본인 북한 정부기관 사이트와 언론에조차 접근할 수 없었다. '조선신보'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같은 일본 도메인 사이트도 차단 대상이었다.

"사이트 차단은 정말 큰 걸림돌이다. 온라인 검색은 공부나 조사의 기본이다. 누가 이 행사에 나왔는지 간단한 사실을 확인하려고 해도 여러 언론 등을 교차확인해 봐야 한다. 무엇보다 안보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는 사이트까지 몽땅 차단됐다. '조선료리협회(요리협회)', '조선관광' '조선장애자보호련맹 중앙위원회' '조선민족유산보호기금' 등이 그렇다. 심지어 항공사 고려항공 사이트도 접속 못한다. 최신 법령이나 법학자 연구서를 올려둔 사이트 자료가 삭제되는 경우도 있지만 차단돼 접근할 수 없었던 적도 있다. 그렇다고 한국 정부는 이를 제공하지 않는다. 한번 문제를 겪고 나서 직접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워 자료를 모으고 있다."

부족한 자료는 연구 질에도 영향을 준다. 와이저씨는 "남한 도서관에 들어오지 않은 북의 자료가 당연히 많다"며 "사서나 당국 관계자들도 자료를 모으는데 무관심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7년 10년 전 <월간조선>이 '주민등록사업참고서' 북한 서적을 입수해 보도한 기사를 보고 서적을 수소문했으나 당시 이를 확보한 도서관은 없었다. 그는 취재 기자에게 직접 연락해서야 관련 자료를 구할 수 있었다. 와이저씨는 이 내용을 다른 학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자료를 CD에 복사해 통일부를 찾아갔다. 그러나 "담당자는 출판사, 저자, 인쇄발행날짜 등이 나온 마지막 페이지가 없다며 통일부 자료센터에서 관리하는 게 어렵다"고 답했다. 

국가인권위만 3번 찾았지만... 
 
2016년 6월 재차 인권 침해 구제 신청을 접수한 마틴와이저씨. 사진은 사건이 방송통신위원회로 이송됐다는 통보서.
 2016년 6월 재차 인권 침해 구제 신청을 접수한 마틴와이저씨. 사진은 사건이 방송통신위원회로 이송됐다는 통보서.
ⓒ 마틴 와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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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외국인인 그는 국가인권위를 찾았다.  2015~2016년 동안 세 차례나 인권침해 진정을 낸 것. 첫 진정은 2015년 1월이었다. "북한 자료에 대한 접근제한은 부당하다"며 "국가정보원이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국내 온·오프라인 상의 북한 관련 자료에 대한 정보 검색을 차단하고 접근을 제한한 건 알권리 침해"라고 주장했다.

조사는 1년 6개월 넘게 진행되지 않았다. 와이저씨는 당시 사무관의 권고로 '차별 구제' 신청도 추가로 냈으나 인권위는 몇 달 후 "사건이 차별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각하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법무부에 전화를 걸어 '한국 정부의 자료 접근 제한 조치가 각종 인권 조약을 위반한다'고 직접 따져보기도 했다. 

와이저씨가 2016년 6월에 낸 세 번째 진정은 4년 넘게 무소식이다. 첫 진정이 1년 6개월 넘게 결과가 나오지 않자 이를 취소하고 다시 구제 신청을 냈다. 당시 사무관이 '더 설득력이 강한 사례를 모아 다시 신청하라'고 권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권위는 이듬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 이송했다"는 통보를 끝으로 지금까지 어떤 연락도 주지 않았다. 방심위 역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학자·언론인마저 순응..."한국 언론 오보 심각"
 
2020년 5월 통일TV 유튜브에 출연한 와이저씨.
 2020년 5월 통일TV 유튜브에 출연한 와이저씨.
ⓒ 통일TV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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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저씨는 북한에 대한 한국 언론의 무지와 무성의함에도 비판적이다. 알 권리가 제한된 상황을 고려해도 왜곡이나 오보가 지나치게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관지 사진에 특정 인사가 잘려서 보이지 않았을 뿐인데 '돌연 사라졌다'고 과도한 해석을 부여하거나, 이미 수년 전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확인하지 못하고 '새로운 해설이 등장'했단 식으로 왜곡하는 보도가 잦다"고 지적했다. "VPN(IP 주소 가상화를 통한 가상사설망)으로 다른 보도나 논문을 교차 확인 검색만 해봐도 방지할 수 있는 오류인데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5월 '김일성 축지법' 왜곡 보도가 가장 큰 충격이었다. 노동신문(조선노동당 기관지) 기사에 '축지법이 사실 가능하지 않다'는 언급이 나온 걸 보고 한국 언론이 일제히 "북한이 '김일성 우상화'에 썼던 '축지법'을 처음 부정했다"며 배경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와이저씨는 "노동신문 사이트에서 '축지법' 단어만 검색해봐도 최소한 2015년부터 같은 내용이 거듭 다뤄진 사실을 알 수 있다"며 언론이 '북한 체제 희화화'에서도 벗어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한국 언론은 북한 주민들이 여전히 '김 주석이 항일운동 때 정말 축지법을 썼다'고 믿고 있다고 보는데 틀렸다"며 "이미 북한 사회는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상징으로 인지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주요 언론사 대여섯 곳의 기자에게 '기사를 정정해야 한다'고 메일을 보냈으나 답을 준 기자는 한 명도 없다. 1년이 더 지났지만 정정된 기사도 없다.

와이저씨는 지금도 다양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엔 통일TV의 유튜브에 출연해 한국 언론의 북한 기사 오보 문제를 비평했다. 지금은 'NK NEWS'의 프리랜서 기자로 북한 관련 글을 정기적으로 쓴다. 최근엔 지난 4월 발간된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가 이적표현물이란 이유로 유통이 중단된 사태를 기사화해 비판했다. 와이저씨는 한국사회의 국보법 남용에 대해 "시대에 뒤떨어지고, 불필요하고, 혼란스럽고, 법적으로 모호하기까지 하다"고 지적했다.

태그:#국가보안법, #마틴_와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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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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