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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에서 역사를 전공했고, 지금 다시 대학원에 들어와 또 역사를 공부하고 있다. 석사과정을 'History Master' 과정이라 부르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겐 너무나도 과분하고 두려운 표현인 것 같다. 공부하면 할수록 내 부족함에 부끄러운 탄식만 쏟아지기 때문이다.

특히나 한반도를 벗어나 펼쳐지는 세계사는 그 광활한 영역과 시간의 크기만큼이나 나에겐 막막함 그 자체였다. 물론 수능 때 세계사 1등급을 받기는 했지만, 그때 배운 세계사는 '넓고 얕은' 지식에 불과했다. 그중에서도 인명이나 지명이나 발음하기도 까다롭고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서양사 파트는 언제나 골칫덩이였다(부끄럽지만 학부 때도 서양사 과목은 늘 죽을 쑤었다).

그러나 명색이 History Master 과정을 밟고 있는 내가, 아무리 한국사 전공이라지만 그래도 세계사에 대해 무지몽매해서야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전공은 전공대로 공부하면서도 틈틈이 세계사 관련 책들을 찾아보며 역사를 폭넓게 공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시중에 나온 여러 책들을 읽어봤지만, 역시 유시민 작가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독보적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을 고등학교 2학년 무렵에 처음 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읽고 싶어서 읽은 책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필독도서'로 강제로 읽히는 바람에 집어 든 책이었는데, 유시민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잘 모를 때였다.

그런데 웬걸? 생각보다 너무 재밌었다. 세계사 시간만 되면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던 나였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세계사를 공부하는 재미를 처음 느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후로도 여러 세계사 관련 서적들을 탐독했지만, 이 책만큼 재밌게 읽은 기억은 없다.

다시 쓴 <거꾸로 읽는 세계사>

그렇기에 <거꾸로 읽는 세계사> 전면개정판 출간 소식이 유독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십수년 전에 이미 읽어본 책이건만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그때와 달리 또 무엇이 바뀌었나 궁금해서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일단 구판과 뭐가 다른지 궁금했다.
 
"새로운 책도 아니다. 1988년에 초판을 출간했고 1995년에 개정했다가 여러 해 전에 절판한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다시 썼을 뿐이다. 그렇지만 내용을 보충하고 문장을 수정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다시 썼다'. 다룬 사건은 거의 같지만 그대로 둔 문장은 하나도 없다. 정보량을 늘렸고, 해석을 더러 바꿨으며, 각주를 꼼꼼하게 달았다." - 6쪽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구판이나 개정판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4.19와 일본의 역사왜곡은 작가의 판단에 따라 개정판에서 빠졌다), 역사란 언제든지 새로운 사료의 발굴과 학자들의 연구성과에 따라 진실처럼 굳게 믿었던 사실들이 180도 바뀌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역사란 학문은 과거를 다루지만 늘 새로움을 지향하는 학문이다.

