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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사는 자취생 청년이지만, 먹는 일까지 '대충'할 순 없습니다. 나를 위해 정성스레 차려낸 밥 한 그릇에 고단함이 녹고, 따스한 위로를 얻기도 하니까요. 씩씩하게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선사하는 든든한 1인분 음식들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오늘 서울 아침 최저기온이 0도를 기록할 전망입니다. 10월 중순을 기준으로 64년 만에 가장 추운 날씨가 찾아오겠습니다."

며칠 전, 아침 라디오에서는 때 이른 한파 소식을 전했다. 저번 주엔 분명 반팔을 입었는데, 오늘은 패딩을 꺼내 입었다. 가을 트렌치코트는 옷장 속에서 나와보지도 못하고 다시 꼬박 1년을 기다리게 생겼다.

가을이라는 계절을 통째로 빼앗겼다. 뜨거운 태양 아래 땀 흘리며 보냈던 여름에 대한 보상으로 선선해진 가을바람을 기대했었는데, 눈치 없이 빨리 찾아온 한파 때문에 옷을 여미고 종종걸음으로 걷는다.

그러다 문득, 가을을 놓친 건 갑자기 찾아온 추위 때문이 아니라 여유 없이 살았던 나 때문 아닐까 생각했다. 

가을을 잃어버렸다 

평일 출근길, 습관처럼 귀에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에 눈을 가두며 걷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회사에서는 창 밖 풍경은커녕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하루를 보냈다. 그런 하루 끝에 해가 지고 나서야 퇴근을 했으니 가을 하늘이 파랗고 높아졌다 한들 보지도 못하고, 나뭇잎의 색이 변했다 한들 알아채지 못한 게 어쩌면 당연하다.

주말에도 여유는 없었다. 근래 한 달간 주말엔 밀린 일 때문에 회사에 출근하거나, 가족 행사를 위해 고향에 다녀오거나, 친구들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나면 눈 깜짝할 새 일요일 저녁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주말은 소중했지만 몸과 마음은 이상하게 지쳐갔다. 평일에도, 주말에도 온전히 나를 위해 보내는 시간이 없었다. 
 
원룸 창 밖으로 보이는 감나무
▲ 원룸 창 밖으로 보이는 감나무 원룸 창 밖으로 보이는 감나무
ⓒ 이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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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곳은 서울의 한복판, 그중에서도 빌라들이 밀집해 있는 골목이다. 이곳에서는 단 한 평의 공간도 허투루 쓰이지 않기에 흙 위에 심어진 나무 한그루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내 방에서는 창 밖으로 감나무 한그루가 보인다.

출근 준비를 하며 옷을 고르다가 창 밖 감나무를 보고 마음이 울컥했다. 계절이 변하는 것도 모르고 가을을 놓쳐버린 것이 속상했었는데, 예쁘게 익어가는 감을 보니 그제야 완벽한 가을이었다.

오늘은 가을을 제대로 즐겨보리라 마음먹었다. 출근하는 길 스마트폰은 가방에 넣고 대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는 높은 하늘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렀다. "가을엔 뭐가 제철이에요?" 묻는 내 말에 야채가게 아주머니는 가을이 되면 땅에 사는 뿌리 채소들이 달고 맛있어진다고 하셨다. 겨울을 나기 위해 땅 속의 영양소들을 머금기 때문이라고. 영양소로 꽉 채워졌을 알배추 한 통을 사기로 했다.

알배추로 어떤 음식을 만들까 고민하다가, 추워진 날씨에 따뜻한 전골 생각이 자연스레 났다. 이름하여 '알배추 전골'. 오래전 티브이에서 우연히 보게 된 레시피인데 갑자기 추워진 요즘 같은 날씨에 딱이다.

나를 귀하게 만들어주는 한 그릇 
 
제철 알배추 안에는 돼지고기 뒷다리살과 간장양념된 표고버섯이 들어있어요.
▲ 가을 제철 알배추로 만든 전골 제철 알배추 안에는 돼지고기 뒷다리살과 간장양념된 표고버섯이 들어있어요.
ⓒ 이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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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배추 전골> 만드는 법

준비물 : 알배추, 돼지고기 뒷다리살(얇게), 표고버섯, 부추, 국간장, 소금 후추 참기름 약간

1) 표고버섯을 얇게 채 썰고, 썬 표고버섯에 참기름, 간장, 소금 후추 등을 넣고 밑간을 해주세요.
2) 돼지고기에도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해주세요.
3) 끓는 물에 알배추를 한 장씩 살짝 데쳐주세요.
4) 데친 알배추 위에 돼지고기와, 양념된 표고버섯을 올려 말아줍니다.
5) 말아 준 배추롤이 터지지 않게 데친 부추로 잘 묶어주세요.
6) 끓는 물에 배추롤을 넣고, 국간장 1스푼과 함께 고기가 익을 때까지 끓여주면 끝!


나를 위해 요리하는 시간은 참 소중하다. 표고버섯을 썰기 전에 향긋한 버섯의 향기를 맡고, 속이 꽉 찬 알배추를 만지며 가을이 왔음을 새삼 느끼는 그 과정이 좋다. 데친 배춧잎 위로 돼지고기와 양념된 표고버섯을 올리고 정성 들여 말고, 부추로 매듭을 짓는 그 번거로움이 좋다.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대접할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게 된다. 나를 위한 음식은 나를 귀하게 만들어준다.

배추는 향긋하고 달달했다. 알배추를 데친 물을 그대로 육수로 사용했더니 국간장 한 스푼만 넣은 국물에서 깊은 맛이 났다. 육수를 그대로 품고 있는 배추를 한 입 베어 물면 따뜻한 육수가 입 안 가득 퍼진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움츠렸던 몸이 펴지는 기분이다.

사실 이 음식의 치트키는 간장 양념이 밴 표고버섯이다. 배추를 베어 먹다 보면 중간쯤 감칠맛이 나는 통통한 표고버섯이 씹히는데, 그 오독한 식감과 향긋함이 음식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가을을 놓쳐버렸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드는 날 알배추 전골을 추천하고 싶다. 향긋한 표고버섯과 달달한 알배추로 만든 뜨끈한 전골로 완벽한 가을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www.brunch.co.kr/@silverlee7957)에도 중복하여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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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오후에 마시는 아이스바닐라라떼만큼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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