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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 동안 초등학생의 책상에는 가림막이 쳐져 있었다. 반투명한 재질로 되어 그 건너편이 희미하게 보이는 얇은 장벽. 가림막은 무척 불편한 물건이었다. 책상 면적을 좁게 사용해야 할 뿐 아니라, 칠판을 바라볼 때도 번번이 시야를 가렸다. 날개가 붙어 있는 탓에 좌우 시야각 역시 줄어들었다.

가림막은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설치한 물품이었지만, 실효성에 관해서 나는 자주 고개를 갸웃했다. 이미 교실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마스크 착용은 엄격한 규칙이고, 아이들 스스로가 마스크 벗는 걸 꺼리기 때문에 교실에서 마스크를 벗은 채로 비말을 튀길 경우는 없다고 봐도 좋았다. 학교는 두통이나 어지러움 등 코로나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더라도 경미한 증상만 있어도 등교를 자제시켰다. 

아마도 가림막은 '만의 하나'라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그러나 학습에는 명백히 방해가 되었다. 특히 키가 작은 학생은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기 위해 고개를 쭉 빼거나, 의자 높이를 수시로 조절해야 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목을 빼야 했던 한 녀석은 이렇게 투덜거리기도 했다.

"급식 먹을 때는 마스크 다 벗으면서, 교실에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단순 불평으로 치부할 수 없는 말이었다. 기왕 가림막을 보급할 계획이었다면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해서 투명으로 선택하지, 애매한 반투명은 어떻게 결정된 것일까. 긴급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교실 환경과 학생의 수업 참여 방식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물품을 성급하게 결정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설치된 반투명 가림막은 1년 반 동안 책상 위에 얹혀 있었다. 
     
아이들은 가림막을 독서실 분리대처럼 활용했다. 주간학습안내장을 꽂고, 할 일을 적은 포스트잇을 붙였다. 처음에는 교사가 해 주던 보수 작업도 스스로 했다. 굵은 테이프를 슥슥 잘라 능숙하게 척척 붙였다. 그러다 갑자기, 어떤 예고도 설명도 없이 투명 가림막이 교실에 도착했다. 

원형 그대로의 책상이 너무 낯설었다
 
반투명 가림막과 떼어낸 테이프 뭉치
 반투명 가림막과 떼어낸 테이프 뭉치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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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쓰는 거 떼고, 이거 달면 돼요."

놀랍도록 단순 명쾌한 지침이었다. 설치와 유지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철거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뜨드드득! 찌이이이익! 교실이 테이프 떼는 소리로 가득 찼다. 그런데 소음도 잠시, 우리는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누가 시키거나, 미리 협의한 것도 아닌데 서로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감정에 휩싸였다. 가림막이 치워진 원형 그대로의 책상이 너무 낯설었기 때문이다. 

"진짜 학교에 온 것 같아."
"우리 이제 코로나 끝난 거야?"
"마스크 다 벗어?"


새 투명 가림막을 시간 내에 설치해야 하는 나도 얼어붙었다. 텅 빈 책상은 과거의 호시절을 상징하는 물건 같았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라도 하듯 환호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현재의 코로나 시즌이 결코 '정상'이 아님을 피부로 느꼈다. 아이들은 기억해낸 것이다. 진짜 학교가 어떠했는지를. 아이들은 신이 나서 책상 표면에 남은 테이프 자국을 소독용 알코올로 벅벅 문질러 지웠다. 전쟁 후 복구 작업에 나선 생존자들의 씩씩함 같은 분위기가 풍겨져 나왔다. 

나는 그 사이 떼어낸 반투명 가림막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가림막 바닥 지지대 부분에는 여전히 테이프가 너덜너덜하게 달려 있었다. 손톱으로 긁어 끝 부분에 공간을 만들고 자국이 남지 않게 살살 잡아당겼다. 이걸 떼어내지 않으면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테이프를 제거한 가림막은 꽤 오래 사용한 물건 치고는 보존 상태가 양호했다. 끙끙대는 나를 지켜보던 부회장이 와서는 혀를 끌끌 찼다. 평소 환경에 관심이 지대한 친구다. 

"선생님 이거 다 쓰레기잖아요. 그래도 아깝다. 그쵸?"
"여기 붙은 테이프만 잘 떼어내면 재활용된대. 재활용한다고는 해도 가공하느라 에너지가 또 들겠지."


나는 떼어낸 테이프 조각을 공처럼 둥글게 만 뒤, 가림막을 상자용 끈으로 묶었다. 묶지 않으면 운반이 힘들 뿐더러, 가림막이 흘러내려 주위가 엉망이 된다. 성인 남성이 들기에도 손이 얼얼할 만큼 무게가 나갔다. 학교 재활용 수거장에는 벌써 수십 장의 가림막이 쌓여 있었다. 땅 속에서는 수 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플라스틱이 여기에서는 수명이 고작 일 년 반이었다. 나는 전국의 학교에서 쏟아져 나오는 폐 가림막의 양을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아이들이 많은 것을 인내하고 있다
 
투명 가림막은 시야를 차단하는 부분이 적다.
 투명 가림막은 시야를 차단하는 부분이 적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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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투명 가림막을 좋아라 하는 눈치다. 건너편이 선명하게 보이니 신기한지, 두 사람이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눈을 대보기도 한다. 수업 시간에 목을 빼고 선생님을 바라보는 아이의 수고도 줄었다. 전보다 훨씬 표정이 밝다. 아이들은 친구나 선생님을 편안하게 시야에 담을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워했다. 

완전히 방해물이 없는 건 아니지만 반투명 가림막과는 비교할 수 없다. 눈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은 상호 작용의 기본이다. 교육에서는 특히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코로나 시기에 유아들이 마스크에 가려진 상대의 입을 보지 못해 언어 발달이 상대적으로 더뎌졌다는 연구결과도 있지 않은가. 

"휴우. 언젠가는 투명 가림막도 다 떼 버릴 수 있겠죠?"

하루 만에 고정 접착제가 떼어져서 내게 테이프를 빌리러 온 아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홍역이나 흑사병이 그랬듯 코로나 바이러스도 정복될 운명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그렇다. 그래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의 아이들이 많은 것을 인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림막을 감수하고, 마스크를 몸의 일부인 양 착용한 채 수업을 듣는 아이들에게 어른은 더 많이 고마워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자기가 쓴 가림막이 지나치게 일찍 폐품이 되는 비극 앞에서 혀를 찰 줄도 아는 기특한 세대가 아닌가. 어쩌면 지구가 기후위기로 망가지면 그 대가를 아프게 치러야 하는 세대이기 때문에 무심한 어른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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