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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에서 신체 특정부위를 찍은 사진이 나왔음에도 불법촬영을 인정하지 않은 검찰의 불기소결정서.
 휴대폰에서 신체 특정부위를 찍은 사진이 나왔음에도 불법촬영을 인정하지 않은 검찰의 불기소결정서.
ⓒ 피해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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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A씨(여)는 연신 "저 같은 사례가 일반적인가요?"라고 되물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9월 A씨는 "휴대폰으로 동의하지 않은 성적인 상황에 대한 영상을 촬영했다"며 연인이었던 B씨(남)를 경찰에 고소(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카메라 등 이용촬영)했다. 경찰은 B씨의 휴대폰을 압수해 데이터 복원 작업을 거쳤고, 고소 대상인 영상은 나오지 않았으나 다른 날짜·장소에서 A씨의 특정 신체부위가 찍힌 사진이 발견됐다.

그런데 이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B씨를 재판에 넘기지 않았다.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음에도, 서울서부지방검찰청은 고소 후 11개월 만인 지난 8월 두 사람이 연인 관계였던 점을 거론하며 사진이 실수로 촬영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판단에 A씨는 "검찰이 B씨의 주장만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수사 과정에서 B씨는 "A씨와 '셀카 놀이'를 하며 여러 차례 셀카를 찍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갑자기 몸을 숙이며 자신에게 다가와 실수로 피해자 사진이 촬영된 것일 뿐"이란 주장을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의도적으로 해당 사진을 촬영한 사실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하는 취지다.

검찰이 작성한 불기소결정서엔 B씨의 주장을 상당 부분 받아들인 내용이 담겨 있다.

"당시 피의자(B씨)와 피해자(A씨)는 연인 관계였던 점, 수회 셀카를 찍은 것으로 보이는 점, 촬영 장소 및 해당 사진의 각도 등을 고려하면 몰래 휴대전화를 들어 해당 사진을 촬영하긴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하면 당시 수회 셀카를 찍는 과정에서 해당 사진이 실수로 촬영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사진만으로는 피의자에게 불법촬영의 고의가 있었음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연인이라고 불법촬영까지 허용하나"
 
서울서부지방검찰청(자료사진).
 서울서부지방검찰청(자료사진).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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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B씨 주장처럼) 몸을 숙이면서 다가간 적이 없고, 그 장소는 군부대 면회장으로 공개적인 장소였기 때문에 민간인인 제게 편한 장소도 아니었다. '놀이'라고 말할 만큼의 마음 편한 즐거운 상황이 아니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A씨는 기자에게 해당 사진을 내보이며 "만약 (통상 셀카를 찍을 때 활용하는) 전면카메라로 찍었다면 제가 모르게 찍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도다. 저는 찍힌 지도 몰랐던 사진이고 제가 모르게 후면카메라로 찍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기자가 확인한 사진에는 A씨의 얼굴 부분이 잘린 채 위에서 아래로 찍은 것으로 보이는 신체 특정부위가 상당히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 A씨는 "사진 중앙에 신체부위가 정확히 나와 있고 사진 초점이 흔들리지도 않았다"라며 "검찰이 이를 실수로 촬영했다고 본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A씨는 서울고등검찰청에 항고장을 제출하고 사건을 다시 판단해달라고 요청했다.

A씨의 법률대리인인 서혜진 변호사는 "셀카를 찍는 과정에서 실수로 촬영될 수도 있었을 거란 검사의 근거를 반대로 해석해보면 피해자가 촬영 상황을 알고 용인했다는 의미인데, 피해자는 (해당 사진처럼) 얼굴을 자르고 신체부위만 부각되는 사진의 촬영을 동의한 사실이 결코 없다"라며 "사진의 각도만 놓고 본다면 피해자가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몰래 촬영할 수 있는 사진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 상식과 경험칙에 부합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셀카라면 피해자와 피의자 2명이 함께 사진에 등장할 수 있을 정도의 각도가 나와야 하고 정말 우연히 찍힌 사진이라면 피해자의 얼굴이 함께 사진에 나오거나, 사진의 초점이 맞지 않거나, 사진의 각도가 수평을 이루지 못하는 등의 모습이 나와야 일반적"이라며 "피의자의 의도 없이 우연히 찍힌 사진이 아니며 몰래 고의를 가지고 촬영한 것으로 봐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서 변호사는 "피해자가 애초 피의자를 고소한 이유는 성적인 상황을 피해자 몰래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촬영한 사건 때문"이라며 "비록 동영상이 복구되지 않아 증거가 없어 불기소 처분을 받았으나 평소 몰래 성적인 상황을 촬영하려던 피의자의 성향을 고려해 본다면 (해당 사진을) 습관적으로 촬영했을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불법촬영은 모르는 사람에 의해서도 일어나는 범죄이지만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도 매우 많이 일어나는 범죄"라며 "당시 두 사람이 연인 관계였고 셀카 놀이를 하고 있었던 상황이란 점은 피의자의 불법촬영 고의를 상쇄할 만한 사정이 전혀 되지 못한다. 누군가와 사귄다고 해서 그 사람의 불법촬영까지 허용하겠다는 의사를 지닌 사람은 없을 것"라고 덧붙였다.

"결별에 대한 복수"라는 피의자... 피해자 "터무니 없는 말"

한편 B씨는 A씨가 최초 고소한 '영상' 건에 대해 "(제가) '찍고 바로 지우자'고 하자 A씨가 동의해 촬영을 시작했다"며 "촬영을 마친 후 A씨와 함께 시청했고 그 자리에서 영상을 삭제했다"고 수사기관에 진술했다. 또 "사건 당일 불편한 순간이 없었고 A씨를 극진히 대접하는 하루였다"며 "피해자가 결별에 대해 복수를 하고자 고소를 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에 A씨는 "이전부터 B씨가 영상 촬영을 자주 요구했고 '찍지 않는다'고 하면서 휴대폰만 들고 촬영하는 듯한 행동을 반복했었다. 사건 당일도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영상 촬영을 종료하면 들리는 '띠링' 소리에 실제 촬영한 것을 알게 됐다"이라며 "삭제하겠다는 말만 들었을 뿐 평소 B씨가 '나를 믿지 못하냐'는 이유로 휴대폰을 보지 못하게 해 실제로 영상이 삭제됐는지 알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 영상을 바로 확인하고 그 즉시 헤어지는 완벽한 대처를 상상하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선 그렇지 못했다. 상대방은 제가 모르는 사람이 아닌 아는 사람이었고 한때 가까운 사이었기 때문에 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고 막막한 상황이었다"라며 "헤어지는 과정에서 상해 사건이 발생해 그 사건과 관련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던 중, 불안한 마음에 영상도 확인해달라고 요청하자 담당 형사가 고소 절차를 안내해줘 고소에 이르게 됐다. 복수심으로 고소를 진행했다는 건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덧붙였다.

태그:#불법촬영, #검찰, #불기소, #서울서부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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