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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을 나는 뿌리 (시∙해림 한정선 作)

죽을 만큼 목이 탔는지 땅 밖으로 기어 나온 굵은 소나무 뿌리들이
너럭바위 틈새로 비집고 구불구불 뻗은 모양새인 청계천 먹자골목
어른 팔 세 폭 쯤 되는 비좁은 돼지곱창 집에,

비둘기 깃털 머리를 한 아재 몇이 소주병 터는 엄동설한 어스름 녘
달곰한 소주 들이마시고도 한속이 드는지 오스스 어깨를 떤
아재가 부속품 납품일하는 앞자리 친구에게
요샌 좀 나아졌냐
근근이 버티고 있다

늦은 밤, 얼근하게 목을 축인 아재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소 대창 같은 골목을 나갔다. 갈증 난 나무 뿌리들이 밖으로 뻗어 나왔다가 다시 수맥을 찾아 땅을 후벼 들어가듯
아재들은 지하도 계단을 비척대며 내려갔다.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굵은 겨울 뿌리들이 따로 따로 갈라지기 전에
겨울 잘 넘기고 봄에 보자.
 
홍소안 화가는 30년 이상 일편단심 소나무만 그려왔다.

예로부터 소나무는 자식이 태어날 때 볏짚 새끼줄을 걸어놓고 건강과 장수를 빌던 나무로, 먹거리와 땔감 등 의식주 재료로 쓰이는 것은 물론, 죽을 때는 관으로 쓰이는 우리의 전통적 삶과 친근한 나무이다.

여전히 소나무는 전국 산야에 서식하며 애환 많은 우리네 삶을 위로해주고 희망을 준다. 홍소안 화가는 소나무를 통해 한국인의 정서와 인간의 내면적 굴절과 생멸(生滅)을 표현하고자 오랜 시간 분투해왔다.
 
광목천, 아크릴 혼합재료, 150x109cm
▲ <겨울을 나는 뿌리>(2017) 광목천, 아크릴 혼합재료, 150x109cm
ⓒ 홍소안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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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국의 소나무 - 목신의 사랑' 전시와 함께 발간하는 도록 겸 시화집 <한국의 소나무-목신(木神) 사랑>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사계절을 배경으로 한다. 들판, 강둑, 산비탈, 바위 언덕, 바닷가 기슭 등에 다채로운 모습으로 뿌리내리고 있는 221편의 소나무 작품(2011~2021作)이 수록되어 있다.

홍소안 화가의 각별한 화우(畵友)인 해림(海林) 한정선 작가의 그림평론과 시(詩) 24편이 실려 있어 작품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시화집의 작품평론에서 한정선 작가는 홍소안 화가를 '소나무를 그리면서 소나무를 닮아가는 화가. 전국을 누비며 마음에 드는 소나무 풍경을 화폭에 옮기는 화가의 작업은 사실 자신을 나무로 심는 일과 같다'라고 소개한다.

또한 '화가가 그려내는 표상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자기 존재를 규정하고 설 자리를 찾아 스스로 끊임없이 묻지 않으면 안 되는 실존적 존재 의식을 드러낸다. 폭풍속에 선 들판의 소나무와 비탈에 선 소나무들은 삶의 목적과 이유와 방법, 그리고 주체적 삶에 대한 묵음(黙吟)처럼 보인다. 이 묵음은 우리 안에 자존(自尊)의 의미를 사유하는 씨앗을 떨어뜨린다'라고 평한다.  

홍소안 화가도 자신의 작품에 대해 도록에서 '내 작품 속 소나무는 한겨울 눈보라를 이겨내고, 폭풍우와 찬이슬을 묵묵히 견뎌내고 늘 나와 함께 변함없이 더 푸르고 푸르다. 작가로서의 내 삶도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세상 풍파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외로이 홀로 서서 노력하는 작업의 열정은 소나무의 강인한 에너지와 다름이 아닐 것이다'라고 말한다.

소나무와 소나무 그림이 전부가 된 홍소안 화가의 목신(木神) 사랑. 소나무 화가로 질긴 뿌리를 뻗고 있는 그의 작품은 오는 10월 23일부터 31일까지 서울 한전아트센터 1층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통해서 감상할 수 있다. 도록 겸 시화집(詩畵集) <한국의 소나무 - 목신(木神) 사랑>도 개인전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태그:#홍소안, #해림한정선, #한국의소나무, #한국의소나무목신사랑, #소나무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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