작가는 "20세기 세계사의 위대한 성취인 민주주의와 디지털혁명의 혜택을 한껏 누리며 글을 썼다"고 한다. 정부가 출판을 검열하고 통제하는 바람에 제한된 조건에서 집필해야만 했던 1987년 당시와는 다르게 폭넓게 사료를 접하고 최신의 연구성과를 반영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말처럼 '다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아마 이 점이 전면개정판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거꾸로 읽는 세계사> 전면개정판 표지
 <거꾸로 읽는 세계사> 전면개정판 표지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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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또 다른 특징은 제1차·2차 세계대전, 팔레스타인 내전, 베트남 전쟁, 러시아 혁명, 대공황 등 유독 전쟁과 재난 관련 사건들을 다룬다는 점이다. 인류의 진보와 문명의 발전이라는 밝음 뒤의 그림자,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명과 암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은 인간의 본성과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준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울하게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반역자로 몰린 프랑스 장교 드레퓌스의 이야기를 통해 근대 프랑스 민주주의의 그늘을 드러낸다. 대공황 당시 영양 실조로 죽어가는 뉴욕 빈민가의 아이들과 파산한 경쟁 기업을 헐값에 사들이고 가격이 바닥에 떨어진 주식을 매집해 더 큰 부를 축적하는 이들의 대비를 통해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맹신이 가져온 비극을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다가올지 모를 '제2의 대공황'에 어떻게 대비해야할지 과거에 대한 성찰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당부한다. "과거에서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교훈을 얻는다"는 역사학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결론이다.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무너진 1990년 이후 자본주의는 '더 나은 대안이 없는' 경제체제가 됐다. 컴퓨터와 정보통신기술의 혁명,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사회의 생산력은 더욱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주기적으로 찾아드는 불황과 '승자독식'으로 흐르는 양극화 현상에서 보듯, 인간은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임의로 통제하지 못한다. 대공황은 사람들이 더 많은 상품의 생산에 열광하고 물질적 부의 축적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던 시기에 세상을 덮쳤다. 인간은 자신이 요술램프에서 불러낸 거인을 다루지 못하는 소년과 같았다. 오늘 우리는 그때와 얼마나 다를까?" - 129쪽

역사가의 글쓰기에 대한 성찰

유시민 작가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1980년대 지식 청년의 지적 반항'이라는 평을 들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에는 예전의 내가 있었다. 열정은 넘치지만 공부는 모자란, 열심히 배우지만 사유의 폭은 좁은, 의욕이 지나쳐 논리적 비약을 일삼는, 공감하기보다는 주장하는 데 급급한, 현학적 문장을 지성의 표현으로 여기는, 글쓰기의 기초가 약한 젊은이가 보였다." - 7쪽

바로 이것이 그가 구판을 절판시킨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구판을 재밌게 읽었던 사람으로서 작가의 이러한 표현에 그다지 동의하기 힘들었다. 오히려 '그럼 전면개정판은 얼마나 더 잘 썼다는 거야?'라는 생각에 기대가 됐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역시 믿고 읽는 유시민의 필력에 또 한 번 감탄할 따름이었다.

처음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을 때는 그저 새로운 지식을 빨아들이기에 바쁜 10대 청소년에 불과했지만, 세월이 흘러 역사로 '밥' 벌어먹고 살게 될 역사학도가 되어 다시 이 책을 접하니, 새로운 관점과 각오로 이 책을 읽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쉽게 읽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다.

매일 같이 책과 논문을 읽고 발제문을 쓰면서 글을 다듬고 또 다듬지만, 그러한 글쓰기가 과연 대중들에게 통할 것인가 두려울 때가 많다. 학문적 엄밀함만 따지다보니 대중과 괴리된 어려운 단어나 문장으로 오히려 역사에 대한 '장벽'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런 점에서 스펀지 빨아들이듯 높은 흡입력을 자랑하는 유시민 작가의 글쓰기 능력은 새삼 부럽고 존경스러운 것이다.

역사란 학문은 정설처럼 보이는 것들이 나중에는 낡아빠진 학설로 치부되며 다시 쓰이기 일쑤다. 그런 점에서 최신 연구성과들을 반영하고 세월의 흐름에 따른 작가의 농익은 사유로 다시 쓴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구판을 읽었던 이들에게도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세계사 공부의 즐거움을 가르쳐준 책, 역사의 그늘에 가리워진 사람들의 가치를 일깨워준 책. 나는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앞으로도 개정 2판, 3판을 거듭하며 많은 이들에게 내가 받은 것과 같은 재미와 감동을 안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거꾸로 읽는 세계사> 전면개정판, 유시민 저, 돌베개 출판, 2021.


거꾸로 읽는 세계사 - 전면개정

유시민 (지은이), 돌베개(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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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선열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역사학도 / 형의권사(形意拳士) / 聖文神武 大道無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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